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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고진하 목사 "삶의 불편 수용할 때 삶이 편해지더라"

by중앙일보

70년 한옥에서 13년째 살아보니

삶의 불편 수용하는 지혜 생겨나

한옥에서 읽어내는 자연의 경전

완전함보다 원만함이 삶의 지향


“살아보니 한옥의 주인은 내가 아니더라. 나무와 흙과 제비들. 그런 자연이더라.”


설을 앞두고 3일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에서 고진하(68) 목사를 만났다. 그의 집은 70년 된 시골 한옥이다. 이곳에 산 지는 13년째다. 대문 위에는 ‘不便堂(불편당)’이라고 쓴 당호가 걸려있다. 그러니 이 집의 이름은 ‘불편한 집’이다. 왜 그럴까. 시인이자 기독교 영성가인 고 목사에게 한옥에 살면서 터득한 ‘지혜와 영성’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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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의 한옥 자택의 벽에 '불편을 즐긴다' '신들린 잡초 밥상'이란 글귀가 걸려 있다. 고 목사는 부인 권포근 여사와 함께 잡초로 만드는 요리도 연구하고 있다.

Q : 집 이름이 왜 ‘불편당’인가.


A : “처음 이사 올 때는 엉망진창이었다. 너무 낡은 한옥이라 흰 비닐로 집 전체를 감아 놓았더라. 워낙 추우니까. 집이 너무 낡아서 집값 없이 땅값만 받더라. 그걸 하나씩 고치고 리모델링했다. 한옥은 불편하다. 화장실도 안방이나 거실에 없다. 별채에 있다.”


Q : 불편하지 않나.


A : “밤에 화장실 가려면 신발 신고, 옷 입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요강을 쓴다. 1인당 하나씩. 불편도 익숙해지니까 괜찮더라. 이제는 요강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불편을 받아들이고 살자는 취지다. 그래서 집 이름을 ‘불편당’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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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의 고진하 목사 한옥 자택 대문 위에 '불편당'이라고 쓴 당호가 걸려 있다.

Q : 우리의 삶에도 온갖 불편이 있다. 그런 불편을 수용하면 어찌 되나.


A : “그럼 편해진다. 사실 우리 시대는 너무 편리를 추구하지 않나. 대자연을 가만히 보면 풀이나 새나 벌레들은 인간처럼 편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Q : 예를 들면.


A : “봄이 되면 이 집으로 제비가 날아온다. 삼월삼짇날이면 어김없이 암수 한 쌍 제비가 찾아온다. 처마 아래 둥지를 지은 뒤,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좁아서 암수 모두가 둥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럼 수컷은 둥지 옆에 박혀 있는 못대가리 위에서 잠을 자더라. 그걸 보고 배웠다. 다른 생물들은 인간처럼 편리를 추구하지 않는구나. 아, 저들은 불편도 즐기면서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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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의 한옥 처마 아래 제비가 지어놓은 둥지가 있다. 제비는 봄마다 새로운 둥지를 짓는다. 예전에 만들어 놓은 둥지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고 목사는 사랑채 아궁이 옆에 앉아서 도끼로 장작을 쪼갰다. “나도 나이가 드는데 장작 패는 게 힘들다. 그런데 어떡하겠나. 받아들여야지. 참 놀라운 게, 막상 받아들이면 편해지더라. 아무리 불편한 일도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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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가 도끼로 참나무 장작을 쪼개고 있다.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고 목사는 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절감한다고 했다.

Q : 매일 저녁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힘들지 않나.


A : “스위치만 누르면 따뜻해지는 집에 비하면 좀 힘들다. 불을 처음 피울 때는 춥다. 달달달, 떨면서 불을 지핀다. 불길이 확 올라오면 비로소 따듯해진다. 그렇게 뜨끈뜨끈해진 구들장에 누워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무가 주는 온기로 이 밤을 보내는구나. 내일도 잘 살아야겠다.’”


Q : 왜 그런 생각이 드나.


A : “땔감은 주로 참나무를 쓴다. 다른 나무는 그을음이 너무 많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참나무 장작은 자기 에너지를 다 쓴다. 자신의 모든 걸 태운다. 그걸 통해 내 몸을 데워준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다 쓰고 살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니까. 그분이 주시면 내 시간이 되겠지만. 그렇게 다 써도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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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 목사는 "자신을 모두 태우는 참나무 장작처럼 나도 내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쓰면서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인도 북부의 라다크를 여행한 적이 있다. 라다크에서는 사람들이 야크 똥을 연료로 쓴다. 집 지붕에다 야크 똥을 발라서 편 뒤 말린다. 그걸 밥할 때 태워서 연료로 쓴다. 고 목사는 “라다크에는 티베트 사원이 곳곳에 있다. 그런데 내게는 야크 똥을 발라놓은 저 집들이야말로 진짜 사원으로 느껴지더라. 그 에너지로 그 사람들이 살아가니까. 그래서 나도 참나무에게 경배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Q : 참나무에게 왜 경배를 바치나.


