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박스 아기 씻기는 착한 손, 알고보니 경찰관

[트렌드]by 중앙일보

11년간 아기 기다린 임정일 경감

늦둥이 낳고 생명 소중함 깨달아

7년째 쌀·분유 후원, 빨래봉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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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는 것보다 갓난아기 씻기는 게 더 어려워요.”

짧게 깎은 머리카락과 두툼하고 커다란 손.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형사’의 모습이었다. 29년 차 베테랑 강력계 형사인 서울 동작경찰서 임정일(53·사진) 경감은 7년째 서울 관악구 ‘베이비 박스’의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있는 베이비 박스는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다. 베이비 박스에는 지난 한해 219명의 아기가 놓였다. 지난 12월 29일에도 2명이 들어왔다. 이렇게 들어온 아기들은 경찰에 알린 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보내질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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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경감은 2001년 아내와 결혼한 뒤 11년 동안 아이를 애타게 기다렸다. 입양을 고려했던 그는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 베이비 박스를 알게 됐다. 그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심하던 때에 베이비 박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남겨진 아기라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1년 임 경감에게도 기다리던 첫아기가 생겼다. 마흔다섯 살에 어렵게 얻은 첫 딸의 돌잔치. 임 경감 부부는 돌잔치 축의금 366만원과 돌 반지를 베이비 박스에 기부했다. 한번 맺어진 인연은 꾸준히 이어졌다. 쌀과 라면, 과자, 분유 등을 후원했고 몇 해 전에는 아기들이 더위에 지칠까 봐 베이비 박스가 있는 난곡동 교회에 에어컨도 달았다.

임 경감은 한 달에 한 번 아내와 딸과 함께 베이비 박스의 아기들을 찾는다. 아기들을 씻기고, 청소와 빨래를 돕는다. 투박하고 큰 손 때문에 혹시 아기가 다칠까 봐 목욕 시간이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다. 임 경감은 “따뜻한 물에 아기를 씻기다 보면 어느새 제 목덜미도 땀 범벅이 된다”며 아기 돌보기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도 아기들을 만나고 오면 “엄마, 아빠와 같이 지낼 수 있어 좋다”고 고마움을 전한다.


임 경감은 “후원도 후원이지만 실제 아기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서초·송파 경찰서 등 강력계에서 일해온 베테랑 형사다. 2010년 1월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터미널 앞, 까만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현금 수송 업체 직원이 들고 있던 돈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현금 1억원이 든 가방이었다. 강력팀장이었던 임 경감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잠복 수사를 벌인 끝에 10개월 만에 용산 전자상가에서 날치기 범행에 나선 용의자를 붙잡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도 했다.


임 경감은 베이비 박스 후원 외에도 위례 지역 독거노인을 위한 반찬 봉사, 해외 선교 봉사 등을 하고 있다. 그는 “2019년에는 아너소사이어티(고액기부자 클럽)에 도전해 보고 싶다”며 새해 다짐을 전했다.


글·사진=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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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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