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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1억 탄 '전북판 구하라' 생모, 돌연 "양육비 7700만원 준다" 왜

by중앙일보

소방관 딸 순직, 32년 만에 1억 탄 생모

법원 "홀로 키운 전남편에 양육비 지급"

생모 항고포기…"여론 악화에 백기" 분석

4000만원 지급후 5년간 매달 60만원 이체

중앙일보

지난해 1월 순직한 소방관 빈소. [사진 소방관 언니]

"양육비 청구는 부당하다"던 '전북판 구하라'의 생모가 마음을 바꿨다.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등 1억원가량을 타간 생모가 두 딸을 홀로 키운 전남편에게 법원이 판결한 양육비 7700만원 전액을 주기로 했다.


소방관 딸의 친부인 A씨(63)를 대리해 전 부인 B씨(65)를 상대로 두 딸에 대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강신무 변호사는 2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B씨가 항고를 포기하고 본인 변호사를 통해 합의를 제안해 최근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합의서를 통해 "전주지법 남원지원 양육비 사건 판결(심판)에 관해 상대방(생모)은 청구인(전남편)에게 2020년 6월 28일까지 400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3700만원은 5년(60개월)간 월 61만7000원씩 2020년 7월 27일을 기점으로 2025년 6월 26일까지 매달 26일 지급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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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판 구하라'라 불리는 소방관 딸의 생모가 법원이 판결한 양육비 7700만원 전액을 두 딸을 홀로 키운 전남편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 생모는 오는 28일까지 4000만원을 먼저 주고, 나머지 3700만원은 5년에 걸쳐 매달 약 60만원씩 보내주기로 했다. [사진 강신무 변호사]

앞서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는 지난 12일 "B씨는 A씨에게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모의 자녀 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도 공동 책임"이라며 "상대방(생모)은 두 딸의 어머니로서 청구인(전남편)이 딸들을 양육하기 시작한 1988년 3월 29일부터 딸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두 딸에 관한 과거 양육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상대방(B씨)은 현재 순직유족연금(매달 91만원)을 지급받고 있는 계좌 정보를 청구인(A씨)에게 공개하며(압류금지 계좌인 경우 압류금지가 아닌 계좌로 변경하여 공개한다), 계좌를 변경할 경우 청구인의 법률대리인에게 즉시 통지한다"고 합의했다. "만약 통지 없이 다시 압류계좌 등으로 임의 변경할 경우 강제집행면탈 행위를 한 것으로 본다"는 단서도 달았다. 강제집행면탈은 채무자가 강제집행을 피하려고 재산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 명의로 바꿔놓은 경우 적용된다.


양측은 B씨가 약속한 시점까지 4000만원을 지급하지 않거나 매달 보내는 돈을 두 차례 이상 지급하지 않으면 이번 합의를 무효로 하기로 했다. 아울러 "(합의) 이행 완료 후 당사자 쌍방은 이 사건 판결에 관해 일체의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며, 이를 어기고 이의를 제기한 자는 일체의 민·형사상 책임을 감수한다"고 합의했다. 당초 "양육비를 줄 수 없다"고 버티던 B씨는 본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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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고(故) 구하라씨 빈소. 뉴스1

앞서 전북 전주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장례식장조차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전 부인 B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83년 1월 결혼한 A씨 부부는 1988년 3월 협의 이혼했다. 당시 각각 5살, 2살이던 두 딸은 A씨가 노점상을 하며 키웠다.


A씨 소송은 수도권의 한 소방서 소속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던 작은딸(당시 32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다 지난해 1월 극단적 선택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순직이 인정된다"며 A씨가 청구한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법적 상속인'이자 친모인 B씨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B씨가 받은 유족급여 등은 A씨가 수령한 금액과 비슷한 약 8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는다.


이에 분노한 A씨와 큰딸(37)은 양육비 소송으로 맞섰다. 둘이 합쳐 총 1억1100만원을 청구했다. 반면 B씨는 "전남편은 이혼 후 딸들에 대한 접근을 막고, 딸들이 엄마를 찾으면 딸들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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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왼쪽 두 번째) 의원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가수 고(故)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오른쪽 두 번째) 등과 함께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국회의원(서울 중랑구 갑)은 지난해 11월 초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상속권을 박탈하는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가수 구하라씨는 같은 달 24일 세상을 떠났다.


구하라씨의 친오빠 구호인씨는 지난 3월 서 의원이 만든 법을 기반으로 국회에 일명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올려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으나, 20대 국회 처리는 불발됐다. 서 의원은 이달 초 '구하라법'을 다시 대표 발의했다. 그는 "구하라씨는 20년, 전북판 구라하씨는 32년을 생모가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유기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부모는 범죄로 처벌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는 게 국민의 상식과 인간의 도리에 맞는 보편적 정의"라고 했다. 순직 소방관의 친언니 C씨는 "21대 국회에서는 '구하라법'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