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골목·그을린 성당…기차 타고 만난 유럽의 속살

영국·네덜란드·독일 시티투어

런던서 2시간, 중세도시 요크

로테르담은 이색 건축 백화점

대성당·맥주 자부심 강한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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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만큼 자세한 관찰을 유발하는 운송 수단은 없다.”

작가 폴 서루의 말마따나 우리는 기차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다. 차창에 어린, 도시의 인상을 두루 살피고 시간 따라 달라지는 햇볕의 농도를 차분히 느낀다. 옆자리 승객과 허물없이 말도 섞는다. 지난달 일주일간 영국·네덜란드·독일을 여행했다. 도시마다 전혀 다른 매력도 흥미로웠지만, 기차 타고 움직이는 순간도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세 나라를 고른 이유가 있다. 유럽 31개국에서 통용되는 기차 티켓 ‘유레일패스’에 영국이 올해 처음 포함됐고, 영국과 유럽 본토를 잇는 열차 ‘유로스타’가 지난해 네덜란드까지 이어졌다.



이른 아침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고속열차 르너(LNER)에 올랐다. 2시간 만에 300km 거리의 북부 도시 요크에 닿았다. 요크는 영국 북동부 요크셔 지역의 유서 깊은 도시다. 맞다. 인기 애완견 ‘요크셔테리어’가 이 동네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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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 기차역은 영화 ‘해리 포터’에도 나왔다. 엷은 누런 색 벽돌로 역사를 지었는데 요크의 명물인 성벽 색깔과 똑같다. 가이드 앨런 샤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성벽이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건 13세기 성벽”이라며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전쟁하면서 쌓은 것”이라고 말했다. 3.4㎞ 길이의 성벽 중 대성당 ‘요크 민스터’가 잘 보이는 부삼 바(Bootham bar)~몽크 바(Monk bar) 구간이 가장 인기다. ‘바’는 문을 뜻한다.

여행객 대부분은 성벽을 걸은 뒤 섐블스(Shambles) 골목을 찾는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와서다. 14~15세기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비좁은 자갈길이 영화 세트장 같다. 19세기까지 푸줏간 25개가 밀집한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기념품점과 식당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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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 민스터는 영국 북부 최대 성당이자 가장 아름다운 고딕 성당으로 꼽힌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고 지하에 고대 로마 유적도 많지만 무엇보다 275개 계단을 걸어 탑 꼭대기에 올라보길 권한다. 갈색 벽돌 건물 빼곡한 요크 시내가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요크 외곽에는 국립공원이 많다. 북동쪽 40㎞ 거리에 있는 노스 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 국립공원이 가장 가깝다. 보통 버스나 렌터카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캐슬 하워드(Castle Howard)라는 18세기 부호의 저택을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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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요크 무어스 국립공원의 22% 면적만 숲이다. 나머지는 황무지 같은 구릉이다. 지극히 ‘영국적인’ 그 풍경이 매력적이다. 관목이 듬성듬성 자란 초지에서 양들이 풀 뜯는 풍경이 내내 펼쳐진다. 영국 북부에만 사는 새 ‘뇌조(Grouse)’를 보러 오는 사람도 있다. 덤불 사이에 숨은 녀석을 딱 한 마리 봤다. 국립공원 안 유일한 마을인 헴슬리(Helmsley)의 노천 카페에서 홍차를 마셨다.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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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런던. 도버 해협을 건너는 ‘유로스타’ 기차를 탔다. 유로스타는 배낭여행자가 많이 타는 런던~파리 직행 열차로 유명한데, 2018년 네덜란드 노선이 신설됐다. 4시간 15분 만에 프랑스, 벨기에를 지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내렸다. 휴대전화 시계가 영국보다 1시간 빨라졌다.

영국 요크가 고대와 중세 역사가 쌓인 도시라면 로테르담은 톡톡 튀는 현대도시다. 유럽에 흔한 수백 년 역사의 성당이나 중세 시대 골목 같은 게 없다. 1940년 나치군이 로테르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6일간의 공습으로 도시 80%가 폐허가 됐고, 주택 2만5000채와 상업 건물 1만1000개가 사라졌다. 당시 사상자는 3만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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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자 시 관계자와 건축가들은 도시를 옛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았다. ‘액체처럼 유연한 도시’를 만들었다.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괴한 건물이 로테르담에 가득한 이유다. BBC는 로테르담을 ‘건축 마니아에겐 디즈니랜드 같은 도시’라고 했다.

