"역사 다 알린다"던 사도광산…日 '강제노동' 단어 쏙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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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의 도유 갱도. 갱도 안에는 작업하는 65개의 사람 모형이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센서가 작동해 인형들이 “술 마시고 싶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광산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 관련시설 유적지 안내도. 김현예 특파원

“세계문화유산 결정”.


28일 오전 7시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광산이 있는 아이카와(相川). 신칸센과 배편을 이용해 도쿄에서 5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아이카와에 들어서자 지난 27일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으로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됐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도광산은 한때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엔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 징용됐던 곳이다.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약속에 따라 마련됐다는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을 이날 일반공개에 앞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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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와 공동취사장. 김현예 특파원

전시관은 박물관 주건물 뒤편에 있는 별관 2층에 있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가로 5.2m, 세로 4.2m의 작은 방이 나타났다. 성인 20명이 들어가면 가득 찰 만한 크기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조선인 노동자들이 썼던 나무 도시락통 한 점이 보였다. 전시실의 유일한 ‘실물’ 유물이다. 옆엔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란 이름으로 일본어와 영어로 된 소개문이 벽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1층 전시 패널과는 다른 디자인이 적용된 게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전시물은 ‘징용’에 대한 설명이었다. “전쟁 중 국가총동원법(1938년 발령)으로 1944년 9월 조선에 ‘징용’이 도입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징용’은 법령에 기반해 노동자에게 업무를 의무화한 것으로, 위반하면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했다”고 소개했다.


조선인 노동자의 징용이 법률에 의한 합법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다. 전시물들은 모두 사본을 패널에 붙인 형태였다. 1940~45년 사이 조선 출신 노동자가 1519명이었다는 기록, 1140명분의 체불임금이 공탁됐다는 문서 사본 등이 제시됐다. 여기엔 조선총독부의 관여 하에 ‘관 알선’과 모집이 있었다는 사실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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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지도. 김현예 특파원

아이카와 지역의 담배가게에서 발견된 연초배급 관련 문서 사본엔 당시 조선인 기숙사에 살던 7명이 도주했고, 3명이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인신 구속 상태에서 노동이 이뤄졌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자료다.


가혹한 노동환경 등을 드러내는 자료도 일부 있었다. 한 달 평균 28일을 일했고, 한 명당 하루 한 되 쌀이 지급됐지만, 점차 이를 줄이면서 무와 건면을 섞은 혼식을 했다고 밝혔다. 그 옆엔 액자에 담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강제징용에 대한 “마음 아프다”란 발언이 붙어 있었다.


이처럼 전시물은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실태를 드러내는 자료들이 일부 포함됐으나, 일본어는 물론 영문 안내문 어디에도 ‘강제’나 ‘강제노동’이란 단어는 없었다. 징용의 강제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물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평가도 없었다.


이날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일 양국이 사전에 ‘강제노동’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군함도 등재)에 정리됐다”며 “당시 합의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일본이 그것을 포함해 모든 약속을 인정한 상태”라는 것이다. 일본 언론 보도는 한국이 마치 이번에 강제성은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합의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강제성을 말로 또 반복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게 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전례로 봤을 때 일본 측이 자국에 유리하게 해당 대목을 왜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도광산 등재 자체만 자축하고, 강제성은 부인하거나 희석할 우려다.


강제노동에 정확한 표현이 빠진 전시 상황은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자고 주장해 온 일본 인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도광산 조선인강제노동자료집 출간 등에 참여했던 아라이 마리(荒井眞理) 사도시 의원은 “이곳에 한번 끌려오면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조선인들을) 일하도록 한 것은 강제노동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라이 의원은 당시의 실태를 제대로 알리려면 조선인 강제노동 당사자의 증언 영상 등도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 연구교수는 “기본적으로 일본은 약속대로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진정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도 건강한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일본의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도=김현예 특파원, 정영교 기자 hykim@joongang.co.kr

2024.07.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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