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화장품 '너구리 눈'이라 비웃던 김정은 "샤넬 넘어서라"

[트렌드]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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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눈(조악한 품질의 마스카라 때문에 눈가가 검게 번져버리는 현상)을 만든다는 악평에 시달리던 북한 화장품이 샤넬을 넘어서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북한의 화장품 국산화 움직임을 보도하며 이렇게 묘사했다. 중국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이 뉴스를 인용보도하며 "자국산 화장품을 멸시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엔 제재로 인해 마음을 바꿔 국산화장품 품질향상을 주문했다"며 국산 화장품 경쟁력 강화에 나선 북한의 움직임을 전했다.



김정은 화장품 관심, "샤넬 뛰어넘는 국산품" 방송도


이처럼 외신이 북한의 화장품 국산화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김정은 위원장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스위스 유학파 출신인 김 위원장은 북한의 질 낮은 화장품을 오랫동안 무시했었다. 재일 조선신보에 따르면, 2015년 평양화장품공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외국산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는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그대로인데, 국산 화장품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처럼 돼버린다"고 불평했다. 영부인 이설주 여사 또한 해외 명품화장품이나 한국산 화장품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올해 들어 이설주 여사와 함께 몇 차례 화장품 공장을 방문하는 등 북한산 화장품 경쟁력 증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조선중앙TV는 7월 1일 이설주 여사와 함께 신의주화장품 공장을 현장지도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TV는 또 3월 평양화장품공장에서 해외 명품브랜드 '샤넬'의 화장품 제품을 매대에서 치워 버리고, 북한 화장품 대표 브랜드인 '은하수'의 '물크림'(로션)을 놓는 장면을 연출해 방송하기도 했다. 이에 샤넬 측은 로이터통신에 북한에 자사 제품을 전혀 수출하지 않기 때문에 방송에 사용된 자사 화장품이 모조품일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자국 화장품의 품질을 강조하기 위해 공식 수입도 되지 않는 명품 화장품을 TV화면에 등장시키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북한 화장품 매장의 한 판매원은 로이터에 "평양에 사는 많은 외국인도 국산 화장품을 산다"며 "마스크팩과 립스틱, 클렌징폼이 매장의 베스트셀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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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주 따라하기와 K뷰티 영향, UN 제재도 큰 몫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북한 화장품 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화장품을 소비하는 중산층 여성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서구 문물의 영향력을 엄격하게 차단하면서 화장, 염색, 옷차림 등이 철저하게 규제됐다. 그러나 2011년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유학하며 서구 문물을 접했던 만큼 이런 규제에 대해 다소 느슨한 태도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북한 여성들이 서구 스타일과 화장품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이설주 여사의 역할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로이터에 "김정일 시대에는 사실상 영부인의 역할이 없었다"며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 김 위원장이 이설주 여사와 함께 공식석상에 자주 등장하면서, 영부인의 역할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설주 여사의 세련된 패션과 화장법이 TV화면 등을 통해 자주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장품과 스타일에 대한 북한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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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뷰티'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SCMP는 "인삼, 달팽이 점액 등 자연성분으로 만든 혁신적인 한국 화장품들이 세계적으로 K-뷰티 트렌드를 이끌면서 북한에 큰 자극을 줬다"고 전했다. 2014년 탈북한 강나라(21)씨는 로이터에 "북한 ‘장마당’에서 주로 한국 화장품을 사서 썼다"며 "북한에서 허용되는 스타일은 이설주나 모란봉 악단 스타일인데, 모든 북한 여성들이 케이팝 스타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국 화장품의 경쟁력 제고를 외치고 있는 이면에는 한층 강화된 UN의 대북 경제제재가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이 매체는 "강력해진 UN의 대북 수출 규제 때문에 외제 화장품을 들여오는데 더 큰 비용이 들게 됐다"며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국산화를 통해 경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 부띠끄 열고 인터넷 판매도 추진


북한은 국산 화장품의 수출 및 판로 확보에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평양화장품공장의 은하수 브랜드는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처음으로 부띠끄를 열었다. 러시아에서 한국화장품을 판매하는 업체 '코리안케어(Korean Care)'는 지난해부터 북한 화장품을 직접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1만명 가량의 러시아 여성 회원을 보유한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산 화장품의 셀링 포인트는 '자연소재 원료'와 '적은 방부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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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국 화장품이 국제표준화기구(ISO)와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EU)으로부터 품질 및 안정성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최근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기술연구소가 북한 화장품 64개에 대해 성분을 조사한 결과, 7개 제품에서 사람의 호르몬 내분비계를 교란할 수 있는 파라벤 계열의 성분이 검출됐다.


로이터는 김 위원장의 지시로 화장품 국산화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한국화장품이 북한에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탈북민 출신의 강미진 데일리NK 기자는 "한국 화장품이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워 부의 상징이자 최고의 선물로 여겨진다"며 "예비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한국 화장품을 사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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