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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초콜릿 같은 홍콩 꿈꿨던 소년, 천안문사태 뒤 반중 투사로

by중앙일보

보안법 체포된 빈과일보 사주 라이

12세에 품삯으로 받은 초콜릿

“홍콩 천당일 것” 1달러 들고 밀항

33세에 지오다노 창업 승승장구

천안문사태 겪고 반중 언론 발행

체포되자 지지자들 구독운동 벌여

모회사 주가 이틀간 1100% 급등

중앙일보

지미 라이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직접 참여해 왔다. 2014년 11월 11일 홍콩의 우산혁명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되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8월 31일 홍콩 시내에서 벌어지던 시위 현장. 중국으로 범죄 혐의자를 강제 송환하는 홍콩송환법에 반대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 노인이 서 있었다. 평범한 티셔츠 차림의 이 노인은 두 손을 맞잡은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주이자 반중 매체 빈과일보(頻果日報)의 창간인인 지미 라이(黎智英·72)였다. 지난해 여름 홍콩의 시위 현장에서 마주쳤던 그는 1년 후인 지난 10일 새벽 홍콩 호만틴(何文田)에 위치한 자택에서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두 달 전 홍콩보안법이 통과되며 시시각각 체포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그는 홍콩을 떠나지 않았다.


라이는 중국 공산당이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직전인 1948년 12월 8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태어났다. 그가 일곱 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홍콩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이른바 ‘노동 개조’를 받는 신세였다. 그의 자서전 『나는 지미 라이다(我是黎智英)』에 따르면 집 안의 이런저런 물건을 팔아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처지여서 그는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폼페이오 “중국 공산당, 홍콩 자유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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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0일 체포된 뒤 우산혁명 주역인 시우카춘 의원은 빈과일보가 백지로 발행돼도 사서 보겠다는 의미로 가상의 백지 신문을 든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그랬던 그의 삶의 첫 변곡점은 12살 때였다. 기차역에서 짐을 나르고 품삯을 받던 그는 12살 나이에 홍콩 돈 1달러만을 몸에 지니고 마카오를 거쳐 홍콩으로 밀항했다. 가난한 소년을 움직인 건 달콤한 초콜릿이었다. 한 번은 기차역에서 홍콩 손님의 짐을 날랐는데, 그가 돈 대신 초콜릿을 줬다. 그동안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걸 입에 넣는 순간 천하에 이런 맛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때 라이는 “이 사람은 홍콩 사람이고 초콜릿은 홍콩에서 왔으니 홍콩은 반드시 인간 천당(天堂)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서전에서 밝힌 밀항의 계기였다.


60년 홍콩에 들어온 그는 당시 한 달에 3달러를 받으며 밀입국 소년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16세 땐 가발공장에서 일했다. 어려운 청소년기를 버텨낸 그는 33세였던 81년 지오다노를 창업했다. 뉴욕 맨해튼 여행 중 들렀던 피자집의 이름을 따서 창업했다. 창업은 어릴 적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무엇을 팔건 ‘라오반(老板·주인)’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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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찰이 10일 밤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아그네스 차우를 연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창업 이후 승승장구하는 기업인의 삶을 살던 그는 89년 다시 인생을 바꾼다. 그해 6·4 천안문(天安門) 사태를 지켜본 그는 중국 공산당의 무자비한 민주화 운동 진압에 격분했다. 지오다노의 티셔츠에 “내려오라! 우리는 분노했다!” 등의 구호를 넣어 홍콩 시민에게 나눠주고, 이들이 항의 시위를 할 때 입도록 했다. 이듬해인 90년 본격적인 반중 행동에 나섰다. 넥스트미디어 그룹을 세워 잡지 ‘일주간(壹週刊)’을 발행했다. 여기에 ‘XXX 리펑(李鵬)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자극적인 글을 실었다. 천안문 사태 무력 진압에 책임이 있다고 봤던 리펑 총리를 향해 욕설을 넣어 공개 비난한 것이다. 그의 중국 내 지오다노 사업이 무사할 리 없었고, 그 또한 중국 입국이 막혔다. 그럼에도 라이는 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하며 중국 비판의 수위를 더 높였다.


중국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 된 셈이다. 중국 관영 신화사(新華社)는 지난해 8월 ‘홍콩에 재난을 안기는 4대 인물’이라는 보도에서 라이를 첫 번째 인물로 꼽았다. 반중 매체를 설립한 것은 물론 홍콩 민주화 세력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까지 그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의 민주당과 공민당, 천주교 홍콩교구 등에 꾸준하게 성금을 내 왔다. 2009년의 경우 민주당이 비당원에게서 모금한 전체 액수의 99%를 그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벌어졌을 때 그가 지원한 돈이 무려 5000만 홍콩달러(약 76억원)에 달한다고 중국 인민일보는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30일 홍콩보안법이 통과됐을 때 ‘반중 인생’ 30년을 살아온 그의 체포는 사실상 시간 문제로 여겨져 왔다. 홍콩보안법이 통과됐을 때 라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중국인임이 자랑스럽고 내 조국을 사랑한다. 불행한 건 내 조국이 중국공산당이란 사악한 정권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우산혁명 주역 차우도 전격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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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홍콩 시내에선 시민들이 빈과일보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AP=연합뉴스]

지미 라이의 체포 소식을 1면에 전한 11일자 빈과일보는 평소의 5배 이상인 50만 부가 발행됐지만 홍콩 주민들 사이에서 빈과일보 구매 운동이 벌어지며 다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홍콩 증시에 상장된 빈과일보의 모회사 ‘넥스트 디지털’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주가가 치솟으며 이틀간 1100% 이상 급등했다.


미국은 그의 체포에 공개 반발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0일 성명을 내 “홍콩의 사업가이자 유명한 민주화 운동가인 라이가 체포된 데 깊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트위터에 그의 체포를 놓고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자유를 없애고 주민들의 권리를 약화시켰다는 추가적인 증거”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홍콩당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주 인사들을 잡아들이고 있다. 홍콩 경찰은 10일 밤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홍콩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아그네스 차우(周庭)를 수갑을 채운 뒤 전격 연행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