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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실패한 은퇴자 리어왕이 던지는 두가지 교훈

by중앙일보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82) 


중앙일보

평생 모은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난 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비극의 주인공 '리어왕'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 영화 '리어왕' 스틸]

실패한 은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리어왕입니다. 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을 발표한 지 40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리어왕의 비극도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대한민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극의 주인공 리어왕은 첫째, 둘째 딸에게 자신의 왕국을 물려주고 남은 노후를 편안하게 살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두 딸은 왕국을 물려받은 후 늙은 리어왕을 무시하고 아무런 권력도 없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냉대합니다. 두 딸에 대한 분노와 어리석은 판단을 한 자신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한 리어왕은 궁전을 뛰쳐나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면서 불효한 두 딸을 저주하며 광분합니다. 프랑스 왕과 결혼한 막내딸 코델리아는 아버지 리어왕의 안타까운 상황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진격했지만 결국 두 언니에게 패하고 맙니다. 코델리아는 병사의 손에 죽고, 리어왕은 사랑하는 막내딸의 시체를 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참 슬픈 이야기입니다.


평생 모은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난 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리어왕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노후에 활용해야 할 자금을 자녀 결혼자금, 석박사 공부하는 비용, 주택마련 비용으로 써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리어왕의 슬픈 모습을 봅니다.


은퇴를 앞둔 예비은퇴자에게 묻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자녀 결혼자금’이라고 답합니다. 자신의 노후 준비자금을 깨 자녀의 결혼자금으로 써 버리려고 합니다. 노후에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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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금, 자녀의 결혼자금보다 먼저 준비해야 할 자금이 ‘노후준비자금’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 pixabay]

기억해야 할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 자녀의 사전에는 ‘부모 부양’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결혼할 때는 부모가 당연히 도와주리라고,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나이가 들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때 자신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드물고 그것을 위해 경제적인 준비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더 힘듭니다.


두 번째는 부모 부양할 능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 집을 마련하고 자녀 교육하느라 부모를 부양할 능력을 갖추기 힘든 상태입니다. 386세대,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와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마지막 세대라고 하는데, 이 현실은 단지 마음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자녀에게 노후를 부양할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도 버거운 상황이니까요.


변화된 시대에 변화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 부양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처럼 자식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에 선을 긋고, 부모도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는 자세로 바꾸어야 합니다. 재무적인 결정을 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항목이 ‘노후준비자금’이어야 합니다.


맞벌이하면서 번 돈을 대부분 자녀의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은퇴자금을 자녀의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하면 안 됩니다. 교육자금, 자녀의 결혼자금보다 먼저 준비해야 할 자금이 ‘노후준비자금’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성장시대를 지나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힘든 자녀에게 부모 부양의 부담까지 지도록 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행복을 위해, 이제 부모가 좀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잔인해져야 합니다.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저성장, 장수시대에 생존의 법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충신 켄트 백작의 조언

리어왕에게는 충신 켄트 백작이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리어왕에게 고했던 켄트백작의 두 가지 충언을 살펴봅시다. 첫째, 켄트 백작은 리어왕에게 은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은퇴해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아직 건강하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살지 모르기 때문에 은퇴하면 안 된다고 켄트백작은 충고합니다.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쉬고 싶은 마음은 리어왕이나 예비 은퇴자나 비슷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습니다. 55세 전후에 은퇴한다면 3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수명이 길어지니 은퇴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은퇴는 평균수명을 지난 나이일 때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3세라고 하니, 84세 이후에 은퇴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지금도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김형석 교수를 생각하면서 은퇴는 세상 떠날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할지 모릅니다. 1차 퇴직과 은퇴는 완전 다른 개념이어야 합니다. 은퇴가 아니라 이직, 전직, 창업이어야 합니다.


둘째, 켄트 백작은 모든 권력과 나라를 자녀들에게 다 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 권력을 주어 나라를 미리 다스리게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권력을 모두 이양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충고합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노후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고, 자녀에게 계획적으로 절세와 안정적인 부의 이전을 위해 미리 증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노후가 안전하지 않은데 자녀에게 큰 재산을 주고 나면 은퇴 이후의 삶이 아주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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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은퇴 이후에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장수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는 부모를 부양하려는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사진 pixabay]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에 대해 정확하게 따져보고, 필요하다면 주택 연금 등을 통해 부족한 노후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난 후에 자녀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 좋습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아마 우리 세대가 고민하는 것처럼 자식과 자신의 노후를 비교하면서 경제적인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오래 살 것을 고민하지 않았고, 자녀가 부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은퇴 이후에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장수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는 부모를 부양하려는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리어왕처럼 다 주고 후회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갈등은 어긋난 기대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많은 기대를 갖고 있을 자녀의 기대치를 낮추어 주는 것이 자녀와의 갈등을 줄이고 가족 간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지혜임을 알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좀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갑자기 자녀에게 ‘이제 우리는 너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자녀와 노후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에 대해 알려주고 기대를 조절하는 노력을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