A : “나무의 에너지로 내가 겨울밤을 보내지 않나. 그 에너지로 내가 살지 않나. 그러니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나무가 신이다. 나를 살게 해주니까. 지구 위의 존재 중 내가 경배를 바치고 싶은 대상이 둘 있다. 목록 1호가 나무다. 나무 중에서도 참나무다. 목록 2호는 지렁이다.”


Q : 지렁이가 왜 목록 2호인가.


A : “지구의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지렁이 덕분이다. 진화론자인 다윈도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던 게 지렁이였다. 우리는 한옥 뒷마당에 음식물 찌꺼기를 버린다. 그걸 지렁이들이 다 먹는다. 그리고 분변토를 토해낸다. 지렁이의 분변토 덕분에 땅이 옥토가 된다. 뭘 심어도 잘 자란다. 일체 비료를 안 써도 작물이 좀체 병들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지렁이에게 경배하고 싶더라. 지구의 식물과 우리에게 살아가는 에너지를 주니까.”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두 개의 경전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자연이다. 이 둘 모두에 신의 속성, 신의 섭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고 목사가 지상의 존재들 중에서 참나무와 지렁이에 경배하고 싶다는 건 무슨 뜻일까.그가 창조물 속에서 창조주의 신비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 목사가 참나무와 지렁이에 감사를 표하는 건 우상 숭배와 차원이 다른 생명에 대한 경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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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뒷마당에 던져놓은 음식물 찌꺼기. 이걸 먹고 땅속의 지렁이가 자란다. 지렁이가 먹이를 먹고 토해 놓은 분변토가 땅을 옥토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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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당에는 빨랫줄이 걸려 있다. 빨래가 걸려 있을 때는 남다른 운치가 있다.

고 목사가 꼽는 한옥의 또 다른 묘미는 ‘틈’이다. 다시 말해 구멍이다. “한옥은 주로 흙과 나무가 재료다. 그래서 곳곳에 구멍이 생긴다. 벽에도, 처마에도, 담에도 생긴다. 나는 그 구멍을 ‘생명의 꽃자리’라고 부른다.”


Q : 한옥에 생긴 구멍이 왜 생명의 꽃자리인가.


A : “처음에는 벽이나 처마에 구멍이 생기면 메웠다. 대부분 사람은 그런 구멍을 견디지 못한다. 요즘은 나도 달라졌다.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냥 둔다. 그 구멍으로 온갖 생명체가 오간다. 가령 돌담의 구멍을 통해 뱀도 들어오고, 개구리도 들어오고, 맹꽁이도 들어오고, 벌레도 들고 난다. 길고양이들도 찾아온다. 어떤 때는 10마리씩 들어온다. 이름도 다 지어주었다.”


Q : 힘들 때도 있지 않나.


A : “살아 있는 것들과 같이 지내는 건 힘들다. 말썽도 많이 피우니까. 때로는 미워서 쫓아버리기도 하지만, ‘날도 추운데 살아야지’하면서 또 먹이를 준다. 그 아이들 보면서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연민이 생긴다. 때로는 기쁨을 주고, 때로는 아픔을 주는. 지난겨울을 나면서 길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죽었다. 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그래서 한옥의 구멍이 내게는 생명의 꽃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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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가 돌담 앞에 서 있다. 돌담의 틈 사이로 온갖 생물이 드나드다고 했다.

Q : 틈이 있어도 괜찮다. 그 말이 의미심장하다.


A : “나는 이제 완전함을 추구하지 않고, 원만함을 추구한다. 완전함을 좇는 사람은 틈이 생길 때마다 메워야 한다. 그런데 틈을 수용하니까 원만함이 생기더라. 이제는 틈을 그냥 두고 즐기려고 한다.”


고 목사는 “살아보니 한옥의 주인은 내가 아니더라. 온갖 생명들이더라”고 말했다. 지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생물의 양(biomassㆍ생물유기체의 총칭)으로 따질 때 지구상에살고 있는 식물이 99.7%를 차지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지구의 주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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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는 "대자연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큰 경전이다. 한옥은 그런 경전을 아주 가까이서 읽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감리교단 목사로 은퇴했다. “가끔 경(經)을 보지만, 가장 큰 경전은 대자연이다. 제비나 지렁이, 나무나 꽃이 제일 큰 경전 같다. 나는 한옥에 살면서 그런 경전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지난가을에는 며칠 동안 맹꽁이 소리가 들리더라. 그래서 가을밤이 심심하지 않았지. 요즘은 맹꽁이가 참 드물거든. 막상 마당에 나와보면 보이질 않아. 그렇게 맹꽁이는 가을밤에 찾아와서 제 ‘존재의 소리’를 들려주었지. 그게 자연의 소리잖아. 한옥에서 나는 맹꽁이 소리를 통해서 경(經)을 읽어.”


원주=글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 고진하 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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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기독교 영성가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숭실대 문예창작과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원주에서 시골 목회를 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영랑시 문학상과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기독교 사상』에 독일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글을 인용하고 주석을 단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시집으로 『야생의 위로』『명랑의 둘레』『거룩한 낭비』『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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