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막대한 상속세 때문에...간송 30억대 보물 처음 경매 나왔다

by중앙일보

간송집안 소장품 파는 건 처음

2년 전 전성우 이사장 별세

재단 “오랜 기간 고민 끝 결정”

보물 284호·285호 금동입상 2점

7세기 신라불상 전통미 담긴 작품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은 한국 문화의 자존심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출될 뻔한 서화·도자기·고서 등 국보급 문화재 5000여 점을 수집했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를 통해 나라의 정신을 지킨다”는 문화보국을 평생 실천했다. 간송의 정신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졌다. 간송의 타계 이후 장남 전성우(1934~2018), 차남 전영우(80), 장손 전인건(49)씨 등이 3대에 걸쳐 간송 소장품 창고지기 역할을 맡았다. ‘한국의 미’를 소중히 간직하라는 간송의 유지를 받들었다.

중앙일보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두 점이 오는 27일 경매에 나온다. 간송의 소장품이 다른 주인을 찾게 된 건 처음이다. 이번에 출품되는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높이 22.9㎝). [사진 케이옥션]

그런 간송 집안의 소장품이 처음으로 새 주인을 기다리게 됐다.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에서 열리는 경매에 삼국·통일신라 시대 불상 두 점이 나온다. 간송이 문화재 관리를 위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세운 보화각(71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이 문을 연 이후 82년 만의 일이다. 간송이란 상징성을 고려할 때 문화계에 주는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중앙일보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두 점이 오는 27일 경매에 나온다. 간송의 소장품이 다른 주인을 찾게 된 건 처음이다. 이번에 출품되는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37.6㎝). [사진 케이옥션]

다음주 경매에 나오는 불상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과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이다. 청동에 금을 입힌 명품으로, 각각 보물 제284호와 285호로 지정됐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구매 시기·과정은 명확하지 않지만 7세기 무렵 고대 한국 불상의 특징과 변천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여래입상’은 부처의 당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자태를, ‘보살입상’은 수행자의 가늘게 찢어진 눈과 입 등 한국적인 얼굴을 형상화했다. 두 작품의 경매가는 각 15억원, 합계 30억원으로 추정됐다.


두 불상은 간송미술관의 간판스타는 아니다. 간송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걸작들을 애써 수집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 신윤복 풍속도화첩’ 같은 국보 12점, 보물 32점 등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전 시대를 포괄했다. 이원복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간송미술관 소장품만으로 한국 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미술계, 간송컬렉션 보존안 찾아야”

중앙일보

간송 전형필이 빠진 한국 미술사는 상상할 수 없다. 사진은 고려시대의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 삼국시대 금동불상 두 점에 이어 향후 경매시장에 출품될지 주목된다. [사진 문화재청]

이번 경매는 일명 ‘민족문화의 수호신’으로 불린 간송의 면모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간송 집안이나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상실감을 줄 수 있다. 반면에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다. 간송미술관 살림이 어려워진 결정적 계기는 2년 전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타계하면서다. 문화재를 승계한 이들에게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됐으나 이를 해결할 대책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간송재단 관계자는 “굉장히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 오랜 기간 고민했다. 액수를 밝힐 수 없지만 세금 액수가 미술관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주변의 비판적 시선이 걱정됐지만 간송의 큰 뜻을 계속 이어가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간송의 가족들이 여러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간송의 빼어난 공적에 손상이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간송 전형필이 빠진 한국 미술사는 상상할 수 없다. 사진은 삼국시대의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 삼국시대 금동불상 두 점에 이어 향후 경매시장에 출품될지 주목된다. [사진 문화재청]

간송미술관 측은 지금껏 국가 지원을 전혀 받아오지 않았다. 2014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열린 서울 DDP 기획전을 제외하고 지난 40여 년간 주최해 온 85차례 전시회의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소장품 수리비, 연구자료 발간비 등도 자체 해결했다. 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간섭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간송재단 측은 이번 경매와 별개로 전시·연구·교육 기능을 확충할 계획이다. 일단 지난해 문화재청에서 별도의 수장고 건립을 의결했고, 현재 설계도가 완성된 상태다. 문화재청과 서울시에서 건축비 44억원을 지원한다. 올해 공사에 들어가 내년에 완공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말 보화각 건물을 근대 문화재로 등록해 보화각의 원형 복원도 지원할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첨단시설을 갖춘 신축 수장고는 연구·교육 공간으로, 기존 보화각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간 문화 각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간송미술관의 현대화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재단 “다른 문화재 더 내놓을 수도”

중앙일보

도자기를 감식하고 있는 간송. [중앙포토]

간송 소장품 경매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재단 관계자는 “간송의 핵심 문화재는 주로 회화와 도자기다. 이번에 낙찰돼도 돈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불교 문화재도 내놓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는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이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문화재적 가치가 이번 불상보다 더 크다. 문화계가 또 한 차례 출렁거릴 수 있다.


간송의 전기를 쓴 이충렬 작가는 “정부 관계부처와 미술계 전문가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간송의 귀중한 문화재가 흩어지지 않고 보존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중앙박물관장도 “우리 문화계 전체의 성숙된 역량이 필요하다. 국가 문화기관들이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박정호 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