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거기 어디?] 빵집계의 심야식당…머핀에 칵테일 한 잔, 꽤 어울려요

[푸드]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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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와 함께 빵 굽는 냄새가 퍼지고, 쇼케이스에 따끈한 빵이 하나둘 채워지는 모습. 전형적인 아침 풍경 중 하나다. 이처럼 빵집은 대개 마을의 아침을 여는 역할을 해왔다.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하는 만큼 문 닫는 시간도 빠르다. 프랑스 정통 바케트로 유명한 역삼동의 ‘바케트케이’는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문은 열려 있어도 인기 많은 빵은 일찍 떨어지기 일쑤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타르틴 베이커리'의 대표 상품 '컨트리 브레드'는 오후가 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

지난해 4월 이같은 빵집 공식을 뒤집은 베이커리가 등장했다. 구의동 주택가에 위치한 이 빵집은 아침 8시가 아닌 저녁 8시에 문을 연다. 문 닫는 시간은 자정, 밤 12시다. 달빛 아래서 빵 굽는 냄새가 흘러 나오는 곳, ‘미드나잇 베이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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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 무렵 미드나잇 베이커리를 찾아가 봤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과 강변역 사이 골목에 있다. 구의역 3번 출구와 강변역 4번 출구에서 모두 8분 남짓 걸린다. 걷는 길에 놀이터, 피아노 학원, 미용실 등이 보이는 전형적인 주택가다. 가게는 한 연립주택 건물 1층 귀퉁이에 특별한 간판도 없이 있다. 외부에 블랙보드로 된 작은 입간판이 놓여 있을 뿐이다.

4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다. 정우선(27) 대표가 카운터를 보면서 빵과 음료를 직접 만들고 서빙까지 맡아서 하는 1인 베이커리다. 카운터 겸 바 뒤에 냉장고와 오븐이 있고, 창가에 놓인 긴 테이블 하나가 쇼케이스 역할을 한다. 마들렌·머핀 등 6종류의 빵이 나무도마와 접시 위에 진열돼 있다. 원형 테이블이 4개. 그 마저도 테이블 크기가 작고 공간도 좁아서 한 테이블에 3명 이상 앉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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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베이커리의 메뉴는 매일 달라진다. 50여 가지의 종류의 빵 가운데 그날 그날 5~10가지를 만들어 판매한다. 까눌레·머핀·마들렌·타르트·블론디 등 대부분 달달한 디저트 위주지만 샌드위치를 만드는 날도 있다. 케이크는 주문 받아서 판매한다. 그날의 메뉴는 오픈과 함께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 공식 계정으로 공지한다. 기자가 찾아간 날 준비된 빵은 레몬글라쎄·마들렌·말차블론디·유자파운드·망고파운드·치즈에그타르트·초코칩머핀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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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후 1년간 밤에만 여는 빵집이었지만 지난 4월부터는 문 여는 시간을 오후 4시로 바꿨다. 문 닫는 시간은 그대로 자정이다. 정 대표는 “오픈 2시간 전에 나와서 한 차례 빵을 굽고, 진열대가 비워지는 대로 소량씩 새로 구워 채운다”고 말했다. 아침에 여는 빵집이 문을 닫거나 진열대에 빵이 떨어지는 시간에 갓 구운 빵이 나온다는 점이 미드나잇 베이커리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이날은 초코칩머핀이 일찍 떨어져 오후 7시쯤 3개를 추가로 구웠다. 미리 준비된 반죽을 틀에 짜넣고 오븐에 넣자 30분 만에 고소한 냄새와 함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머핀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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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주방에서 소박하게 만들어지는 빵들이지만 프랑스 발로나 초콜릿, 고메버터 등 질 좋은 재료를 엄선해서 사용한다. 정 대표는 “재료를 아낌 없이 사용하다 보니 빵에서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 편”이라며 “진하고 리치한 맛을 좋아하는 분들의 우리 빵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빵맛이 인스타 등 SNS로 입소문을 타며 주민들 외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다. 퇴근 후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대인 오후 9시 전후엔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줄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크기가 작은 디저트용 빵인 데다 매일 메뉴가 바뀌다보니 한 번 오면 종류별로 사가는 손님들이 많다. ‘있을 때 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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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까지 문 여는 빵집.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매일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빵을 찾는 손님이 많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드나잇 베이커리는 칵테일을 함께 판매한다. 조용한 골목,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칵테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미드나잇 베이커리의 밤 시간을 채우고 있다.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기 보다는 혼자 찾아와 딱 한 잔씩만 하고 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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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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