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더오래

누구와 마시려고 아껴놓았나, 고독사한 할머니 냉장고엔…

by중앙일보

지난해 말 종영한 ‘냉장고를 부탁해’(JTBC, 2014~2019)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다. 셀럽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옮겨온 후, 유명한 셰프들이 나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 경연을 펼친다. 중간에 냉장고 속을 분석하면서 주인공의 성격을 추측하기도 하고 근황을 물어가며 토크가 진행된다. 대미의 하이라이트는 셰프들이 만든 음식 중에서, 주인공 본인의 입맛에 맞는 최고의 요리를 뽑는 것이다.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식재료가 멋진 요리로 바뀌면서 주인공은 놀라며 행복해한다.


내가 소개하려는 사연은 주인이 남기고 떠난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홀로 고독사하거나 무연고사망*, 혹은 몸이 불편해서 요양원으로 전입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할 기회조차 없다.


첫 번째 주인공은 서울 노원구에서 오신 김씨 할머니로 최근 요양원에 들어오셨다. 그녀의 집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유독 쓰레기가 많다’라는 특징이 보인다. 할머니는 거동이 점차 불편해지자 본인 의지대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지셨다. 그래서 곳곳에 쓰레기가 많고 정리 안 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방의 싱크대 밑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시려 왔다. 걸레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펼쳐져 있었는데, 아마 걸레질할 기력도 없어진 듯했다. 설거지할 때마다 물이 바닥에 튀기는데, 허리를 숙이고 무릎 꿇어가며 청소하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중앙일보
중앙일보

서울 노원구 김씨 할머니의 부엌과 냉장고. [사진 박민구]

두 번째 냉장고의 주인공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오신 정씨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 역시 거동이 불편해져서 요양원으로 전입하셨다. 할아버지의 냉장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맨 아래쪽 야채칸에 수북이 쌓여 있는 초코파이였다. 싱싱한 채소 대신 노인의 당을 책임지는 초코파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코파이를 보자 불현듯 광고가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는 정(情)의 대명사이다. 누군가와 나누지 못한 정이 야채칸에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혼자 보냈을 시간과 외로움이 유통기한이 지난 초코파이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앙일보
중앙일보

경기도 고양시 정씨 할아버지의 냉장고. [사진 박민구]

고독사는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종결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증가하는 사회적 배경에는 고령화, 핵가족화(1인 가구), 부양 부담, 개인주의 가치관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고독사에 대한 공식적인 데이터가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독사를 ‘통계 없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고독사라는 현상과 마주하면서 죽음은 인생의 마침이라는 결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방치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고, 가족과 사회와 단절되면서 소통 없는 외로움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고독하고 우울 증상에 빠지면 가장 먼저 마음의 문이 닫힌다. 자연스럽게 입맛도 잃게 되고 식욕이 없어지고 부엌에 가는 일도 드물어진다. 당연히 요리도 하지 않는다. 밥솥 안에 밥은 상하다 못해 벌레가 생기고, 냉장고의 식재료들도 모두 부패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햇반, 라면과 초콜릿 봉지가 방바닥에 나뒹굴어 다닌다. 결국, 마음이 죽으면 부엌도 함께 죽는다.


유품은 처리하는 게 아니라 정리한다고 표현한다. 유품은 쓰레기가 아니라 ‘고인이 남긴 물건’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래서 정리 작업에는 윤리의식이 항상 함께한다. 단순한 물건을 넘어선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품정리 회사인 사회적 기업 ㈜함께나눔에 가면, 1층에는 선별해서 모아놓은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물론 유가족에게 허락을 구하고 판매하는 물건들이다. 소각하거나 정리해야 할 유품들은 처분하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만 남아있다. 주로 옷이나 가구류, 전자제품 등이다.


고인들이 남긴 물건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바로 ‘담금주’였다. 왜 그렇게도 어르신들은 집에 담금주를 두고 드셨을까. 몸에 좋고 약이 되는 담금주라고는 하지만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담금주들이 집마다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버리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햇반이나 통조림처럼 판매하기도 쉽지 않아서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앞서 만나본 김씨 할머니의 사연이 다시 떠올랐다.


할머니는 평소 술을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머니 댁에는 담금주가 많이 있다. 이상해서 여쭤봤더니,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홀로 큰집에 남게 되었는데, 집이 너무 썰렁해지니깐 할아버지가 애장하던 담금주 통이라도 그 공간을 채워야만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현장에서 고인이 남긴 부엌과 냉장고를 촬영한 박민구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가 되어 떠나간 이들도 한때는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냉장고를 채우고, 채워진 냉장고를 비우며, 또 담금주를 담그고 누군가와 함께 마시기를 기원하며 살았을 것이다.”

중앙일보

고인이 남기고 간 담금주. [사진 박민구]

  1. ‘무연고 사망’은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를 알 수 없는 경우, 그리고 연고자는 있으나 시신 인수 거부 및 기피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나 가족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한편, 무연고 사망의 상위 개념이라 볼 수 있는 ‘고독사’라 하면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이나 공동체로부터 유리되어 홀로 임종하는 경우를 말한다.
  2. 아시아문화원이 기획하고 ㈜함께나눔이 수행한 『일인가구·무연고자 부엌조사 및 스토리텔링』사업의 결과보고서(2019) 참조.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