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줄서던 곳, 세계인 몰려갔다…퀘벡 '빨간 문' 비밀

[여행]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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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동부 도시 퀘벡의 언덕 도시. 한류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무덤이 있던 곳이다. 원래는 퀘벡 시민이 즐겨 찾는 피크닉 장소다.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낙' 호텔 너머로 생 로랑 강이 보인다.

퀘벡은 여러모로 이국적인 여행지다. 우선 이름이 어렵다. 프랑스어인가 싶어 봤더니 원주민 말이란다. 원주민어로 ‘강이 좁아지는 곳’이란 뜻이다. 퀘벡은 실제로 프랑스 문화권이다. 공용어가 프랑스어다. 프랑스가 맨처음 북미 대륙에 진출했을 때 퀘벡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전통이 400년이 넘었다. 하여 ‘북미의 프랑스’라 불린다는데, 가만히 보면 프랑스하고도 다르다. 퀘벡에서 쓰는 프랑스어는, 현재 프랑스에서 쓰는 프랑스어와 다르다. 옛날 프랑스어란다. 프랑스풍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막상 좋아하는 스포츠는 아이스하키·농구·미식축구 같은 미국 프로 스포츠다. 그러니까 퀘벡은 그냥 퀘벡이다. 퀘벡에 오기 전에는 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왜 퀘벡까지 와서 찍었을까 궁금했었는데, 나흘간 퀘벡을 여행하고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심 언덕에 도깨비 무덤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도시는 많지 않으니까.

세계유산이 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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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심수휘 디자이너

5대호 이리호에서 흘러내린 강물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추락한 뒤 온타리오호에 모였다가 몬트리올을 지나 들르는 도시가 퀘벡이다. 강물이 퀘벡을 지날 때 이름은 생 로랑 강. 퀘벡을 지난 생 로랑 강은 펀디 만에서 이윽고 대서양에 몸을 푼다. 대서양을 건넌 프랑스인이 바로 이 강물의 역방향으로 캐나다에 들어왔다. 강물 따라 들어온 프랑스인이 강폭이 좁아지는 길목에 건설한 도시가 퀘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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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뮈엘 드 샹플랭의 동상.

퀘벡 시내를 거닐다 보면 눈에 띄는 동상이 있다. 동상의 주인공은 사뮈엘 드 샹플랭(1567~1635). 퀘벡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퀘벡에서 구입한 가이드북에는 탐험가로 소개돼 있으나 실은 모피 장수였다. 1604년 북미 대륙에 상륙한 프랑스 모피 장수가 1608년 생 로랑 강변에 세운 모피 가게에서 퀘벡이 시작됐다. 이후 도시를 성곽으로 에워쌌고, 퀘벡은 프랑스 식민지의 거점도시로 발전을 거듭했다. 성곽 도시는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어지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성곽 도시 지역을 ‘올드 퀘벡’이라 부른다. 올드 퀘벡은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북미 대륙 유일의 성곽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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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퀘벡 아랫마을 쁘띠 샹플랭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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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샹플랭 거리 야경.

올드 퀘벡은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된다. 절벽 위에 조성된 윗동네(Upper Town)는 교회·시청 같은 공공 건물이 많고, 강가에 들어선 아랫동네(Lower Town)엔 상가가 많다. 여행자 입장에선, 상점 많고 식당 많은 아랫동네가 재미있다. 특히 ‘쁘띠 샹플랭’이라 불리는 아랫동네 골목은 퀘벡에서 제일 북적이는 거리이며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번화가다(골목 이름에도 샹플랭이 나온다).

도시 상징이 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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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의 심장이라 불리는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낙'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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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낙(Fairmont Le Chateau Frontenac)’. 이름이 길어도 다 적는다. ‘퀘벡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호텔이다. 외국에서 온 여행자는 ‘페어몬트 호텔’이라 부르고, 퀘벡 사람은 ‘샤토 프롱트낙’이라고 부른다.


샤토 프롱트낙은 1893년 건립됐다. 캐나다 국립 사적지다. 윗동네 절벽 위 모퉁이에 우뚝 서 있어 퀘벡 어디에서도 눈에 띈다. 중세 유럽풍 건축물로, 퀘벡의 역사와 문화를 스스로 상징한다. 프롱트낙은 프랑스 식민 시대 총독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었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 자비에가 “역대 총독 중에서 영어로 발음하기에 무난한 인물이 프롱트낙뿐이었다”고 알려줬다. 캐나다 철도회사(CPR)가 건립한 호텔은 2001년 세계적인 호텔 체인 페어몬트가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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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프롱트낙 회의실. 1943년 이 회의실에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수상이 만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했다고 한다.

