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모르면 손해랍니다… 추워야 제맛 내는 과메기와 모리국수


일일오끼-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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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이맘때 겨울에 가시라 권한다. 차가운 해풍에 말려 먹는 과메기도, 죽도시장에서 명성 높은 소머리곰탕도 추위가 거셀수록 위력이 더 강해진다. 갓 잡은 생선으로 얼큰하게 끓여 먹는 모리국수, 바다 향 가득한 물회는 해장으로도 술안주로도 훌륭한 먹거리다. 대게가 목적이라면 좀 더 참으시라. 음력 정월 대보름 즈음은 돼야 제대로 살이 차오른 대게를 만날 수 있다.



청어냐 꽁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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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동쪽 끄트머리의 구룡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바다 향이 진하다. 과메기의 계절이 돌아온 게다. 청어나 꽁치를 차게 말려 먹는 과메기는 11월부터 1월 말이 제철이다. 손질한 생선을 겨울철 대나무에 걸어 말리는데,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꾸덕꾸덕한 과메기로 거듭난다. 보통 2~4일이 걸린다.


포항 구룡포가 과메기의 본산이다. 전국 과메기의 85% 이상이 이 일대에서 난다. 구룡포·호미곶·장기 일대에 180여 개 과메기 덕장이 있다. 과메기 협동조합 좌동근(57) 이사장은 “겨울철 백두대간을 넘어온 차가운 북서풍과 동해의 소금 바람이 만나는 포항이 과메기 생산의 최적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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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는 본디 청어를 말려 먹는 음식이었으나, 현재는 꽁치가 더 많다. 1960년대 이후 청어 포획량이 크게 줄면서, 북태평양산 꽁치의 비중이 늘었다. 어종이 다르니 맛도 다르다. 꽁치는 비린내가 덜한 반면 감칠맛이 강하다. 자극적인 바다 향을 즐기는 고수는 청어를 선택한다. 보통은 꽁치 과메기만 취급하지만, 호미곶의 ‘새천년회대게’처럼 꽁치와 청어 과메기를 모두 다루는 식당도 있다. 과메기는 쌈으로 싸서 먹는 게 일반적이다. 김이나 배추 위에 과메기를 올리고 미역·꼬시래기·마늘종·미나리·고추·마늘 등을 곁들여 먹는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 비린내는 적고 쫄깃한 식감도 살아 있다. 두말할 것이 소주·막걸리와 찰떡궁합이었다.



칼칼한 국물이 당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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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는 100여 년 전 일제가 어업전진기지로 삼았던 어항이다. 그 흔적이 구룡포 근대문화거리(일본인 가옥거리)에 남아있다. 지난해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 뜬 덕에 이 거리는 근래 가장 핫한 관광지가 됐다. 포스터를 촬영한 구룡포공원 계단은 요즘도 인증 사진을 찍는 커플이 자주 보인다.


일본인 가옥거리 인근에 20~50년 된 낡은 국숫집이 여럿 포진해 있다. 구룡포 부둣가의 명물이 과메기와 대게라면, 골목 안쪽의 음식은 모리국수다. 큼지막한 들통에 갓 잡은 생선을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인 해물 칼국수를 구룡포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뱃사람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을 국수 넣어 끓여 먹었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란다. 여럿이 모여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많다’는 뜻의 일본어 ‘모리’가 어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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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대개 아귀를 넣고 끓이는데, 미역초를 넣어야 진짜 모리국수”라고 40년 경력의 수산물 중매인 황보관현(61)씨가 귀띔했다. 벌레문치‧장치 따위로 불리는 이 어종은 못생긴 외모와 달리 살이 튼실하고, 비린 맛이 덜해 예부터 매운탕 거리로 즐겨 먹던 어종이란다. 하여 현지인은 ‘매일민속동동주’를 최고 국숫집으로 꼽는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미역초로만 모리국수(2인분 1만4000원)를 내는 집이다. 속이 허한 날, 해장이 필요한 날 첫 번째로 떠올려야 할 식당이다.



국민 별미가 된 어부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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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는 지역별 특성이 분명한 음식이다. 횟감, 만드는 법, 먹는 방식만 봐도 동네를 집어낼 수 있다. 제주도 토속음식 자리물회는 된장과 제피나무‧빙초산으로 맛을 낸다. 속초의 물회는 새콤달콤 감칠맛 도는 육수가 핵심이다. 포항에서는 절대 횟감에 육수나 물을 미리 부어 내지 않는다. 고추장과 밥이 먼저다. 고추장에 되직하게 비벼 회무침으로 즐기다가, 적당히 밥을 비벼 먹고, 남은 재료 위로 물을 부어 먹는다.


