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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더오래

[더오래]직장인의 투잡, 넘지 말아야 할 선 무엇인가

by중앙일보


[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18)

직장인은 한 번쯤 자기 사업을 꿈꾼다. 직장인의 가장 큰 장점은 매달 꼬박꼬박 받는 월급, 즉 ‘안정성’이다. 하지만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를 떠올리면 앞날이 막막하다. 어떤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할지, 노후는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지금부터 사업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꼭 자기 사업 준비가 아니더라도 평생직장이 없어진 시대, 월급만 빼고 물가가 오르는 시대, 정년 이후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에서 직장인은 투잡으로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싶어한다. 2019년 11월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투잡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생활비, 여유자금 등의 부수입이 필요해서라는 이유가 68%에 달했다.


직원 개인의 입장에서는 필요하고 이해할 법한 일이지만, 회사 사장과 동료의 입장에서는 고민과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투잡. 만약 내가 투잡을 하는 직원이라면, 혹은 내가 사장인 우리 회사에 투잡하는 직원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생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왔던 고부장은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올해 임원이 되지 못하면 결국 만년 부장으로 퇴사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생겼다. 임원이 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설령 임원이 된다 해도 임원은 ‘임시직원’이란 말이 있듯이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니 고용의 불안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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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 대책 없는 노후, 경기 불황으로 저조한 실적에 대한 고민까지 겹치면서 고부장은 마냥 불안해하며 회사만 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부장은 배달 위주의 작은 햄버거 가게를 아내의 명의로 오픈하기로 결정했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퇴근 후 아내와 교대해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고부장의 햄버거 가게는 개업 초기부터 매출이 잘 나오기 시작했다. 고부장은 매출과 직결되는 홍보 마케팅 부분에 욕심이 생겼고, 결국 부서 내 디자인 담당 직원에게 전단지 디자인, 마케팅 담당 직원에게 SNS 마케팅 등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직원들은 고부장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회사 업무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부수입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고부장 부서의 일부 직원은 근무시간 내 회사 업무와 고부장의 햄버거 가게 업무, 두 가지 일을 공공연하게 병행하게 되었다.


몇 개월 후 고부장이 햄버거 가게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장 귀에 들어갔다. 사장은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고부장이 겸업을 금지하는 회사에서 투잡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믿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의 직원들이 고부장 가게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소문에 더욱더 화가 났다. 일단 사실 확인이 필요했지만, 사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고부장은 현재 맡은 사업의 적임자였고, 사업 특성상 당장에 고부장을 대체할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회사는 고부장의 오랜 경험과 시장에서의 인맥이 필요했다. 사장은 고부장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식적 조사를 했고, 행여 직원들이 고부장의 부인이 하는 햄버거 가게의 일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결국 이 소문은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별도의 징계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고부장의 햄버거 가게는 맛집으로 선정되면서 나날이 번창했다. 회사의 조사 이후에도 일부 직원은 햄버거 가게의 마케팅, 영업, 디자인 등의 일을 계속 도와주며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았다. 다만 직원들은 고부장의 가게 일로 투잡하는 것을 은밀하게 진행했다. 햄버거 가게 매출이 늘면서 고부장은 마케팅에 더 큰 비용을 썼고, 사내 마케팅 분야의 유능한 직원들은 알음알음 고부장을 찾아가 일을 도와주고, 부수입을 버는 투잡을 했다.


한편 고부장의 옆 부서에서는 고부장의 투잡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회사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회사 일에 올인하는 자신에 비해 고부장의 부서는 이전처럼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일하지도 않고, 업무 강도가 적은 프로젝트만 추진하면서, 투잡으로 부수입까지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하게 넘기는 사장의 결정에 직원들은 회사 생활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과 함께 우직하게 회사 일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지 고민도 커졌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고부장이 햄버거 가게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또한 대다수가 고부장의 부서원이라면 부서장과의 관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며, 더욱이 편하게 투잡을 통해 부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부서장의 부탁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업계 특성에 따라 어떤 회사에서는 투잡을 일부 허용하는 회사도 있지만, 많은 회사는 사규나 근로계약서에 ‘겸업 금지 조항’을 넣어 투잡을 금지한다. 이럴 경우 투잡의 행위는 근로계약 위반이다. 회사의 자원과 정보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회사의 윤리 강령에 위배되는 일이다.


오랜 회사 생활을 한 고부장은 회사의 규칙과 윤리강령을 잘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일과 개인의 일을 분리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부서원들을 근무시간에 자신의 개인 사업에 활용했다. 이로써 부서원도 회사의 규칙과 윤리강령을 위배하게 하였다. 고부장을 포함해 부서 전체가 계약과 규칙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본업에 소홀해지거나 집중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생산성 저하 및 다른 직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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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과 윤리강령 이전에 상식과 규칙이 통하는 세상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우리가 만들고 물려주어야 할 사회가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밝혀지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규칙을 위반해도 증거가 없으면 문제가 안 되는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직원이라면, 나도 언젠가 사장의 위치에서 일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회사는 업무시간 외 직원의 삶을 규제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투잡을 하는 직원이 피로, 과도한 겸업 등의 이유로 회사 업무에 소홀해진다면, 사장의 입장에서 직원의 투잡이 고민거리가 된다. 회사의 사규에 겸업 금지 조항이 있어도 겸업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을 경우 겸업을 단정하기 어렵기도 하다. 직원의 입장에서 투잡은 필요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나 회사의 입장에서 투잡은 제지하고 싶지만 제지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러나 고부장의 사례와 같이 다른 직원들이 인지할 정도로 회사에서 부서원들을 동원해 공공연하게 투잡을 하는 행위에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사장의 결정과 조치는 회사가 정한 룰을 지키는 다수의 많은 직원의 투잡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장의 애매한 의사결정은 직원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도 있다. ‘투잡을 해도 사장이 모르게 하면 되는구나’, ‘투잡을 안 하는 사람은 무능하구나’ 등 회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냉소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될 수도 있다.


사업을 위해 꼭 필요한 인재를 유지하기 위한 타협적 조치가 더 크고 중요한 것을 잃게 할 수 있다. 사장이라면 룰을 지키는 다수를 위해 지켜야 할 선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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