로테르담 중앙역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2시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모양의 비대칭 지붕 때문이었다. 중앙역은 2014년 개보수를 마쳤는데 대형 시계와 중앙역(Centraal Station) 글자는 1957년에 만든 걸 남겨뒀다. 지붕이 가리키는 시내 중심가에도 기막힌 건축물이 많다. 나무를 형상화한 38채짜리 주택 큐브 하우스(Cube house), 2014년 완공 후 로테르담의 아이콘이 된 마켓홀(Markthal)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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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홀은 단지 예쁜 건물이 아니다. 로테르담시의 오랜 고민을 반영한 작품이다. 시는 70~90년대 집값 상승으로 도시를 떠난 중산층을 다시 끌어들이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공모를 통해 말발굽 모양 건물에 228세대가 살 수 있는 아파트와 1층에 96개 상점이 공존하는 기상천외한 건물을 만들었다. 천정에는 지역 화가의 그림을 붙였다. 마켓홀 설계는 로테르담 건축회사 ‘MVRDV’가 맡았다. MVRDV의 한국인 건축가 이교석씨는 “교외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던 60세 이상 시민이 많이 입주했다”며 “마켓홀 옆에는 화‧토요일 큰 시장이 서는데 상인과 공생하기 위해 지하주차장을 무상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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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이요? 맥주가 맛있는 도시죠.”

로테르담에서 독일 쾰른으로 가는 기차 안, 옆자리 독일인이 한 말이다. 맥주? 쾰른은 대성당의 도시가 아니었나? 한데 쾰른관광청 안내 책자도 맥주 이야기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쾰른시와 독일인은 대성당을 파리 에펠탑, 뉴욕 자유의 여신상처럼 식상한 랜드마크쯤으로 여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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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대성당은 엄청난 문화재다. 쾰른 중앙역에 도착해 통유리 너머 성당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쾰른 대성당은 중세 고딕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1280년대부터 시작한 건축은 1880년에 끝났다. 압도적인 성당 규모를 보면 600년 대공사가 이해된다. 탑 높이가 157m, 성당 전면부 면적이 축구장 크기에 맞먹는 7000㎡다. 무려 30만t의 석재를 썼다. 이처럼 초대형 성당을 지은 건 12세기 밀라노에서 가져온 동방박사의 유골 때문이었다. 금박 입힌 유골함을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순례객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한 해 600만 명이 성당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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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성당도 최근 불이 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못지않은 아픔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와중인 1942년 영국 공군 폭격기 1000여 대가 쾰른 상공을 덮쳤다. 영국군이 성당을 타격하지 않았지만, 화력이 무시무시한 소이탄을 쾰른에 퍼부었다. 도시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고, 성당 지붕과 창문이 훼손됐다. 성당 전체를 뒤덮은 시커먼 그을음이 여태 남아 있다.

쾰른 대성당도 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533개나 되는 비좁은 원형계단을 올랐더니 다리가 풀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전망대에선 그을음과 산성비로 온통 시커먼 성당의 상처가 더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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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맥주 이야기. 콜슈(Kölsch)라는 쾰른 전통 맥주는 25개 양조장에서 만든 것만 인정해준다. 얇고 긴 200㎖ 잔에 마시는데 전통복장을 한 웨이터가 손님이 잔을 비우기 바쁘게 새 술을 건네준다. 우리네 피순대와 비슷한 쾰른 전통음식 ‘콜셔 캐비아(Kölscher kaviar)’와 궁합이 근사하다. 쾰른관광청 유디스 블륌크 홍보 담당은 “바바리안(독일 바이에른주 사람)처럼 무식하게 큰 잔에 맥주를 마시면 금세 거품이 빠져 맛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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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영국)·로테르담(네덜란드)·쾰른(독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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