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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재난지원금 은밀한 '현금깡'···에어팟 중고 거래가 수상하다

by중앙일보

서울 성동구에서 동네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64)씨는 최근 단골로부터 ‘은밀한 청탁’을 받았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물건을 산 척 계산하면 현금으로 돌려달라는, 소위 말하는 ‘현금 깡’ 부탁이다. 김씨는 “반 농담, 반 진담 조로 얘기하는 사람부터 진지하게 부탁하는 단골까지 꽤 다양해서 난감할 때가 많다”며 “이것저것 수수료 명목으로 20% 떼고 현금으로 돌려주면 이득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게 했다가 걸리면 큰일 난다며 거절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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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현금화' 꼼수 성행


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지역 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쿠폰이나 상품권 형태로 지급했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현금화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온·오프라인 현장에선 정책 사각지대를 이용하거나, 혹은 단속을 피해 재난지원금을 현금화하는 '꼼수'가 성행한다.


20~30대에서 유행하는 재난지원금 현금화 방법은 ‘에어팟 프로’ 중고거래다. 삼성·LG 등 대기업이나 애플과 같은 외국계 기업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프리스비·윌리스 등 애플 공인 리셀러샵에서는 쓸 수 있다. 인기 모델인 에어팟 프로를 재난지원금을 통해 32만원에 산 뒤 ‘미개봉 새제품’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25만~26만원에 올려 판매해 ‘현금화’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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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래가 많다 보니 1주일 전만 해도 29만원 선이었던 가격이 점점 내려가 최근에는 24만원 수준에 거래가가 형성됐다. 그래도 여전히 거래가 많다. 중고 거래 사기 피해 건수도 늘었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고 하면 사기 거래를 의심하라’ ‘직거래 아니면 거래하지 말라’는 사기 거래 후기도 쏟아진다.


40~50대에서 유행하는 방법은 ‘실손보험 처리해 돌려받기’다. 재난지원금을 병원에서 쓸 수 있게 하자 나온 꼼수다. 재난지원금으로 비교적 단가가 높은 도수치료를 받은 뒤 가입한 실손보험을 통해 현금으로 돌려받는 수법이다. 도수치료 가격은 한 회에 25만~30만원 수준이다. 이 중 본인부담금 10~20%를 제외하고 보험사에서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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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5월부터 실손보험 청구가 급격히 늘었다. 한 보험회사 관계자는 “5월 이후 도수치료 실손보험 청구 건이 눈에 띄게 느는 추세”라며 “진료비 심사를 통해 적정 치료를 했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는데, 의사의 판단에 따른 부분이 많아 ‘편법 치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불법 '현금 깡'도 활발


꼼수가 아니라 노골적인 ‘불법 현금화’ 사례도 많다. 온라인에서 ‘ㅅㅂ(선불)’ 혹은 ‘ㅈㄴ(재난)’ 등 초성으로 검색하면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판매한다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드물지만 오프라인에서도 10% 낮은 가격에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를 사들인 뒤 되파는 상품권 판매 업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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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용처를 제한해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니 ‘깡’을 통해 현금화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예상됐던 일”이라며 “재난지원금 본연의 취지를 살리려 했다면 지금과 같이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더 많이 지원하는 방안을 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는 재난지원금 사용을 종료하는 8월 31일까지 부정유통 행위를 단속하기로 했다. 재난지원금을 지급 목적과 달리 현금화하다가 적발될 경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 선불카드 불법거래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이 본래 목적대로 잘 사용돼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극복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며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돼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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