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는 없지만 아기는 있는 유인영…‘굿캐스팅’의 진짜 의미

[컬처]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

국정원 현장 투입된 화이트 요원 임예은 역

기존 악녀 이미지와 상반된 맘 여린 싱글맘

데뷔 15년 만에 세련미 벗고 대표작 만나

선배들 뛰어넘는 청출어람 액션 연기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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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연속 월화드라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SBS ‘굿캐스팅’에서 가장 굿캐스팅은 누구일까. 현장에서 밀려나 근근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국정원 요원 3인방의 변신이 고루 호평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임예은 역을 맡은 배우 유인영(36)이다. 사이버 안보팀 소속으로 3년 전까지 전설의 요원으로 군림했던 백찬미 역의 최강희는 드라마 ‘7급 공무원’(2013)부터 ‘추리의 여왕’ 시즌 1, 2(2017, 2018) 등을 통해 다져진 실력자이자, 대테러 대응팀의 에이스로 굵직굵직한 사건을 도맡았던 황미순 역의 김지영은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과 ‘엑시트’에서 볼 수 있듯 둘째가라면 서러울 능청과 억척 연기의 달인인 반면, 유인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도전하는 일 투성인 탓이다.


극 중 산업보안팀 현장지원부 소속 화이트 요원인 그는 현장에 나가는 것도 처음이요, 컴퓨터 모니터 바깥으로 나와 작전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처음이다. 상대를 제압하기는커녕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 일반인과 함께 적에게 납치되기도 하고, 본디 해킹 전문이지만 적에게 역 해킹되어 약점을 잡히는 바람에 팀의 정보를 넘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국정원 입사 동기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생겼지만 불의의 사고로 남자친구를 잃고 홀로 남아 딸을 키워야 하는 싱글맘이기에 싱글인 백찬미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처지도 안되고 워킹맘 황미순처럼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굳건한 강심장도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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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설정 하나하나는 유인영에게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03년 리바이스 모델로 데뷔해 줄곧 연기보다는 10등신 외모로 주목받아온 그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이기 때문이다. ‘굿캐스팅’ 유인영의 연관 검색어로 ‘패션’이 가장 먼저 뜰 만큼 패셔니스타의 면모는 여전하지만, 사연이 녹아든 옷차림은 그의 연기를 한층 빛나게 돕는다. 사건을 위해 위장 침입한 일광하이텍 광고기획팀에서는 애 엄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힙한 패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아이와 함께 장 보러 갈 때면 가디건에 원피스 차림으로 새댁 이미지를 구현하는 식이다. 양쪽 다 현장과 동떨어지기는 매한가지나 그 역시도 임예은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보탬이 된다.


배우로 전향 이후 줄곧 따라다녔던 수식어를 하나씩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2005년 ‘드라마시티-오!사라’로 시작해 그해 ‘러브홀릭’부터 주연으로 발탁됐지만 돈 많은 부잣집 딸 이미지는 ‘미우나 고우나’(2007~2008)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 ‘바보엄마’(2012) ‘원더풀 마마’(2013)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지난 15년간 쉴 새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되려 차갑고 도도하고 세련된 악녀 이미지만 고착된 셈이다. 드라마 ‘가면’(2015)으로 SBS 연기대상 특별 연기상, 영화 ‘여교사’(2017)로 춘사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는 등 상복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세울 만한 대표작은 없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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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굿캐스팅’ 제작발표회에서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 중 하나가 ‘악의가 없는 유인영’이라는 말이 있던데 이번 드라마에서 악의가 없는 캐릭터를 맡게 돼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을 정도. “항상 새로운 캐릭터에 목말라 있었다”는 그는 오랫동안 연기 변신을 꿈꿔온 만큼 ‘악의’는 쏙 빼고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을 더해 열연 중이다. 작전 중에는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시선을 뗄 수 없는 막내지만, 철부지 톱스타 강우원(이준영)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면 러브라인과 모성애가 동시에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12회에서 자신의 딸을 볼모로 협박한 서국환(정인기) 국장을 향해 싸대기를 날리는 등 후반부로 갈수록 활약도 커지고 있다. 학창시절 학교폭력 피해자로 떠밀리듯 자퇴해 검정고시를 패스했다는 인물 설명을 보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전사가 앞으로 이야기 전개에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긴 팔다리를 활용한 액션신이나 여전사 3명이 제대로 합을 맞추는 전투신이 더해진다면 유인영의 또 다른 진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아나. 선배들보다 나은 청출어람이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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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캐스팅'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연기가 재미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연기가 어렵고 그 무게감이 크게 다가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끝날 때쯤이면 그 생각도 달라질 듯하다. 매번 비슷한 틀 속에 갇혀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얼굴을 끌어내 주는 기쁨을 맛봤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 ‘FM적인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가 자신을 다그치고 몰아세우기보다는 오히려 고삐를 풀고 놓아주는 연습을 한다면 더 큰 발견이 잇따를지도 모른다. ‘굿캐스팅’이 전형성을 깨고 새로운 첩보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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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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