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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뵌 적도 없는 조상 제사 언제까지 지내야 할까

by중앙일보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87)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로 귀성을 자제하라는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효자(?)임을 자행한 이가 적지 않았다는 소문이다. 대신 이를 빌미로 관광지가 크게 붐볐다 한다. 며칠 후가 걱정이다. 각설하고 조상을 섬긴다는 제사 얘기다.


시대가 달라져 제례의식이 많이도 바뀌었다. 명절 제사는 생략하고 기제사는 자시(子時, 밤 12시 경) 이후에 지내던 것을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출근길이 고단하다며 초저녁으로 옮기는 것이 대세가 됐다. 이제 제사를 옛날 예법대로 4대(고조)까지 지낼 것을 고집하면 고리타분한 인간 취급 받기에 십상이다. 내외 두 분의 제사를 한날로 옮기고, 그것도 귀찮다며 모든 제사를 한날한시에 몰아 지내는 경우도 있다. 아예 제사 자체를 없애기도 한다. 제사 지내기 싫은 며느리가 갑자기 교회에 나간다는 소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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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누가 지내느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제사 참여와 제수비용, 음식장만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돈만 주면 제삿날에 완벽한 제례음식을 배달해 주는 업종도 생겼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제사는 보통 장남이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다툼이 벌어지고 제사 참여와 제수비용, 음식장만 등으로 갈등을 겪는다. 요새는 돈만 주면 제삿날에 완벽한 제례음식을 배달해 주는 업종도 생겼다. 정갈하게 음식을 만드는 정성하고는 관계가 없어졌다. 여행지에 배달받아 제사를 지내는 것도 봤다. 찾아온 귀신이 당황하겠지만 그나마 지내는 게 다행이기는 한 건가?


산 자와 죽은 자의 교감과 존경심의 발로가 제사의 뜻이라면 사실 4대 봉사는 그 뜻에 맞지 않지 싶다. 얼굴도 모르고 뵌 적도 없는 조상을 기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논쟁이 있을 수 있어서다. 옛날에는 지금과는 달랐다. 6품 이상의 벼슬은 증조대(3대)까지, 7품 이하는 조부모(2대)까지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평민은 부모만 제사 지내라고 경국대전에 나와 있단다.


그런데 주자가례가 도입되고 나서 벼슬이 없는 백성도 4대 봉사를 하도록 했고, 지금까지도 옳은 예법으로 통한다. 제사의 형식도 시대마다 늘 논쟁거리였다. 형식이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제사의 형식은 집안마다 다른데 서로 자기 것이 옳다고 상대방식을 헐뜯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옛 당파싸움의 소산이라는 설도 있다.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은연중 서로 상놈의 방식이라며 괜한 트집을 잡기도 한다는 거다.


제사는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장남이 지낸다. 그런데 500여 년 전에는 지금으로선 낯선 외손이나 윤회봉사가 일반적 관행이었다. 외손봉사는 딸(사위)이, 윤회봉사는 서로 돌려가면서 지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행이 장남에게만 집중되는 제사의 임무를 형제자매가 서로 나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명종 때부턴가 이런 관행은 금지되고 동종(同宗)의 적장자에게만 그 자격이 주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조상을 섬기는 제례에는 제사뿐 아니라 묘사(시사)라는 것도 있다. 4대 봉사가 끝나면 5대부터는 묘사에 올려진다. 그런데 지금은 증조나 조부모도 묘사로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라도 지내면 그나마 다행이다. 묘사를 아예 없애버린 경우도 흔하다. 묘사는 말 그대로 직접 묘에 가서 지내는 게 원칙이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는 이제 드물어졌다. 산이 험해 길이 없어지고 거리가 멀어 아예 재실(齋室) 등에서 혹은 집에서 한꺼번에 겸상으로 지내거나 잘해야 첨상으로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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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덕목이 조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일 텐데, 지금은 조상을 기리는 도리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조상귀신이 가족을 잘 돌봐 줄 것이라는 발복(發福)의식 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단다. [중앙포토]

시대 상황에 따라 예법도 변하는 것. 옛날 것을 고집해 봤자 비난만 받는 풍조가 됐다. 어느 선배는 묘사와 벌초가 힘들어 산소가 있는 산기슭에 주과포(酒果脯) 차려놓고 고유(告由)를 지냈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산소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자연에 회귀하겠다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보였다. 늙은이가 길도 없는 숲속을 헤집고 갈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죽고 나면 자식들이 계속해 할 일도 아니라서 미리 선언하는 셈이라 치고 그랬단다.


역사를 보면 관혼상례의 예법도 자주 바뀌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제사의 덕목이 조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일 텐데, 지금은 조상을 기리는 도리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조상귀신이 가족을 잘 돌봐 줄 것이라는 발복(發福)의식 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단다. 앞으로는 필시 제사와 묘사는 없어지거나 더욱 간소화될 것이 뻔하다. 잘된 건지 못된 건지는 모르겠다. 요즘 세태는 내 죽으면 화장해서 고향산천에 뿌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가 추세다. 내세를 믿지 않는 나도 그런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