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 세계여행] 신들의 산에서 굽어봤다. 우리네 세상은 왜 이리 작은가

[여행]by 중앙일보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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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을 거느린 산이 있습니다. 당당한 기세로 우뚝 솟아 구름 아래 세상을 제압하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한라산이 제주도를 지배하는 것처럼,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도 산 하나가 압도합니다. 키나발루(Kinabalu). 해발 4095m의 고산으로,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영봉입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가 ‘키나발루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키나발루는 원주민 카다잔두순(Kadazandusun)족의 성지입니다. 카다잔두순족 언어로 ‘아키나발루(Aki-Nabalu)’가 ‘산의 조상’이란 뜻입니다. 카다잔두순족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산에 모인다고 믿습니다. 5년 전 진도 5.9의 지진으로 18명이 죽었을 땐 산이 벌을 내렸다며 벌벌 떨었습니다. 지진 발생 6일 전 서양 젊은이들이 정상에서 나체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주민은 산에서 사냥을 할 때 말을 삼간다고 합니다.


키나발루 산행은 꼬박 2박3일 걸렸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으나 정상에서 맞은 아침은 잊지 못합니다. 신의 땅에 들어와 인간의 땅을 굽어봤습니다. 보잘것없는, 비루하고 초라한 우리네 사는 꼴을 바라봤습니다. 인간은 왜 이리 작은가. 이 작고 약한 존재들은 왜 이리 악에 받쳐 사는가. 산에서 내려와 담배를 끊었습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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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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