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으로 배달해라" 갑질에…"거긴 배달료 올리겠다" 을질?

[트렌드]by 중앙일보

"음식 주문했다고 상전이냐" vs "갑질로 몰아세우지 마라."


배달원(라이더)들과 고급 지상복합 아파트 주민들이 '갑질' 논란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 측의 까다로운 통제에 대해 배달업체 측이 배달료 인상으로 맞불을 놓으면서다. 최근 끊이지 않는 고급아파트의 배달원 통제와 배달원들의 불이익에 대한 공방이 재점화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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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까다로운 아파트 배달료 인상


배달 대행업체 '생각대로'는 지난 18일부터 성동구에 있는 A아파트의 배달료를 2000원 인상했다. 생각대로는 “이 아파트에서 라이더들에게 오토바이를 밖에 세우게 하고 화물 엘리베이터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라이더들이 배송을 꺼린다”고 배달료 인상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배달업계에서 아파트 출입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T아파트와 G아파트도 지난해 배달 요금이 1000원 인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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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배달대행업체 생각대로는 지난 18일부터 성동구에 있는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배달료를 2000원 올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동대문구의 한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배달원 김모(38)씨는 "용산 쪽 고급아파트는 대부분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보안 때문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도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고급 아파트는 배달원들 사이엔 ‘기피 지역’이라고 한다. 김씨는 “회사 차원에서 주는 혜택은 따로 없다”고 했다.



"오토바이 세우고 걸으라 해"


하루에 12시간 서울 곳곳을 누비며 50~60건을 배달한다는 전모(36)씨는 “2000원을 더 주더라도 (진입이 까다로운 고급 아파트는) 절대 안 간다”고 말했다. 전씨는 “배달하는 데 계단을 이용하게 하거나, 시끄럽다면서 오토바이를 먼 곳에 세워두고 걸어가라고 하는 곳도 있다"며 "저녁 피크 시간대에 10분 정도 걸린다고 치면 배달 2~3개를 놓쳐 손해를 본다"고 했다.


배달 플랫폼 업체 요기요는 “폭설 등 날씨에 다른 프리미엄은 있지만, 배달에 어려움이 있는 장소에 대해선 따로 제공되는 건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라이더들은 기피 지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각자 피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라이더 커뮤니티에선 “OO백화점은 계단 옆 화단에 오토바이를 못 세우게 한다. OO빌딩도 화물용 엘리베이터 이용해야 한다”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나도 다녀온 적 있다” “악명높다”는 댓글도 붙었다.



“배달원 생각하는 여론도 있어”




서울 마포구에서 배달대행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각자 배달을 잡는 시스템이라 우리가 강제로 가라고 시킬 수도 없다”며 “정 배달원이 없으면 관리자가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토바이 진입이 금지돼있어 근처 패스트 푸드점 등의 공간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면 10~20분이면 되는 시간이 배로 든다”고 토로했다.


까다로운 아파트의 '갑질'보다는 배달원의 ‘을질’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아파트의 보안 방침을 비난하는 것은 심하다”는 것이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배달원들이 까만 헬멧을 쓰고 탈 경우 무서움을 호소하는 일부 주민들의 보안 요청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 중엔 배달원도 엘리베이터를 함께 이용케 하자는 여론도 있었다”면서 “그런 분들이 배달요금을 더 내야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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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들 간 합의 필요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은 “보안 문제 때문에 오토바이를 놓고 걸어가는 것을 두고 배달 대행사가 요금을 올린 것은 무리한 처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비용 문제라기보단 인격 문제”라며 "보안 문제라는 명분도 없어서 과도한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대안으로 1층에서 음식을 수령하라고 했을 때 일부 입주민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며 “입주자들끼리 합의가 안 되다 보니 경비 노동자와 배달 노동자 다툼으로 이어지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당 아파트에 대해서는 배달 노조나 배달 대행업체가 보호 차원에서 강경하게 배달 거부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특히 화물 엘리베이터에 배달원이 타는 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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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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