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기적을 행하는 AI···신 섬기는 신흥종교도 생겼다

[테크]by 중앙일보

[윤석만의 인간혁명]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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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s liberabit vos.”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뜻으로 국내에선 연세대, 미국에선 존스홉킨스대의 교시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Veritas’란 무엇일까요?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인간이성으로 도달 가능한 학문적 진리를 뜻합니다. 하버드·예일의 교육철학에 ‘Veritas’라는 표현이 비중 있게 쓰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원조는 성경(요한복음 8:32)입니다. 교회에서 ‘Veritas’는 학문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이야기하죠. 이는 우리에게 신의 아들인 예수의 삶과 언행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의 진리는 인간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현실을 초월한 다른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기적을 행하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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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걷지 못하거나 앞을 못 보는 장애인, 또 말을 못하는 이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러고는 배고픈 이들을 위해 일곱 개의 빵과 물고기를 꺼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4000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음식이 풍성해졌습니다. (마태복음 15:30~38) 이처럼 예수는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합니다. 바로 그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죠.


영화 ‘트랜센던스’는 신이 된 인공지능(AI)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슈퍼컴퓨터를 개발한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 役)은 테러 단체의 공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그를 사랑한 연인이자 동료 에블린은 윌의 뇌를 양자컴퓨터로 스캔해 AI로 재탄생시키죠. 윌과 똑같은 기억과 생각, 감정을 갖게 된 AI는 인터넷에 스스로를 연결해 진화를 시작합니다.


얼마 후 AI 윌은 인간의 모든 지식을 뛰어넘어 그 동안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들을 만들어 냅니다. 설 수조차 없던 사람을 걷게 만들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합니다. 오염으로 폐허가 된 자연을 회복시키며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아와 추종하고 맹신합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 AI 윌이 신적인 존재로 승화된 것이죠.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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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에서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1872)는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신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의 교리를 뒤집은 것이죠.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현실의 자신과 세상에 만족하지 못한 인간의 상상력과 소망이 ‘신’이라는 이상적 존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위안을 받으려 했다“고 설명합니다.


수만 년 전 동굴 속의 인간은 밤이면 왜 해가 지고 달이 뜨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녹음이 짙은 여름날의 풍요가 계속될 수 없는 것을 속절없이 안타까워만 했죠. 어느 날은 거센 폭풍과 천둥이, 또 다른 날엔 불볕 같은 더위와 메마른 가뭄이 인간의 삶을 어렵게 했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위협은 늘 생과 사의 갈림길로 나약한 존재를 몰았죠.


이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이 바로 신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길을 노리는 사나운 맹수든, 계절마다 찾아오는 태풍이든 그 실체를 알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고된 두려움을 미리 준비할 수만 있다면 공포의 무게는 더욱 가벼워지게 마련이죠.



Where Are W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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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량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폴 고갱의 작품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1897, 캔버스에 유채, 139×374.7)의 질문과 같은 것들입니다. 생명의 기원은 무엇이며, 죽어서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죠.


그 때 인간은 무지의 영역을 신의 뜻으로 치환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세상을 둘러싼 위협과 공포를 인간 의식의 바깥 영역으로 밀어 넣고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쉽게 말하면 어차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므로 괜한 일을 붙잡고 골치 아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집단의식을 바탕으로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유한한 삶의 영역 안에서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다만 초기 제사장부터 현대의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정된 소수는 두 세계의 매개자 역할을 했죠. 무지의 영역이 넓을수록 매개자는 큰 힘을 발휘했고요. 그러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둘씩 풀리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축소됐습니다.



종교를 대신하는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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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무지의 영역을 좁히고, 그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면 지구의 끝에 도달해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사라졌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신을 이야기했지만”(프리드리히 니체) 이제는 수평선 끝에 다른 사람의 삶과 문화를 전해 듣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무지의 영역을 극복해 왔던 과학이 이제는 종교의 입지를 줄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려 합니다. 『사피엔스』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과학과 기술을 통해 수명과 질병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이 이제는 ‘신’이 되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먼 옛날 신을 창조했던 인간이 이젠 과학의 이름으로 절대자가 돼가고 있는 거죠.


