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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글로벌 피플] 에릭 위안 줌 창업자

中흙수저 '코로나 반전'···美비자 8번 퇴짜맞다 억만장자 됐다

by중앙일보

“영어 한마디 못해 미국 비자 심사에서 8번 퇴짜 맞은 중국 산둥성 출신 ‘흙수저’ 청년이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억만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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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세계 기업이 매출 급감에 시달리는 이 시점에 에릭 위안 줌 CEO는 억만장자로 거듭났다. [AP=연합뉴스]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이른바 미국 IT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 ‘FANG’이 생태계를 장악하며 더 이상의 ‘아메리칸 드림’은 없을 것 같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이민자 성공 신화가 나왔다.


더군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제2의 대공황’ 까지 거론되는 이 시점에 말이다. 'Z세대'(Gen Z)가 알고 보니 ‘주머(Zoomer) 세대’였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업체 줌(Zoom)의 창업자 에릭 위안(Yuan·50)의 이야기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 사이에 출생하고, 어렸을 때부터 IT 기술을 많이 접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세대를 말한다.


미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대다수 글로벌 기업이 직격탄을 맞은 올해 줌의 주식은 두배 넘게 상승했다. 이 덕분에 줌 지분을 22% 보유한 위안의 자산은 25억8000만 달러(약 3조1600억원) 증가, 총 74억 달러(약 9조원)를 기록해 세계적인 부호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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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ZOOM) 주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중국 산둥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광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위안은 학창 시절부터 ‘화상 대화’를 꿈꿨다. 1980년대 중국산동과학기술대에 재학 중일 때 현재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기차로 10시간가량 떨어져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위안의 달콤한 상상에 그쳤다.


졸업 후 중국 베이징에서 일하던 위안은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검색엔진 야후,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접하고 인터넷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러다 우연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인터넷과 디지털이 미래를 바꾼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은 뒤 실리콘밸리에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위안은 영어 실력이 부족해 2년간 무려 8번이나 비자 발급을 거절당한 뒤 9번째 시도에 겨우 미국 땅을 밟게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첫 직장은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2년 차 스타트업 웹엑스(WeBex)였다. 위안은 웹엑스를 인수한 시스코의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2011년 웹엑스 개발자 40여 명을 데리고 독립을 선언했다. 바로 줌의 시작이었다.


당시 온라인 화상 회의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위안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코의 웹엑스·MS의 스카이프·구글의 행아웃·시트릭스의 고투미팅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위안 CEO는 그 누구보다 그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경쟁사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며 고객 친화적인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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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은 사용하기 쉽고 모바일 친화적이라는 차별점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서로의 고유 주소만 알고 있으면 쉽게 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PC든 스마트폰이든 어떤 기기로 이용하더라도 끊기지 않는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홍보하는 데도 ‘입소문 전략’을 최대한 활용했다. ‘40분 동안 무료 이용’을 통해 줌을 경험한 이들이 만족한다면, 굳이 대규모 홍보는 필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좀 사용자는 2013년 300만명에서 2014년 30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줌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4월 1일 기준 2억 명이던 줌의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수는 4월 21일 기준 3억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불과 20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가까운 사용자가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시장 환경에서 ‘최고의 승자’로 떠올랐지만 최근 줌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화상 회의 정보가 중국 센터를 거치기 때문에 ‘보안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중국 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미 교육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보안을 이유로 줌 대신 다른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구글 또한 회사 소유의 PC에서 줌 사용을 금지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위안은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보안 강화를 약속했다. 특히 모든 유료 이용자에게 자신이 접속하는 데이터를 어느 곳에 저장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중국 이외 지역의 데이터는 절대 중국 서버를 거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줌의 보안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