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단팥빵 먹으러 군산으로? 박대·반지도 맛봐야죠

일일오끼-전북 군산

돼지고기 고명 수북한 해물 짬뽕

한방재료로 양념한 담백한 게장

팥빵 하루 1만5000개 파는 빵집

선창가 식당, 곰삭은 젓갈 일품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얼마 전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라는 책을 냈다. 이런 말도 가능하겠다. ‘군산은 기꺼이 서서 기다린다.’ 전북 군산은 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한 끼 먹을 수 있는 맛집이 많다. 물론 줄 안 서도 맛난 식당은 더 많다. 여행객이 열광하는 음식은 대단한 게 아니다. 짬뽕, 콩나물국밥, 단팥빵처럼 어느 지역에나 흔한 대중 음식이다. 한데 군산에서는 뻔한 음식도 비범한 맛을 낸다. 지난달 28~29일, 군산 원도심부터 새만금 방조제까지 헤집고 다니며 다섯 끼를 먹고 왔다. 전국구 맛집도 들렀고, 군산 시민이 아끼는 숨은 노포도 찾았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GM대우 자동차공장 철수 여파로 군산이 활력을 잃었다는 뉴스가 많이 나온다. 이틀간 먹고 또 먹으며 번쩍 기운을 차렸으니 ‘맛’이야말로 쇠하지 않을 이 도시의 진짜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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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짬뽕의 도시다. 군산시가 오는 10월 ‘짬뽕 특화거리’를 조성하기로 했을 정도다. 163개 중국집이 짬뽕 맛을 겨루고 있으니 어느 집이든 좋다. 이왕이면 화교역사관부터 들러보자. 화교 역사뿐 아니라 짬뽕의 기원까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빨간 짬뽕은 중국 산둥 요리 ‘초마(炒馬)’가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한국으로 오면서 발전했다는 설이 있다. 여건방(72) 화교역사관 관장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1969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집 용문각을 운영했던 여 관장은 짬뽕의 원조가 군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군산에서도 국물이 자박자박한 초마를 먹었지요. 60년대 들어 매운 음식이 유행하면서 초마에도 고춧가루를 넣었고 개운한 해장음식을 찾던 군산 사람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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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역사관에는 산더미 같은 해산물 위에 돼지고기 고명이 수북이 얹어진 짬뽕 사진이 있다. 전국 3대 짬뽕으로 통하는 복성루 짬뽕이다. 73년 문 연 노포인데, 주인이 바뀌었다. 군산에서 꾸준히 중국요리를 해온 정우덕(73) 사장이 5년 전 식당을 인수했다. 정 사장은 복성루의 명성을 이으면서도 짬뽕 맛을 업그레이드했다고 자부한다. 짬뽕(9000원)을 먹어보니 한 시간씩 줄 서서 먹는 이유를 알 만했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오징어와 홍합, 달큰한 돼지고기, 불맛 진한 국물도 좋았지만 탱글탱글한 면발의 식감은 이제껏 먹어본 짬뽕과 격이 달랐다. 정 사장은 “하루에 짬뽕 300~400인분을 볶고 나면 기운이 하나도 없다”며 “영업이 끝나면 바로 이튿날 쓸 면을 반죽한 뒤 숙성한다. 여름에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반죽을 한다”고 말했다. 복성루가 점심 장사(오전 10시~오후 4시)만 고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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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집 안내서를 보면 중국집 못지않게 꽃게 전문 식당이 많다. 의외다. 군산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 지역이 아니어서다. 군산 식당에서도 인천 연평도나 백령도 꽃게를 주로 쓴단다. 그런데도 예부터 이어져 온 게장 맛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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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내력을 자랑하는 식당 중 하나가 계곡가든이다. 91년 소갈빗집으로 시작했는데 반찬으로 내준 게장이 더 인기를 끌면서 98년 아예 게장 전문식당으로 변신했다. 지금은 공장까지 운영한다. 계곡가든은 한 해 약 100t의 꽃게를 쓴다. 벚꽃 필 무렵인 4월 중순과 12월 즈음 수매한 암게만 게장용으로 담근다. 이때 주황색 생식소가 꽉 차기 때문이다. 김철호(62) 사장은 “대부분 알로 착각하는 생식소는 알집”이라며 “꽃게가 진짜 알을 배는 6~8월은 금어기라 절대 먹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꽃게 박사로 통하는 김 사장은 식품영양학 박사다.