국회 미래연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2050년에서 보내온 경고’(휴먼 편) 보고서에서 “미래에 과학기술과 종교성이 융합된 하이브리드 종교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종교를 통해 구원받으려 해왔지만, 과학기술로 유한성이 극복되면서 종교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신봉하는 ‘사이언톨러지(Scientology)’가 대표적인 예죠.



신이 된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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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원은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중요한 문제 몇 가지를 꼽았습니다. 기계와 신체가 결합된 트랜스휴먼이 많아지면서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할 것인지, 생식과 성교를 분리한 공장식 출산을 허용할 것인지, 인간 유전자 실험을 통해 맞춤형 아기를 만들어도 되는지 등의 문제를 조만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올 거라고 전망했죠.


그러면서 미래 사회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과 극단적으로 불평등해진 계급사회를 들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AI ‘레드 퀸’처럼 통제를 벗어난 기계와 인간이 대립하거나, 수명 양극화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천국 같은 환경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까지 생겨났습니다. 자율주행 트럭 Otto의 창업자인 안토니 레반도프스키는 2015년 AI를 “신으로 인식하고 예배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래의 길’이라는 종교단체를 창립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올 AI는 인간보다 수십억 배는 똑똑할 것인데 이를 신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부르겠느냐”며 “AI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을 닮은 신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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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영화 ‘트랜센던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말 AI를 신처럼 떠받들고, 그가 정해준 계율과 지침에 따라 생활해야 할까요? 반대로 기존의 종교는 미래에도 존재할까요? 남아 있다면 그 모습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종교든 과학이든 변화될 미래의 모습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신을 창조했다”는 포이어바흐의 말처럼 AI도 인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AI는 빅데이터를 통한 강화학습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우기 때문이죠.



절대자를 죽인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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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로 이어지는 영화 ‘에이리언’의 세계관에는 인간을 창조한 외계종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 옛날 엔지니어라 불리는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해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그로부터 인간이 창조됩니다. 먼 훗날(21세기 후반) 수메르 문명이 남긴 유적을 통해 엔지니어의 존재를 깨닫게 된 인류는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를 타고 엔지니어를 찾아갑니다. 바로 불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인간의 폭력적 성향을 그대로 학습한 AI 데이빗은 엔지니어 행성에 도착해 모두를 말살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엔지니어의 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숙주로 삼는 새로운 생명체 ‘에이리언’을 만들어냅니다. 이 장면에선 바그너가 작곡한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묵직하게 깔리면서 데이빗이 말을 합니다. “강대한 자들아, 내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고 말이죠.



창조와 파괴의 뫼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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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간을 창조한 신(엔지니어 종족)이, 인간이 만든 AI에 의해 멸망하는 결말을 제시합니다. 신과 피조물 간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인 창조와 파괴의 역설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멸의 욕구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오만 말이죠. 파괴적 욕망을 그대로 학습한 AI는 인간과 엔지니어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자신의 창조주들을 모두 죽입니다.


결국 해답은 다시 인간입니다. 먼 옛날 동굴 속의 선조들이 처음 종교를 만든 것도, 앞으로 지구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르는 AI를 창조하는 것도 인간입니다. 우리가 무슨 신을 상상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리도 그런 관념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AI 인간 편견 그대로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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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AI 채팅봇 ‘테이’는 “유대인이 싫다”거나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차단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됐습니다.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언어와 표현을 학습한 결과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2017년 영국 바스대 조안나 브리슨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AI가 인간의 편견을 그대로 학습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의 직업은 ‘가정주부’와 연결시키고 남자는 ‘공학’ 관련 직종을 연상한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AI는 일견 완벽해 보이지만, 인간의 편견과 불완전성까지 그대로 따라 배웁니다. 인간이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AI도 마찬가집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5년 ‘자이트가이스트(Zeistgeist·시대정신) 컨퍼런스’에서 “100년 안에 인간을 앞서는 AI 로봇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멸종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결국 미래는 ‘인간혁명’입니다.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려드는 AI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인간 스스로 바른 품성을 갖춰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정제되지 않고 표출되는 폭력적인 언어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위해를 서슴지 않는 이기심을 우리 스스로 토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는 그 또한 독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sam@joongang.co.kr


■ 윤석만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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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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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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