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 장어, 빨간 어묵, 약초 밥… 의외의 연속 제천 맛 여행

[푸드]by 중앙일보


일일오끼-충북 제천

“먹을 게 뭐 있다고?”


충북 제천으로 미식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게다. 맞다. 제천은 ‘맛’으로 기억되는 고장이 아니다. 바다를 접한 것도 아니고, 걸출한 특산물도 없으니 음식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나 제천엔 의외의 보석 같은 맛집이 많다. 이유가 있다. 제천은 청풍호(충주호)의 60%를 품고 있고, 대부분이 산지다. 내륙의 바다인 동시에, 깊은 산골이다. 식재료가 풍부하면 밥상은 자연히 건강하고 화려하게 마련이다. 제천의 산천초목을 맛보고 왔다. 이번 여행은 의외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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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보약


제천의 색깔은 짙은 초록이다. 산이 전체 면적의 70%에 이른다. 월악산(1094m)‧비봉산(531m) 같은 장대한 봉우리에 도시가 살포시 안겨 있다. 하여 제천 밥상엔 풀이 가장 자주 오른다. 산이 곧 약초와 산나물의 밭이니 당연하다.


제천 스타일 밥상이 궁금하다면 ‘약채락(藥菜樂)’을 써 붙인 식당을 찾으면 된다. 제천시가 인증하는 약초 음식점이다. ‘약이 되는 채소를 먹으면 즐겁다’는 의미이다. 현재 17개 식당이 ‘약채락’ 로고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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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박달재(504m) 자락의 ‘열두달밥상’은 가게보다 텃밭과 장독대가 곱절 이상 넓은 식당이다. 텃밭에서 뜯고, 약초 시장에서 받아온 재료로 밥상을 차린다. 간은 여러 해 묵힌 간장과 된장으로 잡는다. 당연히 계절마다 찬이 달라진다.


이름난 메뉴는 약초밥상(1만3000원). 이 집에선 말 그대로 밥이 보약이다. 인삼‧숙지황‧황기 등 약재 여덟 개를 달인 일명 ‘팔물탕’으로 밥을 짓는다. 당귀‧씀바귀‧다래순‧돌미나리‧풋마늘‧냉이‧머윗대‧산뽕잎‧방풍 등 각종 나물로 꾸리는 상차림은 정갈하다. 마늘과 파는 일절 쓰지 않는단다. 맛과 향이 자극적이어서다. 김영미(60) 사장은 “약초와 산나물 고유의 향을 살린 밥상”이라면서 “서울 사람에겐 심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밥과 나물을 번갈아 가며 천천히 씹었다. 애써 콧방울을 벌름거리지 않아도, 산야의 풍미가 올라왔다.



호수의 매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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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은 대개 제천을 물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림 같은 의림지가 있거니와, 면적 6600㎡의 이르는 너른 청풍호를 품고 있어서다. 청풍호는 본디 강이었다. 남한강의 작은 물줄기가 흘렀다. 1985년 충주댐이 세워지면서 강이 호수가 됐다. 청풍면의 경우 29개 마을 가운데 27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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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잃은 수몰민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일부는 산골로 들어가 가까스로 농사를 지었고, 일부는 호수로 변한 고향 마을에 고깃배를 띄웠다. 내륙인 제천에 어부라는 직업이 생긴 것도, ‘매운탕’ ‘어탕’ 따위 메뉴를 내건 식당이 하나둘 들어선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현재 청풍호에는 100명가량의 어부가 있다. 봄에는 쏘가리와 붕어, 장마철에는 장어가 활개 친다. 청풍호에 장어가 산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을에서 매년 뱀장어 치어를 풀고 있단다. 호수가 거대한 양어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청풍면의 매운탕 전문 ‘교리가든’은 올해로 29년이 됐다. 김재호(63) 사장이 직접 고기를 잡고, 매운탕을 끓인다. 쏘가리는 4월 중순부터 나오는 터라, 잡고기 매운탕(6만원)을 주문했다. 메기 한 마리와 빠가사리(동자개)‧꺽지‧모래무지 등 잡고기를 한 데 때려 넣은 다음, 수제비와 미나리를 띄워 끓여 냈다. 밖은 아직 바람이 찬데, 칼칼한 매운탕을 연신 떠 먹으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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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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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고 물 좋은 제천에선 콩도 잘 자란다. 제천시 복판에 있는 두학동이 소문난 두부 마을이다. 옛날 방식 그대로 손두부를 만드는 식당이 한 동네에 몰려 있다. ‘시골’ ‘옛날’ ‘할매’ 등 저마다 정겨운 이름을 달고 있다.