계곡가든 꽃게장(2만7000원)에는 당귀·정향·감초 등 8가지 한방재료가 들어간다. 잡내가 전혀 안 나고 짜지 않아서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군산 야미도 출신인 김 사장이 어릴 적 먹던 어머니 표 꽃게장을 계승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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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항구다.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번성했던 일제 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갯내 풍기며 큰 배가 드나든다. 뱃사람들의 쓰린 속을 달래주기 위해서일까? 군산항 가까운 구도심에 유독 해장국집이 많다. 소고기뭇국이 유명한 집도 있고, 괜찮은 콩나물국밥집도 여럿 있다. 오전 4~5시부터 점심까지만 영업하고 ‘옥’자로 끝나는 집을 찾아가면 된다. 이번엔 일해옥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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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업복 차림의 ‘아재들’이 호호 김을 내며 국밥을 뜨고 있었다. 메뉴는 콩나물국밥(6000원)과 모주뿐이다. 활짝 열린 주방에서 채왕석(54) 사장이 토렴하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쌀밥과 콩나물 깔린 뚝배기에 날달걀을 조심스레 놓고 멸칫국물을 바가지로 떠서 네댓 차례 흘려보냈다.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토렴하는 채 사장에게서 장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국밥을 한 숟갈 뜨고는 눈감고 맛을 음미했다. 통통한 콩나물과 엉겨 있지 않은 밥알, 진한 멸칫국물이 어우러져 엉킨 속뿐 아니라 마음마저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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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슐랭(Car+미쉐린가이드) 맛집’ 전국 1위 자리를 확고히 지키는 집이 군산에 있다. 최근 티맵, 카카오내비 같은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맛집은 74년 역사의 한국 최고령 빵집 이성당이다. 서울 백화점에도 이성당 분점이 있는데 왜 군산까지 차 몰고 가는 걸까. 김현주(57) 이성당 사장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맛이 달라서 아닐까요?” 서울 빵은 맛없다는 건가? 김 사장이 바로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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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숙성은 환경에 아주 민감해요. 군산 본점과 서울의 주방 시설이 다르니 맛이 조금은 다르겠죠. 무엇보다 군산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추억을 함께 먹는 셈이니 더 맛있게 느끼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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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성당 빵은 추억으로 먹는다. 쌀로 만든 단팥빵(1500원)과 야채빵(1800원)이 주말이면 각각 1만5000개 가까이 팔리는 건 그래서다. 군산 사람은 식빵과 슈크림, 크로켓(고로케)에서도 향수를 느낀다. 이성당이 수십 년간 만들어온 빵이다.

김 사장은 시어머니의 노하우를 이어받으면서도 안주하지 않는다. 2006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쌀빵을 만들어 성공했고, 최근엔 흑미를 활용한 컬러 크루아상도 선보였다. 2017년 문을 연 신관 카페를 가면, 앙버터·명란 바게트 등 요즘 유행하는 빵은 다 있다. 군산에서만 200종 빵을 판다.


군산까지 갔다가 야채빵이 동나서 못 사는 사람도 있다. 오전 11시 이전에 가면 줄을 안 서고 빵도 많이 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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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맛난 생선도 많다. 군산에 갈 때면 해망동 어시장에서 말린 박대를 사와 구워 먹곤 한다. 이번에는 박대 요리를 잘하는 집을 수소문했다. 새만금방조제 어귀인 비응항 새만금횟집으로 향했다. 횟집이니 회를 파는 건 당연한데 이 집 메뉴판 맨 윗자리에는 박대정식(2만8000원)이 있었다. 주저 않고 주문했다.

박대구이와 박대찜, 박대탕이 나왔다. 노릇한 박대구이부터 먹었다. 아이돌 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한 방송에서 박대 살을 발라 맛나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 있다. 바로 그 장면처럼 주욱 발린 박대 살은 단단했고 고소했다. 박대탕은 알을 그득 밴 놈으로 끓였는데 냉이와 궁합이 훌륭했다. 무 넣고 매콤하게 조린 박대찜은 값비싼 갈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새만금횟집 김부영(51) 사장은 “잡자마자 배에서 얼음에 재운 국산 박대만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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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와 비슷하게 생겨 헷갈리는 ‘반지’는 군산에서 회로 먹는다. 채만식 소설 『탁류』의 배경인 째보선창에 반지 맛집이 있다 해서 찾아갔다. 유락식당에서 반지회덮밥(1만4000원)을 먹어봤다. 이성당 김현주 사장도 즐겨찾는 집이란다.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반지 맛도 좋았지만 토속적인 반찬이 더 마음에 들었다. 풀치(갈치 새끼) 조림, 굴젓, 갈치속젓 등의 곰삭은 맛이 하나같이 여운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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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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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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