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피플] ‘오일 치킨게임’ 푸틴을 무릎 꿇린 35세 석유왕자 MBS

[이슈]by 중앙일보

지난달 푸틴과 크게 싸운 뒤 “증산”

사상 첫 마이너스 오일쇼크 불러

부총리·국방장관 겸한 사우디 실세

WSJ “국제 유가전쟁 열쇠 쥔 인물”



무함마드 빈 살만
중앙일보

무함마드 빈 살만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사상 첫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했던 뒤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35) 왕세자가 있다. 영어 약자로는 MBS로 불린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인 사우디의 실세다. 현재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그는 사우디 왕가에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우디 왕가에선 대대로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의 아들들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형제간에 왕위를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현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는 전례를 깨고 아들인 MBS를 2017년 왕세자로 책봉했다. 사우디 왕가 최초의 부자 승계다.


MBS의 그림자 아래에서 국제 유가는 올해 초부터 ‘죽음의 계곡’에 들어섰다. 유가 급락의 ‘방아쇠’를 당긴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존심 대결이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턴닷컴은 MBS와 푸틴이 지난달 초 전화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매우 감정적으로 싸웠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달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의 원유 감산 논의는 결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원유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MBS는 ‘깜짝 카드’를 내놓는다. 그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은 증산 결정으로 유가 폭락을 이끌었다. 당장 직격탄을 맞은 것은 미국이었다. 저유가로 채산성이 악화한 셰일가스 업체들의 연쇄 부도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회사채 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 전반이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도는 원유를 비축용 저장고에 쌓아두는 것으로 대응했다. 유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방식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대표적인 원유 저장고인 오클라호마주 쿠싱에는 거의 빈 자리를 찾기 어렵게 됐다. 해상 유조선의 임대료는 1년 전 2만9000달러에서 최근 10만 달러로 폭등했다.

중앙일보

미국의 원유·에너지 산업을 지키기 위해 관계 장관들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 [트럼프 트위터 캡처]

2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11.57달러로 내려갔다. 전날의 배럴당 20.43달러에서 43.4%(8.86달러) 떨어졌다. 전날에는 5월 인도분 WTI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37달러까지 떨어졌다. 6월 인도분은 20달러대를 유지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는데 하루 만에 빗나갔다. 7월 인도분 WTI도 배럴당 18달러까지 밀려났다.


사우디의 고강도 압박에 결국 러시아도 물러났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가뜩이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러시아로선 유가가 떨어지면 국가 경제 전반이 어려워진다. 지난 14일 러시아는 하루 5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당초 사우디가 요구했던 감산량(하루 50만 배럴)의 10배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가 급락이 오래가면 사우디에도 좋을 게 없다. 특히 재정 적자가 커지는 게 불안 요인이다. 사우디 경제에서 원유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건 누구보다 MBS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가 추진해온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이 석유 의존 경제의 구조개혁이다. 정보기술(IT)과 신재생 에너지 등에도 관심이 많다.


사우디가 국부펀드(PIF)를 통해 해외 에너지 기업의 지분 매입에 나서는 것도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는 지난달부터 노르웨이 에퀴노르, 영국·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 프랑스 토탈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PIF 관계자는 WSJ과 인터뷰에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배운 건 저가 매수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국왕에 오른 2015년 30세의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취임했다. MBS 시대 개막의 신호탄이었다. 미국 백악관 수석 고문인 재러드 쿠슈너는 그런 MBS를 눈여겨봤다. 백악관 만찬에 초대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도록 주선했다. 쿠슈너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의 남편이다. WSJ는 지난달 “오일 쇼크가 온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MBS를 핵심 인물로 꼽았다. 국제 유가 전쟁의 길목에서 열쇠를 쥔 인물이라는 평가였다.


MBS는 사우디 왕실의 금고지기 역할도 한다. 사우디 왕가 재산의 70% 이상이 그의 몫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의 개인 자산은 1250조원에 이른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부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다섯 배, 미국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의 아홉 배다. 사우디 왕가 재산은 총 1600조원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