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름값만 200억 아꼈다…일석삼조 '하늘 위 지름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자동차]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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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공항(강원도)을 이륙해 제주도로 향하는 여객기는 통상 국토를 가로질러 수도권까지 온 뒤 다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충청·전라 지역을 통과하는 하늘길을 이용합니다. 이 노선이 정규 항공로인 겁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야간이나 주말 등에 양양공항에서 강릉과 경북, 경남을 가로질러 제주공항으로 가는 특별 항공로를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비행거리가 기존보다 80㎞가량 짧아 시간이 20여분 단축된다고 합니다. 물론 연료비도 그만큼 아끼고, 이산화탄소(CO2) 배출도 줄일 수 있는데요.


이 같은 하늘길을 '단축항공로'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거나,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하늘 위 지름길'인 건데요. 국내엔 현재 모두 17개의 단축항공로가 설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항공로는 쓰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다닐 수는 없습니다.


이유를 알려면 먼저 우리나라의 항공로 구조를 살펴봐야 하는데요. 민간 관제업무를 총괄하는 국토교통부의 항공교통본부(본부장 김상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항공로는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크게 동, 서, 남쪽 방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북쪽은 휴전선 때문에 사실상 사용 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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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는 유럽과 중국 방면으로 가는 항공로가 있고 남쪽은 동남아시아 방면, 그리고 동쪽은 미주와 일본 방면을 오가는 항공로가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하루 평균 약 2300여대의 항공기가 운항했다고 하는데요.



'군 공역' 비는 시간 활용하는 지름길


얼핏 보면 민간항공기가 자유롭게 다니는 것 같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하늘에는 제약이 상당히 많습니다. 항공 분야에서는 하늘 공간을 흔히 '공역(空域)'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공역은 항공기와 초경량 비행장치 등의 안전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지표면 또는 해수면으로부터 일정높이의 특정범위로 정해진 공간을 말합니다. 국가의 무형자원 중 하나이며, 항공기 비행 안전과 우리나라 주권보호 및 방위목적으로 지정해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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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로 보면 공역은 다양한 이용자들의 필요에 따라서 효율적으로 구성되고 운영돼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과 대치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軍) 훈련을 위해 설정된 공역, 즉 '군 공역'이 우리 전체 공역의 절반이 넘습니다.


군 공역은 원칙적으로 민간항공기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여객기 등은 이를 우회해서 다녀야만 합니다. 직선으로 비행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연료 사용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항공업계 등에서 비행거리 단축에 대한 요구가 나오게 됐고, 관제당국과 국방부·공군 등 관계기관 합의를 거쳐 2004년 군 공역을 가로지르는 9개의 단축항공로 운영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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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시간과 연료 절약이 주목적이었지만 그 사이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가 등장합니다. 바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CO2 배출량을 줄이자는 '탄소중립' 인데요. 실제로 항공기를 운항할 때 배출되는 CO2 양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민·군 협력으로 17개 단축항공로 운영


2018년 기준으로 민간 항공운송에서 발생한 CO2가 9억t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자연 발생이 아닌 인공적인 CO2 배출량의 약 2%가 항공운송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항공 선진국들에선 친환경 운항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항공운송에 따른 CO2 배출량을 줄이고, 시간과 연료도 아낄 수 있는 단축항공로를 더 늘려서 현재 17개까지 증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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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운영 중인 17개 단축항공로 현황. [자료 항공교통본부]

단축항공로는 주로 야간과 주말, 그리고 기상악화로 군 비행이 없는 시간에 활용되는데요. 평일과 주간 시간대에는 대부분 군의 비행 훈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축항공로 이용 전에 우선 항공교통본부가 운영하는 대구·인천 ACC(Area Control Center, 항공기 관제센터) 관제사가 공군방공통제소(MCRC)에 연락해 군 공역 사용 여부와 사용 가능 시간을 실시간 협의합니다. 그리고는 해당 항공편에 단축항공로를 사용한 직선비행을 지시하게 됩니다.


항공교통본부 관계자는 “최근에는 공군과의 긴밀한 업무협조를 통해서 사전에 합의된 단축항공로 외의 구간에서도 민간항공기에 다양한 단축비행경로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작년 절약한 기름값만 200억 육박


지난해 9월부터는 대구~제주 구간에서 군 비행이 없는 시간대 등 특정 조건으로만 운영되는 항공로인 '조건부 항공로(CDR,Conditional Route)'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실시간으로 결정되고 활용하는 단축항공로와 달리 항공사가 비행계획 단계에서부터 해당 항공로를 적용해 아예 연료를 적게 싣게 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항공기 운항이 가능하다는 게 항공교통본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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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하늘 위 지름길의 효과는 고무적입니다. 지난해에만 단축항공로를 통해 줄어든 비행거리가 214만 6000㎞에 달합니다. 절약한 유류비도 200억원에 육박하고, CO2 저감량도 4만 8000t 가까이 된다고 하네요. 이는 30년 된 소나무 750만 그루가 한해 흡수하는 CO2양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외국에서도 유사한 항공로 단축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요. 국토부에 따르면 일본은 FUA(Flexible User Airspace, 탄력적 공역 운영)라는 제도를 통해 군 공역 사용계획이 없을 경우 민간항공사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면 10분 정도 비행시간 단축효과가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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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일정 고도 이상의 항공기가 사용 가능한 FRA(Free Route Airspace, 자율 경로 설정 공역)란 제도를 만들어 공역의 입출항 지점만 설정하고는 항공사가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경로로 비행계획을 짜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용 절감과 친환경이 주요 화두로 떠오른 국내외 항공 분야에선 앞으로도 안전하고 빠른 하늘 위 지름길을 찾고 활용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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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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