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으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사랑…오페라 '청교도'

[컬처]by 중앙일보

17C 중반(1642~1651) 잉글랜드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세금 징수를 계기로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왕권에 위협을 느낀 찰스 1세가 의회파를 체포하려 하면서 양 진영이 충돌하였습니다. 이어진 내전에서 잘 훈련된 올리버 크롬웰의 철기군이 승리하고 찰스 1세는 처형되는 사건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청교도 혁명’이지요.


승리한 이들 의회파의 중심세력은 청교도라 불리는 잉글랜드의 칼뱅 교파였습니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뱅은 부의 축적을 인정하고 장려하였기 때문에 잉글랜드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지역(주로 중북부)의 신흥 부르주아지에 퍼졌지요.


1835년 벨리니가 발표한 ‘청교도’는 바로 이 혁명전쟁 중에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의회파의 성에서 순수한 처녀 엘비라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왕당파인 신랑 아르투로가 전 왕비를 구하려고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충격으로 신부가 실성하게 되는 이야기랍니다.


낭만주의 예술 사조 속에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하고, 실성한 주인공이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벨칸토 오페라 ‘청교도’. 이 장엄한 오페라를 이제 만납니다.


새벽이 밝아 오는 잉글랜드의 성에서 리카르도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영주는 딸 엘비라와 결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막상 돌아와 보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겁니다. 더구나 상대가 왕당파인 아르투로라니요?


화려하게 결혼식이 준비되고 많은 사람은 축가를 부릅니다. 봄처럼 사랑스러운 처녀 엘비라는 삼촌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아르투로와 결혼을 하게 되어 행복해 보이네요. 드디어 아르투로가 등장해 엘비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며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를 부릅니다. 서정적이면서 감미로운 테너의 고음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요동치는 아리아지요. 그의 사랑을 든든히 지원해주는 듯 그의 아리아는 합창이 가세하여 웅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르투로가 우연히 혁명 이후 이 성에 억류되어 있던 찰스 1세의 전 왕비의 신분과 그녀가 곧 처형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왕당파인 그는 왕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는 지금 사랑하는 연인, 엘비라와의 결혼식에 왔는데도 말이지요. 슬슬 불안해집니다. 이때 엘비라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아리아 ‘나는 귀여운 처녀’를 행복하게 부릅니다. 4월의 백합꽃처럼 상냥하고 아름답고, 머리는 장미로 향을 들이고 장식했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부의 노래지요.


그녀는 마침 옆에 있던 전 왕비에게 베일의 맵시를 체크해달라고 합니다. 그 상태로 엘비라는 안채로 들어가고, 아르투로는 마침 신이 기회를 준 것이라며 베일을 벗지 말라고 합니다. 그대로 신부인 양 탈출하자는 것이지요.


탈출하려는 그들 앞에 리카르도가 나타나 엘비라를 앉아서 빼앗길 수 없다며 결투를 신청합니다. 급박한 순간에 왕비는 스스로 베일을 벗어 엘비라가 아님을 밝힙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이랍니까? 리카르도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는 듯 두 사람이 탈출하도록 눈감아 줍니다. 연적을 제거하게 됐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갑자기 신랑이 사라지자 엘비라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엘비라의 정신이 이상해져, 환시에 빠진 듯 아르투로와 상상 결혼식을 올립니다. “아, 교회로 오세요, 사랑스러운 아르투로…영원한 사랑을, 내 사랑 당신께 맹세합니다”라며 신방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모두가 합창으로 탄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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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사라진 신랑을 저주하는데, 리카르도가 들어와 아르투로에게 사형이 선고됐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 엘비라가 등장해 유명한 ‘실성의 아리아’ 즉, ‘매드신’을 부릅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아껴주는 삼촌과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며, 오직 자신을 떠나간 아르투로만을 찾는답니다. 전형적인 벨리니의 벨칸토 아리아를 보여주는데, 약 10여분 동안 가수는 화려한 기교로 노래합니다. 관객은 광기를 표현하는 프리마 마돈나의 무대에 감동하곤 하지요.


아르투로가 은밀히 나타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숨어 지내다가 엘비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성에 숨어 들은 거지요. 엘비라를 그리워하며 아리아 ‘언제나 슬픔에 빠져’를 부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여서 나간 정신도 다시 불러들일 만 하답니다.


엘비라가 그 노랫소리를 따라 나타나고, 둘은 다시 만납니다. 아르투로는 전 왕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을 설명해 주지요. 사랑에는 이상 없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합니다.


허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그때 청교도 군사가 들이닥쳐 아르투로를 체포합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엘비라의 정신이 또 들락날락하게 되지요. 아르투로는 자신으로 인한 그녀의 고통을 보며 비통해하고, 엘비라는 자신 때문에 그가 죽는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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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나팔 소리와 함께 크롬웰의 전령이 도착합니다. 왕가는 패망하고 공화정이 수립되어 죄인도 사면되었다는 소식이 왔네요. 이제 아르투로는 살았습니다. 더불어 엘비라도 정신이 멀쩡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축복하는 가운데 막이 내려집니다.


과거 화폐에도 등장할 정도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인이며, 34세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요절한 천재 작곡가 벨리니.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오페라 ‘청교도’에서 당신의 사랑도 되새겨 보시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2022.08.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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