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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江南人流

재밌어야 팔린다…
시몬스의 ‘침대없는’ 마케팅

by중앙일보

그리스 신화 속 '잠과 꿈의 신'의 이름 모르페우스는 아편의 주 성분인 '모르핀'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편안한 잠은 일상의 피곤과 고통, 번민을 잊게 한다. 숙면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건강을 선물하는 셈이다. 지난 150년간 사람들에게 건강한 잠을 선물해온 브랜드가 있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시몬스' 침대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재미'와 '경험'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브랜드가 마케팅 전략으로 흥미로운 오프라인 공간을 열고 있는 이유다. 침대는 팔지 않는 침대 매장. 시몬스 침대가 지난 4월 1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에선 침대가 아닌 각종 문구류와 공구, 야구 모자 등의 굿즈를 판다. 브랜드 1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철물점으로 젊은층의 구미에 맞게 ‘힘을 뺀’ 재밌는 공간이라는 게 특징이다. 11m2(3.5평) 작은 공간에는 과거 미국에서 시몬스 침대 배송 기사들이 썼던 모자, 1950년대 시몬스 광고 사진이 프린트된 틴 케이스 등이 전시돼 있다. 물건 하나마다 시몬스 침대의 역사가 담겨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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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문을 연 성수동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오는 6월 말까지 문을 열고 이후에는 이천의 '시몬스 테라스'로 옮겨 운영된다. 사진 시몬스

한국 시몬스의 생산 시설이 위치한 경기도 이천에는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가 있다. 제품을 전시하는 쇼룸 역할을 하는 공간이지만 가끔은 침대와 상관없는 직거래 장터가 열리고, 장 줄리앙 같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전시가 열린다. 이천 지역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 참신한 문화 예술 전시를 기획하는 ‘라운지’ 행사가 대표적이다. 시몬스 테라스는 쌀과 도자기 외에는 이렇다할 지역 콘텐트가 없는 이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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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에서 지역 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열린 파머스 마켓. 사진 시몬스

매트리스의 우수함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일상에서 지켜야하는 ‘매너’를 강조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광고로 내보내고 침대와 관계없는 물건을 팔며 미술 전시를 한다. 덕분에 150년 전통의 침대 브랜드 시몬스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재밌고 쿨한 브랜드로 통한다.

쿨한 브랜딩 전략, 150년 헤리티지가 뒷받침

침대는 자주 소비가 일어나는 품목이 아니다. 평생 동안 많아야 3~4개의 침대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인지시키고 제품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몬스 침대가 침대와 관련 없는 브랜딩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재밌어서 관심을 갖게 되고, 한 번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면 침대 구입 시기가 왔을 때 자연스레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전략에는 필연적으로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 일명 ‘헤리티지(heritage)’가 필요하다. 시몬스는 올해로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맞았다. 매트리스 품질 말고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시몬스는 대량생산을 통해 침대를 대중화시킨 브랜드다. 미국 위스콘신주 케노샤의 작은 침대 공방에서 창립자 젤몬 시몬스와 9명의 엔지니어의 손에서 탄생한 시몬스 침대는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꿨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약 15달러 정도에 판매되던 침대는 고가 제품이었다. 상류층에서 독식했던 침대를 약 95센트까지 낮추는 데 성공한 사람이 바로 젤몬 시몬스다. 수작업으로 만들던 침대 스프링을 기계화를 통해 대량생산했기에 가능했다. 일반 대중도 침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침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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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미국 위스콘신주 케노샤에 위치한 시몬스 공장 내부 전경. 사진 시몬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 침대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광고 카피다. 이와 함께 부직포에 싸인 스프링 이미지가 떠오른다. 바로 ‘포켓 스프링’이다. 스프링이 각각 부직포에 싸여있어 소음이 적고, 옆 사람의 움직임에도 흔들림이 적다. 오랫동안 사용해도 쿠션의 변화가 적어 내구성도 좋다. 젤몬 시몬스 2세의 손에서 탄생한 포켓 스프링은 시몬스 침대 브랜드의 DNA가 됐다. 그는 1925년 세계 최조로 포켓 스프링 제조 기계 특허를 취득했다. 곧 포켓 스프링을 사용한 매트리스 컬렉션 ‘뷰티레스트(Beautyrest)’가 탄생했다. ‘아름다운 휴식’이라는 뜻의 뷰티레스트로 시몬스는 단숨에 세계 침대 역사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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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스의 1950년대 포켓스프링. 사진 시몬스

한국 시몬스의 새로운 기록들

시몬스 침대가 한국에 들어온 건 1992년이다. 지난 28년간 침대의 대중화를 이끈 한국 시몬스(대표 안정호)가 지금까지 생산한 매트리스는 약 440만개. 우리나라 인구의 약 10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단순 계산하면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1명이 시몬스 침대에 누운 셈이다.


한국 시몬스의 모든 매트리스가 생산되는 경기도 이천 ‘시몬스 팩토리움’의 매트리스 자체 생산 시스템은 해외 시몬스 직원들도 견학을 올만큼 최첨단을 자랑한다. 온전히 침대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곳으로 원자재 준비와 선정부터 포켓스프링 제작, 매트리스 생산 등 전 과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품질 관리도 까다롭다. 국가 기준보다 더 엄격한 1936가지 품질 관리 항목을 통과한 제품만이 최종 출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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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몬스의 모든 매트리스가 생산되는 경기도 이천의 '시몬스 팩토리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체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 시몬스

2000만원대 매트리스, 가치 소비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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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산 특수 부직포를 사용한 2020년 한국 시몬스의 포켓스프링. 사진 시몬스

미국 위스콘신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95센트 짜리 시몬스 침대는 어느새 2000만원대 최상의 침대로 변모했다. 2016년 제작된 최상위 매트리스 컬렉션 ‘뷰티레스트 블랙’이다. 한국 시몬스가 쌓아온 기술력에 최고급 소재를 집약한 제품으로 국내에 프리미엄 침대 바람을 일으켰다. 눕는 순간 우수한 지지력과 최상의 감촉을 선사하는 뷰티레스트 블랙은 고가임에도 숙면에 투자하는 ‘가치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국내 시장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최상급 휴식을 선사하는 호텔에서도 시몬스 프리미엄 매트리스 ‘뷰티레스트 블랙’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현재 서울 신라 호텔, 포시즌스 호텔 등 국내 5~6성급 특급 호텔의 매트리스 시장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시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