33년 내력의 ‘시골순두부’가 가장 널리 알려진 집이다. 외관은 그저 초라하다. 시골집 마당에 비닐하우스를 올리고 옛 연탄 창고까지 방으로 개조해 손님을 맞는데, 주말이면 그마저도 앉을 자리가 없단다. 거대한 가마솥, 두부를 짤 때 쓰는 면 보자기와 나무 방망이 등 세간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내공이 팍팍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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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콩을 한나절 이상 물에 불리고, 가마솥에서 끓인 뒤, 면 보자기에 담아 비지를 걸러낸 다음, 콩물을 짜내 식혀야 한다. 새벽 5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아침 8시쯤 몽글몽글한 두부가 나온다. 모든 건 수작업이다. 최음천(66) 사장은 “기계는 쇳내가 나서 못 쓴다. 두부는 손으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고 잘라 말했다. 갓 나온 두부로 뭘 만들어 먹은들 맛이 없을까. 산초기름에 두부를 구워내는 산초구이(1만원), 얼큰한 두부찌개(8000원) 모두 맛이 각별했다. 제천에 가거든 가장 먼저 들러야 할 집. 재료 소진으로 오후 1~2시께 문 닫는 날이 허다하다.



먹고 걷고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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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자. 초행자라면 더더욱. 제천시가 운영하는 미식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문화해설사와 함께 약선 음식거리, 전통시장을 걸으며 먹거리 다섯 가지를 맛보는 ‘제천 가스트로 투어’다. 두 시간 동안 먹고 걷고 이야기를 듣는데, 1인 1만9500원이니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코스는 A와 B로 나뉜다. A코스엔 내토시장 명물인 일명 ‘빨간오뎅’이 포함돼 있다. 생소하신가. 육수에 삶아낸 어묵이 아니라, 닭꼬치처럼 빨간 고추장 양념을 직접 발라 전골식으로 끓여 먹는 어묵이다. 국물은 없지만, 맵고 자극적인 중독성이 대단하다. 내토시장 인근에만 ‘빨간오뎅’ 파는 어묵집이 열 곳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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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코스엔 한방 떡이 있다. 이연순(66) 떡 명인의 ‘사랑식’에 들러 승검초단자와 한방차를 맛본다. 승검초는 당귀의 잎을 가리킨다. 찹쌀가루에 승검초를 찧어 넣고 반죽하여 소를 만든 뒤 둥글게 빚어 잣가루 고물을 묻혀 낸다. 한 입 베어 물면 한약 내가 솔솔 올라온다. 달지 않고 담백하다. 제천 가스트로 투어는 최소 10명 단위로 즐기는 프로그램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부터는 4명만 모여도 투어를 진행한다. 제천시티투어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향긋한 커피, 먹기 아까운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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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서 디저트 가게 한 곳만 소개하는 건 매우 난감한 일이다. 걸출한 호수와 유원지를 끼고 있다 보니 찻집도 빵집도 워낙 많다. 문제는 각자의 취향이다.


커피 얘기를 하자면, 의림지 솔밭공원 옆 ‘꼬네’가 기억에 남는다. 2대가 오순도순 꾸려 나가는 로스터리 카페다. 가게 한편에서 아버지는 커피콩을 볶고, 아들은 커피를 내리고, 어머니가 빵을 굽는다. 부자가 나란히 커피를 내리는 풍경은 이곳에서 처음 봤다. 가족의 수다를 들으며 드립커피(5000원)와 단팥빵(2000원)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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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는 하소동의 ‘순수해’가 잘한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7년간 파티시에로 일한 장재순(39)씨가 고향 제천으로 내려와 차린 빵집이다. 특급 호텔식 케이크는 뭐가 다를까. 장씨는 “시럽 하나까지 손수 만들고, 시간과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극히 단순하고도 당연한 이치였다. 빵 맛도 맛이지만, 깜찍한 모양새도 탁월했다. 인증사진을 수십장 찍은 뒤에야 포크를 들었다. 촉촉한 딸기 생크림 케이크(6000원), 상큼한 레몬 케이크(2500원)에 하루의 피로가 녹는 듯했다.


제천=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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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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