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1억℃···한국형 '인공 태양' 6000억 벌어들였다

[테크]by 중앙일보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초전도 핵융합 연구 한국이 선도

전 세계 장비 발주 잇따라 따내

지난해 플라스마 온도 1억도 달성

내년부터는 한·중·일 연구 경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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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덕 연구단지 내 국가핵융합연구소.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플라스마 온도 1억도를 달성한, 바로 그 장치다. 헬멧을 쓴 작업자들이 굵은 케이블을 들고 오갔다. 플라스마를 오랜 시간 뜨겁게 유지해 줄 ‘중성입자빔 가열장치(NBI)’를 추가 설치하는 중이다. 기존 한 대에서 두 대로 확충한다. 지난해 1.5초에 그쳤던 1억도 이상 유지 시간을 일단 올해 10초까지 늘리기 위해서다. 최종 목표는 ‘1억도 이상 300초 유지’다.

1억도는 사실 상상이 가지 않는 온도다. 용광로 쇳물이 겨우 1500도다. 1500만도인 태양 중심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이런 고온을 만들려는 이유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해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원자핵이 결합할 때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전력 생산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태양도 이 같은 핵융합 반응으로 빛과 열을 낸다.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핵융합에서는 방사성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원료는 바닷물 등에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핵융합은 미래 에너지원으로 진작 눈도장을 받았다. 1952년 수소폭탄 실험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한 뒤부터였다. 지금은 온실가스·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너지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를 조금씩 지속해서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핵융합을 일으키려면 우선 중수소·삼중수소에서 전자를 떼어내 원자핵과 전자가 따로 놀도록 해야 한다. 이 상태를 ‘플라스마’라 부른다.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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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은 다음 단계다. 지구는 태양처럼 압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태양보다 훨씬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플라스마를 1억도 이상으로 가열해서 밀집시켜야 한다. 이렇게 온도를 높이 올리는 것도 힘들고, 고온의 플라스마를 붙잡아두는 건 더 어렵다. 에너지를 잔뜩 얻은 플라스마가 마구 날뛰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아주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법을 고안했다. 애초 구리선을 감은 전자석을 사용했으나, 이걸로는 강한 자기장을 오래 걸 수 없었다. 대안으로 ‘초전도 자석’이 제시됐다. 선진국들은 때론 앞다투고, 때론 협력해 기술을 개발했다. 그래도 진척은 더뎠다.


한국은 90년대 중반 개발에 뛰어들었다. 핵융합을 전공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미래 에너지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해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들였다. 뒷얘기도 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를 보고 내심 ‘족적을 남길 대형 과학 사업이 없을까’ 생각하던 YS가 핵융합 보고를 받고는 ‘옳다구나’ 승인했다는 설이다. 과학계에 떠돌던 야사(野史)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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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AR는 우리 과학자와 기업들이 만들었다. 2009년부터 실험을 계속했고, 마침내 지난해 핵융합이 일어나는 영역인 1억도에 도달했다. 초전도 자석을 사용한 장치로는 세계 최초 기록이다.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한때 ‘사기’라고 비난받았던 KSTAR가 올린 성과”라고 말했다.


Q : ‘사기’란 말이 왜 나왔나.



A :


Q : 지금도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한다. 핵융합을 하려면 2억~3억도가 돼야 한다는 거다.



A :


Q : KSTAR는 1억도까지만 올렸다.



A :


Q : 왜 1억5000만도까지 올리지 않나.



A :


Q : 전기를 만들려면 고온의 플라스마가 24시간 유지돼야 할 텐데 300초로 충분한가.



A :


Q : 중국은 KSTAR보다 한 달 앞서 1억도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A :


Q : KSTAR는 핵융합을 일으키지 않나.



A :

ITER는 현재 프랑스에 짓고 있다. 2025년 완공 목표다. KSTAR에서 얻은 데이터와 노하우가 ITER 운용의 핵이다. 건설에는 한국을 비롯해 EU·미국·일본·중국·러시아·인도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비와 인력을 분담한다. 시설 또한 공동 제작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은 핵융합 연구 선도자로서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KSTAR를 만든 경험 때문에 ITER 장비를 속속 납품하게 됐다. 2016년 현대중공업이 1250억원 규모의 핵심 부분품을 수주했고, 지난해 말 코스닥 등록 업체 비츠로테크가 145억원짜리 설계·제조 프로젝트를 따냈다. 누적 수주액이 5971억원에 이른다. KSTAR 건설비 3090억원의 두 배 가까운 돈을 벌었다.


ITER 가동 전인 지금은 핵융합 연구 선두 자리를 놓고 한·중·일 동북아 3국지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전자 온도를 1억도까지 올렸지만 한국에는 아직 한 발짝 뒤졌다는 평가다. 일본은 KSTAR보다 큰 JT-60SA를 짓고 있다. 2020년 가을에 가동을 시작한다. JT-60SA에도 초전도 자석용 코일 같은 핵심 부품을 국내 기업이 조달했다.


내로라하는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이렇게 핵융합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핵융합 연구가 결실을 거두면 전 세계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주도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실현은 요원하다. ITER 가동 개시가 2025년, 핵융합 실험은 2035년이다. 에너지원으로서 상업성이 있을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빨라도 2050년께나 핵융합 상업 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묻는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뿜지 않는 태양광·풍력이 있는데 왜 엄청난 돈을 들여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는가.” 이에 대해 핵융합 연구 지원기관인 유로퓨전의 토니 도네 연구책임자는 “재생에너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핵융합을 통해 상호 보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별도의 대형 전력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태양광·풍력 왕국인 독일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마저 불지 않았던 2017년 1월 24일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을 뻔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할 방법으로 세 가지 정도가 꼽힌다. 그 하나가 핵융합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성 폐기물 걱정을 확 줄인 미래형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이다. 미래형 원전은 빌 게이츠가 택한 길이다. 태양광·풍력용 에너지 저장장치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있다.


한국은 이 중 핵융합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나머지 둘은 어떤가. 원전은 과학을 무시한 공포 때문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태양광은 값싼 중국산 패널을 수입하는 설치업자에게 보조금 주기에만 바쁘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느낌이다. 탈원전을 미루고 미래형 원전 개발에 매진하며, 에너지 저장장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연구개발에 힘을 쏟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한국은 미래 에너지 사회로 가는 열쇠를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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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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