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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청와대 미남석불 쌍둥이 ‘경주 남산 불상’ 잃었던 머리 찾았다

by중앙일보

1100년 된 남산 약수골 석조여래좌상

10m 떨어진 자리서 온전한 불두 발굴

"지진 충격인 듯" 원래대로 복원 예정

청와대 보물 신라불상과 유사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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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굴조사 끝에 마침내 불두(오른쪽)가 발견된 경주 약수곡 석조여래좌상. [사진 문화재청]

신라 서라벌 지진에 목이 부러졌던 걸까. 경주 남산 약수곡에서 발견 당시부터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유명했던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마침내 머리(불두·佛頭)를 찾았다. 현재 불상이 위치한 곳에서 불과 10m 떨어진 땅을 발굴 조사한 결과다. 출토된 불두가 비교적 온전해서 석조여래좌상에 도로 붙이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과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3일 “경주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절터) 제4사지에서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머리가 발견됐다”면서 “불두의 미간 사이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도 제자리에서 떨어진 채 함께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발굴 당시 머리는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불두 주변에서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됐다.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은 높이 109cm, 어깨너비 81cm, 무릎너비 116cm에 이르는 통일신라기 불상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에 소개될 때도 머리가 없는 상태였다. 원위치는 알 수 없으나 옮겨온 현재 위치에 반듯이 놓여있고 주변에 불신을 받치는 3단 대석도 비교적 온전하게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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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 모습.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례좌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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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견된 불두는 '머리 없는 불상'으로 유명한 경주 약사골 석조여래좌상(사진 아래쪽)으로부터 불과 10m쯤 떨어진 곳(주황색 원)에서 출토됐다. [사진 문화재청]

발굴조사를 담당했던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성윤 팀장은 “지난해 8월부터 지표조사에 이어 보수 정비를 위한 발굴 조사를 하던 중 현재 불상 자리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면서 “얼굴에 금박을 입힌 흔적까지 남아 있는 등 출토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불두는 높이 50cm, 너비 35cm에 둘레가 110cm에 이르고 무게는 약 200㎏이라고 한다.


"석고 떠보니 머리-목 부분 딱 맞아"

출토 후 기초연구에 참여했던 임영애 동국대 교수(미술사학과)는 “불상의 목 부분과 불두 아랫부분을 각각 석고 떠서 맞춰보니 딱 맞아 떨어졌다”면서 “이렇게 똑 부러진 것은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연구 검토 과정을 거쳐 이번에 찾은 불두와 석불좌상을 복원할 예정이다.


이번 불두 발굴이 더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 석조여래좌상이 이른바 ‘미남석불’로 불리는 청와대 녹지원 불상과 ‘쌍둥이’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 녹지원에 있는 ‘미남석불’의 정식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약 1100년 전 석불임에도 코끝과 양쪽 귀볼, 왼손 검지 끝이 약간 손상된 것을 제외하고는 불신이 온전한 상태라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2018년 보물 1977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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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약수곡 불상과 '쌍둥이급'으로 추정되는 청와대 '미남석불'.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 녹지원에 있는 ‘미남석불’의 정식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2018년 보물 1977호로 지정됐다. [사진 문화재청]

약수곡 불상은 비록 머리는 없었지만 청와대 ‘미남석불’처럼 ‘항마촉지인’, 즉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단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 아래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또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대좌(불상을 놓는 대) 상당수가 팔각형으로 조성된 데 비해 이 불상의 대좌는 방형(사각형)으로 조각됐다.


통일신라기 희귀한 '사각대좌' 특징

이 사각대좌는 학자들이 청와대 석불과 약수골 불상을 ‘쌍둥이급’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몸 크기만 남산 불상이 살짝 큰 정도다. 임영애 교수는 “2017년 관련 논문을 쓰면서 두 불상이 동일한 시기, 동일한 집단에 의해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내렸다”면서 “이번에 나온 불두를 통해 심층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와대 녹지원 불상의 애초 출토지는 경주 도지동 이거사(移車寺) 터가 유력하다. 서울로 언제 옮겨졌는지는 명확치 않지만 1917년 3월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권5에도 사진과 함께 “(남산) 총독관저에 안치돼 있다”고 적혀 있다. 이후 총독관저가 현재 청와대 자리로 옮겨가면서 석불도 함께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청와대 석불의 경주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