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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국제원유 마이너스 가격은 가짜…이제부터는 '이것'이 진짜

by중앙일보

WTI 5월물 가격 마이너로 추락,,, 108년만에 처음

반면 6월물 가격은 플러스 20~21달러 선에서 매매

마이너스 가격은 금융자산이 된 WTI의 기현상

수요 급감+저장 공간 부족+선물 만기의 합작품

세계 바다 위엔 1억2000만 배럴이 떠다니는 중


'죽음의 골짜기(death valley)’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금융화한 자산시장에서 트레이더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실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 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까지 곤두박질했다. 거의 300% 폭락이었다. ‘돈 줄 테니 내 석유 가져가라!’라는 아우성이 울려 퍼진 셈이다. 이날 뉴욕거래는 마이너스 13.10달러로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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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5월 인도분 가격이 20일(현지시간) -37.63달러로 떨어졌다.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룸버그 통신 등은 “마이너스 가격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가 처음 개발된 때는 1912년이다. 이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108년만에 처음으로 WTI 값이 0달러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아주 예외적인 사건!

원유는 산업화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다. ‘검은 진주’로 불린다. 국제원유 가격은 대서양을 기준으로 두 종류에 의해 결정된다. 영국 런던의 브렌트유 가격과 미국의 WTI이다. 브렌트 가격은 유럽과 중동 지역의 기준 가격이다. WTI 는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의 기준이다. 특히 금융화한 원유의 상징이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여러 금융장치를 통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들이 WTI를 손쉽게 사고판다. WTI 가격이 글로벌 실물 경제뿐 아니라 금융시장 온도계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런 WTI 가격이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글로벌 원유산업에 괴멸적인 하루”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낳은 수요 급감이 궤멸적 하루의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다 WTI 5월물(선물)의 만기 하루 전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다. 5월물 선물을 보유한 사람은 하루 뒤에 실제 원유를 넘겨받아야 한다. 기름 소비가 줄어 진짜 원유를 정유사 등에 팔기도 쉽지도 않다.

1억2000만 배럴이 바다 위에!

투자자는 원유를 육상이나 해상에 저장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육상 저장공간이 부족하다. 원유를 유조선에 실어 바다에 띄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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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원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블룸버그에 따르면 요즘 1억2000만 배럴이 유조선에 실려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을 기준으로 세계가 하루 이상 쓸 수 있는 양이다. 그 바람에 유조선 임대료가 급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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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국제원유가의 마이너스는 일시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투자자는 원유를 웃돈을 주고 처분하는 게 이득이다. 실제 헤지펀드 등이 처분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가 급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가격이 0달러 아래라고 해서, 휘발유 가격이 곧바로 곤두박질하지는 않는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정유사가 장기 도입 계약을 맺고 수입한 원유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WTI와 브렌트의 역대급가격차

WTI 5월물 가격이 비정상으로 형성되는 바람에 한국시간 21일 현재 WTI 대표가격은 6월물이다. 한국시간 이날 오전 현재 배럴당 20~21달러에서 사고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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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 6월물 가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제원유 시장의 또 다른 기준치인 런던 브렌트유 가격은 25달러 선에서 사고 팔린다. WTI 대표가격과 브렌트 값 사이 차이(spread)가 4달러 정도에 이른다. 역대급가격차이다. 두 가격 차이의 장기 평균은 1.2달러 선이다. 어림잡아 3배 정도 벌어져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두 가격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은 여전히 국제원유 시장이 불안하다는 방증”이라며 “코로나19 확산과 OPEC+의 감산 사이에서 국제유가는 요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OPEC+의 감산은 5월부터 시작된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