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도, 재혼도, 아무리 도려내도 뗄 수 없는 ‘부부의 세계’

[컬처]by 중앙일보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 28.4% 기록

한국적 각색으로 영국 원작과 차별화 꾀해

‘미스티’ 잇는 모완일표 감각적 연출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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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을 나누어 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건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16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던진 마지막 질문이다. 불륜으로 인해 완벽한 관계에 균열이 생겨나고, 벌어진 틈 사이로 일상적인 삶이 잠식돼 버린 부부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1회 6.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드라마는 16회 28.4%로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지난해 JTBC ‘SKY 캐슬’이 세운 종전 최고 기록(23.8%)을 세 차례 경신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도 7주간 1위를 지켰다.



아역부터 신인까지 연기 구멍 없이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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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는 심리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통상 불륜을 소재로 한 다른 드라마가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알아채고 그 상대방이 누군지 찾아내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과 달리 첫 회에 그 모든 내용을 드러내고 그 이후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극 중 지선우 역할로 맡은 김희애 역시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의 생일파티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거짓말이었고 속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자 “이 드라마의 시작이자 지선우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남편보다 동료, 지인들의 배신이 오히려 충격이 컸다”는 그의 소감처럼 대담한 전개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낭만주의자 남편 이태오와 사랑에 빠진 여다경 역할의 박해준과 한소희 등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화차’(2012) ‘4등’(2015) ‘독전’(2018) 등 영화에서 주로 활약해 온 박해준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등 명대사를 남기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델로 데뷔해 ‘다시 만난 세계’(2017) 등 배우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신예 한소희는 선배들과 기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당찬 면모를 보였다. 부모의 감정싸움에 휘둘려 가장 큰 피해를 본 아들 준영 역을 연기한 아역배우 전진서부터 데이트 폭력으로 시작해 의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스릴러의 한 축을 담당한 박인규와 민현서 역의 이학주, 심은우까지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관계 집착할수록 불행…스스로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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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캐릭터는 영국 BBC 원작 ‘닥터 포스터’와 차별화를 꾀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원작과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지만, 캐릭터가 쌓아온 성향에 맞춰 결말은 조금씩 달라졌다.여주인공이 남편의 죽음을 유도하려 하고 아들이 집을 떠난 채 끝나는 원작과 달리 한국판에서는 트럭으로 뛰어든 남편을 끌어안거나 가출한 아들이 몇 년 후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변형을 택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여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달리 부부, 가족으로 중심축을 옮겨오면서 한국적인 색채가 보다 강해졌다”며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집착할수록 더 큰 불행을 맞게 되는 인물들을 통해 스스로 삶을 반추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점도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김희애가 ‘내 남자의 여자’(2007)를 시작으로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등 불륜 드라마에서 선보인 여성 캐릭터와 달라진 점도 눈에 띈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부부의 세계’에서 결혼은 사랑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제도에 가깝다. 자아실현과 성취감이 모두 결혼과 연관된 캐릭터를 통해 삶의 근거를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 것이 얼마나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짚었다. 공희정 평론가는 “‘밀회’의 오혜원은 일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놨지만, 지선우는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기존 캐릭터보다 한 단계 성장한 셈”이라고 말했다.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감정 묘사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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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미스티’에 이어 두 작품 연속 흥행에 성공하면서 모완일 PD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치정 멜로 계보를 썼다는 평이다. ‘미스티’의 제인 작가, ‘부부의 세계’의 주현 작가 모두 강은경 작가가 이끄는 창작 집단 글라인 소속으로 강 작가가 각 작품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윤석진 교수는 “‘제빵왕 김탁구’(2010)나 ‘낭만닥터 김사부 1, 2’(2016~2017, 2020)에서 볼 수 있듯 극단의 상황에 몰린 인물의 감정선을 쉴 틈 없이 쫓아가게 하는 것이 강은경 작가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야기의 개연성은 다소 부족한 편인데 ‘부부의 세계’도 16부작으로 늘어나면서 중간중간 이야기가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며 “연출과 연기 덕분에 그 틈을 메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위한 욕심이 잡음을 빚기도 했다. 8회 괴한이 지선우의 집에 침입해 폭행하는 장면을 가해자 시점에서 VR처럼 연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불륜 사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1~6회는 19세 시청 등급으로 방영 이후 7회부터는 15세로 등급을 낮췄으나 항의가 잇따르자 남은 회차(9~16회) 모두 19세로 상향 조정했다. OCN 토일드라마 ‘루갈’ 등 장르물에서 작품 완성도를 위해 일부 회차를 19세 등급으로 방송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체 회차를 19세로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원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웨이브ㆍ왓챠플레이 등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서 ‘닥터 포스터’를 서비스하기도 했다. JTBC도 22~23일 인터뷰와 명장면 등을 담은 ‘부부의 세계’ 스페셜 방송 이후 후속작으로 ‘닥터 포스터’를 편성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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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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