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 부른 유부녀 납치극 ‘아름다운 헬렌’

[컬처]by 중앙일보

헬렌(헬레네)은 고대 그리스의 최고 미녀였다고 하지요. 거위로 변한 여신과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의 딸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녀는 신화 속 주신인 제우스와 인간인 스파르타 왕비 레다의 딸이었습니다.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한 헬레네에게 그리스 전역에서 오디세우스 등 당대 영웅을 포함한 많은 구혼자가 몰려왔다지요. 이 중에 아가멤논의 동생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한편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받은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지요. 스파르타를 방문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트로이로 돌아갔습니다.


부인을 빼앗긴 메넬라오스의 요청에 따라 그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되고 이에 대항해 트로이에도 동맹군이 모여 양측이 싸우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목마’가 등장하는 트로이 10년 전쟁이랍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 신들의 대리전인 트로이 전쟁의 스토리가 담겨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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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과 파리스(다비드 작). [사진 flickr]

이런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이 창작된 작품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아름다운 헬렌’입니다.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렌(헬레네)과 양치기로 자라난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둘러싼 신화 속 사랑 이야기인 이 작품은 오페레타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의 최고의 작품이지요. 시대 풍자와 세포 사이사이마다 착착 붙는 리듬, 멜로디, 하모니, 그리고 흥겨운 춤이 펼쳐지는 즐거운 명작이랍니다. 자, 처음 들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신나는 오페레타 속으로 들어가 보자구요.


경쾌한 리듬과 아름다운 멜로디의 전주곡이 흐르고 막이 오르면, 스파르타 광장에서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제사장 칼카스에게 비둘기가 한 마리 날아오는데, 약속대로 파리스와 헬렌을 만나게 해주라는 아프로디테의 편지가 전해집니다. 지시를 받은 제사장은 자신 앞에 나타난 양치기가 바로 파리스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섬기기로 하지요. 파리스는 아리아 ‘이다 산 숲에서’를 부르며 신화 속의 사과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이 세상 최고의 미인인 헬렌을 만나러 온 것이랍니다.



축제가 시작되고 왕들이 입장합니다. 아킬레우스와 메넬라오스, 그리고 아가멤논 등이 등장하고 헬렌도 자리에 앉습니다. 아가멤논의 주재로 점차 허약해지는 그리스의 운명을 걱정하고 서로의 지혜를 겨룹니다. 파리스가 지혜를 뽐내며 자신이 트로이의 왕자임을 밝히자 헬렌과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지요. 그에게 왕비 헬렌이 월계관을 수여하고, 메넬라오스는 그를 저녁 만찬에 초대합니다.


파리스가 제사장에게 남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가 주문을 욉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대지가 흔들립니다. 이에 제사장은 제우스 신이 노했다며 메넬라오스에게 당분간 자리를 피하라고 하지요.


파리스가 방에 들어오자 헬렌은 심쿵하는 마음을 감춥니다. 그녀가 자신을 환영하지 않자 그는 실망하며 물러나고, 그가 사라지자 안타까워하는 헬렌. 그녀는 칼카스에게 꿈속에서라도 그리운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헬렌이 잠든 사이 파리스가 등장해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요. 잠을 깬 헬렌이 눈앞의 멋진 파리스를 보고는 자신이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며 기뻐합니다. 그와 키스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요. 단지, 꿈 일 거라며!


그때 갑자기 메넬라오스가 왕비의 침실에 들어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분노합니다. 모든 그리스의 왕들을 호출한 그는 두 사람의 불륜을 폭로하며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고발한답니다. 오펜바흐는 이런 심각한 장면도 시대를 풍자하며,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음악을 풀어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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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헬렌(모건 작). [사진 Wikimedia Commons]

헬렌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교양 없이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갑자기 돌아온 메넬라오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비난합니다. 부인이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허허…. 이런 여론몰이에 어이없어하는 메넬라오스. 황당한 상황에서도 그는 파리스의 처벌을 주장하고, 결국 파리스를 스파르타에서 추방합니다.


그 후 해변에서 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는데, 메넬라오스가 파리스를 추방하여 아프로디테가 복수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의 남녀 모두가 쾌락을 추구하여 도덕적으로 위험한 지경이 되었다는 거예요.


아가멤논과 칼카스가 나타나 메넬라오스를 설득합니다. 여자 때문에 조국을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냐고 달래기도 합니다. 세 사람은 리드미컬하게 귀에 쏙쏙 와 닿는 3중창 ‘그리스가 전쟁에 휩싸여’를 부릅니다.


그들은 메넬라오스가 희생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왕비를 포기하라고 압박하지요. 특히 아가멤논은 신이 원하였기에 자신도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다는 겁니다.


이때 아프로디테가 보낸 새 제사장이 탄 배가 해안으로 오고, 사람들은 새로운 제사장을 환영합니다. 새 제사장은 헬렌을 키테라로 데려오라는 여신의 뜻을 전하고, 그제야 메넬라오스는 흔쾌히 신의 뜻을 받들기로 합니다. 파리스가 새 제사장으로 변장했음을 알게 된 헬렌은 가기 싫은 척 배에 오르지요.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자 파리스는 자신의 정체를 소리쳐 밝히고 헬레네와 포옹하며 흥겨운 막이 내립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2022.08.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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