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조용한 열광 ‘브람스를 …’ 그 뒤엔 음대 출신 작가

by중앙일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쓴 류보리

대학서 바이올린·경영학 복수전공

경험 녹인 생생한 클래식 세계 풀어

‘연주 길’ 걷는 음악인에 대한 헌사

“배우들 실제 연주실력에 놀랐어요”

중앙일보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라벨의 '치간느'를 연주하는 박준영(김민재)과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터너를 맡은 채송아(박은빈). [사진 SBS]

‘디테일’의 힘.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부쩍 두드러진 요소다. 백마 탄 ‘실장님’과 미모의 ‘평범녀’가 벌이는 러브스토리, 출생의 비밀로 얽힌 ‘막장형’ 전개 등은 옛말이다. 현실성과 촘촘한 세부 묘사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드라마 작가들의 힘이 크다는 평이다. 문유석 전 판사가 집필한 ‘미스 함무라비(tvN)’, 육아전문지 기자 출신 노선재 작가가 쓴 ‘오 마이 베이비(tvN)’, 산업의학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쓴 ‘닥터 탐정’ 등이 대표적이다.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빠질 수 없다.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늦깎이 음대생이 됐지만 현실과의 괴리에서 고민하는 채송아(박은빈), 뛰어난 재능으로 성공한 연주자가 됐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박준영(김민재), 신동이라는 칭송을 받고 자랐지만 재능의 한계에 직면한 이정경(박지현) 등 29세에 접어든 클래식 음악도들의 사랑과 좌절, 성장담을 그린 이 작품은 10회(9월 29일)까지 평균 시청률 5.5%, 4개 작품이 경쟁 중인 월화드라마 시장에서 2위로 선전하고 있다.


드라마는 화려해 보이지만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음악도의 현실, 스타 연주자와 문화재단의 미묘한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클래식 팬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


디테일의 원천은 대본을 쓴 류보리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서울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이후 미국 뉴욕대에서 공연예술경영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세계적 예술 매니지먼트사인 IMG아티스트와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인턴을 거쳐 뉴욕 필하모닉 마케팅부와 소니뮤직 마케팅부에서 근무했다. 서면으로 류 작가를 만났다. 류 작가의 얼굴 사진은 작가의 의사를 존중해 드라마 스틸컷으로 대체했다.


Q : 제목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정한 이유는.


A :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의 삼각관계를 염두에 둬서다. 브람스는 친구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가들의 러브 스토리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데다, 타인이나 어떤 대상(음악)을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인물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 세 사람이 떠올랐다.”


Q : 주인공 채송아는 경영학과를 나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늦깎이 음대생으로 진학했다. 본인의 분신 같은 페르소나일까.


A : “송아를 늦깎이 음대생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언가를 좋아해서 잘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싶어서다. 나는 바이올린을 두고 송아와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없다. 연주보다 일을 하고 싶다고 일찍 결정했고, 진로에 강한 확신을 갖고 대학 시절 내내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채송아와 나의 비슷한 점이라면 선택을 존중하고 기다려준 가족이 있다는 정도다.”


Q : 대본의 에피소드들은 실제 경험인가. 또, 천재 피아니스트 박준영이 조성진·김선욱 등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A : “작품 내용은 대부분 픽션이고, 박준영 역시 염두에 둔 모델은 없다. 이 작품은 악보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매일매일 묵묵히 평생 연습하며 살아가는 음악가들에 대한 나의 소박한 헌사다.”


Q : 매회 배우들의 연주가 등장한다. 전공자로서 이들의 연주 실력을 평가하자면.


A : “배우들의 악기 연주에 대한 칭찬은 16회짜리 미니시리즈 대본 분량만큼 쓸 수 있다. ‘브람스를…’ 배우들이 보여준 연주 연기는 실제 연주자라해도 무방할 정도다. 내 주변 전공자들도 많이 놀란다. 캐스팅 직후 열정적으로 연습했다.”


Q : 극 중 인물들의 심리를 클래식 연주곡들로 풀어내는 대목들이 인상적이다.


A : “곡의 분위기나 구성, 작곡 배경 등이 해당 장면과 잘 맞아떨어지는지가 선곡의 최우선 순위다. 예를 들어 페이지터너(연주자 대신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인 송아와 피아노 연주자인 준영의 손이 부딪히게 된다. 여기서 선곡한 라벨의 ‘치간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 반주 없이 독주로 3분 30초를 먼저 연주한다. 그동안 피아노 연주를 하지 않던 준영이 악보를 넘기려고 하다가 두 사람의 손이 부딪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선곡의 목적이었다. 또, 정경(바이올린)과 현호(첼로)·준영(피아노)이 트리오 연습을 하다가 준영과 정경의 갈등으로 연습이 중단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세 사람이 연습하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 1악장’은 첼로와 피아노가 함께 시작하고 바이올린이 조금 후에 합류하는 구성이다. 이들의 삼각관계 상황과 맞아 선곡했다. 등장인물이 연습하는 장면의 곡들은 대부분 배우들이 골랐다. 짧은 장면이라도 각자 좋아하는 곡을 연습해 시청자에게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Q :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A : “2018년 SBS문화재단 극본공모 2부작 부문에서 최우수로 당선됐고, 지난 1년 동안 2부작 드라마 두 편(‘17세의 조건’ ‘외출’)을 방송했다. ‘드라마 작가는 혼자 글 쓰며 혼자 일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혼자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분들, 특히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설득하며 함께 방향을 잡아가는 시간도 적지 않다. 회사에 다니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직업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