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33년째 똑같아도
7조원 넘게 벌어들인 이 뮤지컬

by중앙일보

13일 부산 드림씨어터 '오페라의 유령' 개막

"불고기 재료 안 바꾸듯 이 공연도 그대로다"

오리지널팀 세 번째 내한공연. 3~6월 서울

중앙일보

13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첫 공연을 한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오리지널팀의 세번째 내한이다. [사진 에스앤코]

지난 3월 문을 연 부산 최대의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 이달 13일 무대 가장 높은 곳에 객석 쪽으로 너비 3.5m, 높이 1m인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안쪽까지 장식된 비즈만 6000개. 전체 무게 약 300㎏이다.


샹들리에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막이 끝나는 부분에서 강렬하게 추락한다. 3단으로 된 조명들이 무대 맨 앞쪽에 떨어져 구겨지듯 쌓인 후빛을 극적으로 번쩍인다. 오페라 극장에 살고 있는 유령이 자신의 사랑을 방해받게 되자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대상이 바로 샹들리에다. 그가 사랑의 실패를 예감하는 순간 거대한 샹들리에는 떨어진다. 바로 이 대목이 33년 전 런던에서 초연된 후 현재까지 가장 대중적 뮤지컬로 꼽히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13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오페라의 유령’ 이 개막했다. 5번째 한국 공연이 새롭게 막을 올린 것이다. 이 무대는 오리지널팀의 세 번째 내한공연(2005년, 2012년)으로 내년 2월 9일까지 부산, 3~6월엔 서울, 7~8월엔 대구 무대에 오른다.


7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하는 오리지널 팀이 가장 큰 변화로 꼽은 것이 샹들리에다. 화려하고 거대한 샹들리에는 특이한 무대 장치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상징적 소재다.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 거기에 대비되는 주인공 유령의 추악함을 나타낸다. 이번 월드투어에서 제작팀은 샹들리에의 무게를 3분의 1로 줄였다. 원래는 1t이 넘었다. 기존에는 전선으로 연결하는 조명을 썼지만 이번엔 건전지가 들어가는 LED 조명을 사용했고 원격 제어도 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낙하 속도가 초당 3m로 1.5배 이상 빨라져 극적인 연출이 가능해졌다. 기술감독인 알리스터 킬비는 “예전엔 샹들리에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지 못했던 도시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극장에도 샹들리에 설치가 쉬워졌다”고 했다.

중앙일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가장 중요한 소재인 샹들리에. [사진 에스앤코]

기술을 더해 진보했지만 ‘오페라의 유령’ 공연의 내용은 대부분 예전대로였다. 선천적으로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유령은 풍부한 재능과 지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파리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지낸다. 유령은 극장에서 군무를 추던 발레리나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크리스틴에게 음악을 가르쳐준다. 급기야 그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도록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극장의 후원자이기도 한 소꿉친구 라울과 약혼하고 이 과정에서 유령, 라울, 크리스틴을 비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내용이다. 뮤지컬은 추리 소설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르루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샹들리에가 추락해 소프라노가 사망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페라 극장에 사는 유령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이번 프로덕션은 많은 부분에서 옛 ‘오페라의 유령’ 그대로였다. 빅토리아 시대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 남녀의 사랑을 중심에 둔 이야기, 오페라 전통을 적잖게 물려받은 고전적인 음악까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배우들에 따라 캐릭터는 다르게 표현됐다. 유령 역을 맡은 조나단 록스머스의 연기는 신선했다. 그는 기존의 음울하기만 했던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활력 넘치고 스케일 큰 유령을 만들어냈다. 록스머스는 2012년 월드투어에서 역대 최연소(25세)로 발탁됐던 유령이다. 크리스틴 역의 클레어 라이언은 고전적인 연기 스타일과 탄탄한 발성으로 중심을 잡았다.


개막 공연 후 기자들과 만난 연출가 라이너 프리드는 “2막 중반부에서 유령이 다가오는 동선을 제외하고는 바뀐 부분이 없다”며 ”이 쇼는 로맨틱한 쇼다. 스토리, 음악, 안무, 연출, 디자이너가 다 함께 만든 로맨틱함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걸 바꿀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고 했다. 또 “예를 들어 내가 불고기의 재료를 다 바꿔보겠다 한다면 그래도 먹고 싶겠는가”하고 되물었다.


이런 자부심 뒤에는 첫 공연을 만든 제작자들에 대한 신뢰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카메론 매킨토시(프로듀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작곡), 해롤드 프린스(연출)가 1986년 함께 만든 작품이다. 프리드는 지난 10월 기자간담회에서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브로드웨이로 넘어간 88년에도 그대로 공연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1만회 공연을 돌파했다”고 했다. 음악감독 데이빗 앤드루스 로저스는 "질투,사랑,집념은 모든 세대가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작품의 음악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샹들리에를 비롯한 기술적인 변화로 약간의 속도감을 줬지만 관객에게 전달하는 이야기와 음악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이처럼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별다른 변화를 시도하지 않지만 흥행 성적은 기록적이다. 2012년에 제작비 대비 수익 100배, 전세계 56억 달러 수익을 기록했고 2013년에 뮤지컬 작품 최초로 수익 60억 달러(약 7조원)를 넘겼다. 41개국 183개 도시, 17개 언어로 공연됐으며 1억 4000만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된다.


한국에서는 2001년 한국어 버전으로 초연했고 2009년 두 번째 한국어 공연을 비롯해 네 번의 프로덕션으로 누적 관객 100만명을 넘었다. 프리드는 “한국 관객의 정서와 ‘오페라의 유령’이 잘 맞는다. 특히 이번 부산 개막 공연에서도 모든 순간에 관객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