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건물 감리자는 87살···면허 빌려주고 '용돈벌이'

[이슈]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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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붕괴된 서울 잠원동 건물의 철거 감리자는 87살이었다. 업계에서는 현장 업무를 맡기 힘든 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에 따르면 잠원동 철거 현장은 감리자 정모(87)씨의 동생이 지켰다. 경찰과 서초구청 등에 따르면 동생은 건축사를 보조하는 '건축사보'로 감리를 맡을 자격이 없다. 정작 감리자인 정씨는 현장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정씨가 동생에게 감리를 맡긴 게 위법하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80대 노인이 더운 날씨에 건설현장을 지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라면서 "이름만 빌려주고 실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현장에서 흔하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고령을 이유로 행정기관이 감리자 선임을 반려할 방법은 없다. 한 구청 관계자는 "감리자의 조건은 건축사 자격증이나 경력 같은 걸로 규정돼있다"면서 "나이를 이유로 반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난 일부 건축사가 면허를 빌려주고 노후 수단으로 삼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씨는 감리비로 3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는 "공사 규모를 따져볼 때 300만원은 적은 금액"이라면서 "현장을 떠난 건축사 중에는 이런 식으로 '용돈 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불법 임대 부르는 '평생 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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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면허 소지자 문제가 불거지는 건 건설업계만이 아니다. 의료나 운송 등 면허제도에 기반한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체력적인 문제로 안전에 문제가 생기거나 면허를 빌려주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가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가 넘는 고령 택시기사는 7만2800명으로 전체(26만8669명)의 27%를 차지한다. 90세가 넘는 기사도 237명에 이른다. 고령 택시기사가 일으키는 사고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1년 2404건이었던 사고는 2015년 4138건을 기록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65세 이상 택시기사에 대한 자격유지검사를 도입했다. 하지만 치매나 신체기능 이상을 검사하는 의료적성검사는 업계 반발에 부딪혀 보류됐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앞서 자격유지검사를 도입한 버스기사의 경우 검사 탈락률이 1.5% 내외에 불가하다.


돈을 받고 면허를 빌려주는 문제도 늘고 있다.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사무장 병원'이 대표적이다. 2015년 의료 면허 대여를 금지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제정됐지만 적발 건수는 2015년 166건, 2016년 222건, 2017년 225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건 고령 의사가 늘면서 면허를 빌려주는 경우도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0세가 넘는 의사는 9564명으로 전체의 9.9%다. 요양병원의 경우 이 비율이 34%에 이른다. 요양병원은 의사면허 임대 문제의 온상으로 꼽힌다.



"반납 인센티브, 자격시험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자발적인 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도입을 제안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산업안전공학과 교수는 "생계가 걸려있는 면허를 나이 만을 이유로 박탈하는 건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면서 "면허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두고 국가에 면허를 반납하도록 유도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운전면허는 일정 나이가 되면 주기적으로 자격시험을 치른다"면서 "이를 다른 면허에도 확대하면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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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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