샤토 프롱트낙의 역사가 20세기 퀘벡의 역사다. 1943년 8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수상, 캐나다 맥킨지 총리가 샤토 프롱트낙에 모여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한 회의를 했다. 이 회의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회의장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래에 샤토 프롱트낙을 이용한 귀빈 명단 일부를 나열한다. 명단만으로도 호텔의 권위를 짐작할 수 있어서다. 미국 대통령 중엔 루즈벨트·아이젠하워·닉스·카터·레이건 등, 프랑스 대통령 중엔 드골·미테랑 등, 영화 스타 중엔 히치콕·찰리 채플린·안소니 퀸·스필버그·디카프리오·안젤리나 졸리 등, 가수 중엔 셀린 디옹·폴 메카트니·스팅 등. 하나같이 쟁쟁한 이름이지만, 호텔이 가장 영광스러워하는 투숙객은 따로 있다. 조지 6세 국왕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영국 황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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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프롱트낙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르 샹플랭'.

호텔은 내부가 복잡하다. 증축을 거듭하면서 계속 확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호텔은 18층으로 모두 610개 객실이 있다. 1년 숙박객은 30만 명을 헤아린다. 호텔이 자랑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있다. ‘르 샹플랭(또 샹플랭이다)’. 프랑스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등에서 경력을 쌓은 위고 퀴두리에 셰프가 고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하나 더. 샤토 프롱트낙에서는 꼭 꿀을 먹어볼 일이다. 호텔이 옥상에서 직접 벌을 키우고, 여기에서 나온 꿀로 음식을 만든다.

도깨비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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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프롱트낙에서 내려다본 도깨비 언덕.

캐나다 동쪽의 프랑스풍 도시가 한국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2016년 12월∼2017년 1월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도깨비’. 최고 시청률 20.5%를 찍었던 인기 드라마에 올드 퀘벡의 여러 명소가 등장하면서 퀘벡은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친근한 도시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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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의 그 유명한 빨간 문. 원래는 쁘띠 샹플랭 거리에 있는 극장 옆문이다.

“4, 5년쯤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좁은 골목의 건물 벽을 따라 갑자기 긴 줄이 선 거예요. 뭐 하는지 봤더니, 벽 중간 빨간 문 앞에서 차례대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한국인만 줄 서서 사진을 찍더니 얼마 전부터는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도 여기에서 사진을 찍더라고요.”


한류 드라마 ‘도깨비’의 위력을 알 수 있는 가이드 자비에의 생생한 증언이다. 드라마에서 빨간 문은 한국과 퀘벡을 연결하는 일종의 창구로 등장한다. 한국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빨간 문을 통해 퀘벡으로 나온다. 쁘리 샹플랭에 있는 소극장의 옆문이 이 빨간 문의 정체다. ‘도깨비’가 이후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한국인만 찾던 비밀의 명소가 전 세계 관광객이 줄 서는 K드라마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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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프롱트낙 1층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우편함. 실제 우편함을 드라마에서 소재로 활용했다.

빨간 문 말고도 올드 퀘벡에는 ‘도깨비 투어’ 명소가 수두룩하다. 도깨비 무덤이 있는 언덕은 샤토 프롱트낙 바로 뒤편에 있는 공원이다. 퀘벡 성곽 안쪽 언덕에 조성된 공원으로, 퀘벡 시민이 즐겨 찾는 피크닉 장소다. 언덕에 오르면 샤토 프롱트낙 너머로 생 로랑 강이 훤히 내다보인다. 물론 비석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싹 치웠다. ‘도깨비’에 나왔던 ‘노엘 상점’ ‘목 부러지는 계단’도 올드 퀘벡에 있다. 사실 ‘도깨비 투어’ 제1의 명소는 샤토 프롱트낙이다. 캐나다관광청에 따르면 샤토 프롱트낙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촬영했다. 드라마에 나온 우편함은 1층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원래 있던 우편함이다. 실제 우편함을 드라마에서 활용한 것이다. 샤토 프롱트낙의 영문 소개자료에도 ‘Goblin TV Series(TV 연속극 도깨비)’ 촬영지라고 나올 만큼 퀘벡에서 ‘도깨비’의 인기는 국적을 초월한다.


퀘벡(캐나다)=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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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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