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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캔버스에 립스틱 바르는 남자

by중앙일보

전병현 작가 ‘루즈 스토리’ 인기

“아내 안 쓰는 립스틱, 재미로 시작

랜선 올리니 세계서 1800개 보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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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도, 수채화도 아닌 립스틱으로 그린 그림. 전병현(63·사진) 작가가 서울 돈화문로 나마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루즈 스토리’ 연작이 컬렉터들의 타깃이 됐다.


박주열 나마갤러리 대표는 “개막 후 루즈 스토리 20점 중 15점이 순식간에 팔렸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풀꽃 시리즈’ ‘나무꽃 시리즈’ ‘루즈 스토리’ 등 3가지 테마의 작품 50여 점을 내놨다.


1980년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벽화를 공부한 작가는 한지로 만든 부조 바탕에 습식 벽화 기법으로 작업한 ‘블로썸’ 연작으로 유명하다. 재료를 대주던 한지 장인이 세상을 떠난 후 2017년부터 직접 닥나무를 키우며 한지를 만들고 있다. 매일 새벽 4시 곤지암의 닥나무 농장을 찾고, 10시에 서울 작업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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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년 전부터 재미로 립스틱 초상화를 그렸다. 인터넷으로 그림 재료를 소재로 소통한 결과”라고 했다. “우연히 아내 서랍 속에서 안 쓰는 립스틱 10여 개를 봤어요. 수많은 여성이 이런 걸 갖고 있다는 걸 알고선 랜선 저편 사람들과 교감하며 그림을 그려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죠.”


2001년부터 ‘싹공일기’라는 제목으로 들풀 일기를 쓰며 그림을 소개해온 그가 인터넷에 “쓰지 않는 립스틱 보내주면 그림을 그리겠다”는 글을 올리자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립스틱을 보내줬다. 순식간에 1800여 개가 모였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에서 샘플을 보내주기도 했다.


전 작가의 립스틱 그림은 ‘핑거 페인팅’이다. 립스틱을 손에 묻혀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세밀한 부분은 깎은 붓으로 표현한다. “립스틱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은 ‘행복’이었다”는 그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로 가려진 입술과 미소를 제 그림을 통해 드러내게 돼 기쁘다”고 했다. 박주열 대표는 “립스틱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건 전 작가가 처음일 것”이라며 “관람객들은 창의적인 발상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린 그림을 무척 신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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