포항 물회는 어민의 밥상에서 뿌리를 내렸다. 새벽부터 뱃일에 나선 어부가 서둘러 끼니를 때우기 위해 해 먹던 음식이다. 생선‧고추장‧밥을 대접에 때려 넣어 비벼 먹고, 물을 부어 입가심하던 문화가 그대로 포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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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가 목적이라면 영일대 해수욕장 ‘설머리 물회 지구’를 찾아가자. 물회를 내는 식당 20여 곳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중 35년 내력의 ‘마라도 회식당’은 전국 티맵 이용자가 두 번째로 많이 검색한 포항 식당(20년 7~9월, SKT)이다. 우럭에 배‧오이만 간단히 올리는 전통식 물회(1만5000원)도 있고, 전복‧해삼‧소라‧멍게까지 올리는 ‘최강달인물회(2만3000원)’도 있다. 물회 하나만 시켜도 매운탕과 가자미찜이 깔린다. 고추장에 버무려 먹을 때, 밥과 함께할 때, 육수를 부어 마실 때 모두 맛이 남달랐다. 손휘준(60) 사장의 말대로 “바다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뜨끈한 시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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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최대의 번화가는 예나 지금이나 죽도시장이다. 15만㎡(약 4만5000평) 규모로 동해안에서 가장 큰 어시장이다. 시장에 처음 발 들인 사람은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지게 된다. 2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농산물‧수산물‧이불‧그릇 장터 등 각양각색의 점포 2500여 개가 들어서 있다. 횟집만 해도 족히 150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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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 먹거리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신속하되 든든해야 하고, 저렴하되 푸짐해야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장 안에서는 고급 요리보다 간단한 분식이 더 대우받는다. 식품 아케이드가 있는 9구역 안쪽에 수제비 골목이 있다. 칼국수와 수제비의 중간쯤 되는 칼제비가 이 골목의 오랜 메뉴다. 시장 상인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작됐으나, 지금은 관광객도 즐겨 찾는 별미가 됐다. 어느 가게나 차림이 비슷한데, 유독 ‘강원분식’이 붐빈다. 이옥분(64)‧옥희(62) 자매가 30년간 자리를 지키며 칼제비를 삶는다.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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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도 있다. 시장 초입에 나란히 어깨를 맞댄 ‘장기식당’과 ‘평남식당’. 대략 65년 역사를 헤아리는 두 집 모두 소머리곰탕 하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중 장기식당은 오전 6시부터 가마솥 한가득 곰탕(1만원)을 끓인다. 사골이 아니라 소머리 고기로 국물을 내 맑고 개운하다. 야들야들한 머릿고기, 잘 익은 깍두기 덕에 숟가락질이 즐겁다.



‘빵순이·빵돌이’는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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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횟집 취향을 물으면 의견이 엇갈릴지 모르나, 빵집에 관해서라면 대답은 하나다. 열에 아홉이 포항의 구도심인 육거리 인근의 ‘시민제과’를 가리킨다. 해방 직후인 1949년 팥죽과 찐빵을 내는 ‘시민옥’으로 출발해 올해 칠순을 맞는다. 포항에서 제일 오래됐을 뿐 아니라, 전주 ‘풍년제과(1951)’ 대전 ‘성심당(1956)’보다 형님뻘이다. 그 시절 청춘의 미팅 장소였음은 물론이다. 80~90년대 직원 100여 명을 두고 빵 공장 두 곳과 분점 10개를 뒀을 만큼 잘 나갔다. 2005년 구도심 상권의 쇠퇴로 간판을 내리기도 했지만, 13년 후인 2018년 다시 가게를 열었다. 시민제과의 부활은 당시 포항에서 꽤 큰 뉴스 거리였다. 70·80대 어르신들이 오픈 전부터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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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프랑스 파리에서 제빵을 연마한 3대 진정하(40) 사장이 손님을 맞는다. ‘1949 런치사라다(2900원)’ ‘1949 소보로(1500원)’ 등 추억의 메뉴마다 ‘1949’라는 상표를 달고 있는데 하나같이 인기 메뉴란다. “신제품도 여럿 있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내놓던 단팥빵‧찹쌀떡의 인기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진 사장은 말했다. 전국 빵순이‧빵돌이를 위한 추천 메뉴는 ‘1949 단팥빵(1500원)’과 ‘연유바게트(4500원)’. 한쪽은 할아버지 때부터 3대를 이어온 빵이고, 연유와 크림치즈를 곁들인 바게트는 손자의 신메뉴다. 둘 다 한 치의 양보가 없는 맛이다.


포항=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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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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