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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제2의 '도깨비' 꿈꿨지만…'멸망' 이어 '간동거'도 하락세 왜

by중앙일보

멸망·구미호 앞세운 판타지드라마 봇물

아이치이 등 해외서 제작 뛰어들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으로 차별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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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와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이하 간동거)가 시청률이 연일 하락하고 있다. 각각 미주ㆍ유럽 등에서 방영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비키 등을 통해 150여 개국에 선판매되고, 중국 OTT 아이치이에서 선보이는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 ‘멸망’은 2회 4.4%(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최고 시청률 기록 이후 12회 2.4%까지 떨어졌고, ‘간동거’는 1회 5.3%로 시작해 7회 3.2%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들은 독특한 설정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되는 존재 멸망(서인국)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 계약을 한 인간 동경(박보영)의 이야기는 tvN ‘도깨비’(2016~2017)를 연상케 했다. 불멸의 삶을 끝내고자 하는 도깨비(공유)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는 저승사자(이동욱)처럼 판타지성이 짙을 뿐더러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 출신인 임메아리 작가의 작품이어서다. 임 작가가 데뷔작 JTBC ‘뷰티 인사이드’(2018)를 통해 호평받은 만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



멸망·구미호보다 눈이 가는 인간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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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동거’는 999살 구미호 신우여(장기용)와 99년생 인간 이담(혜리)이 주인공이다. 앞서 tvN ‘구미호뎐’(2020)에서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과 이랑(김범) 형제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구미호가 탄생하게 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KBS2 ‘구미호 외전’(2004)의 김태희, ‘구미호: 여우누이뎐’(2010)의 한다감,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의 신민아 등 이미 다양한 캐릭터가 탄생한 여자 구미호에 비해 남자 구미호는 변주가 자유로운 데다 올 2월 완결된 원작 웹툰 역시 2017년부터 네이버 목요 웹툰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차별화에 실패했다. 멸망은 도깨비와 다른 특성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고, 둔갑술ㆍ축지법ㆍ염력을 쓰는 구미호는 이담의 대학 동기나 선후배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SBS ‘별에서 온 그대’(2013~2014)의 외계인(김수현) 이후 나온 초월적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비슷한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캐릭터 구축을 확실히 해야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힘을 받을 수 있는데 멸망 혹은 신유여 만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 역시 여주인공 박보영과 혜리의 공이 더 크다. 그만큼 남자 캐릭터가 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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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로맨스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존재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어 “대사부터 캐릭터 설정까지 김은숙 작가의 많은 장점이 있는데 임메아리 작가는 지나치게 언어유희에만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멸망의 설정은 독특하지만 기억이 계속 리셋되면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판타지 남용으로 매력 잃게될까 걱정”


이는 웹툰 원작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반복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14일 시작한 KBS2 월화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을 비롯해 올해 선보인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등 2%대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여러 편이다. 윤석진 교수는 “웹툰이 여러 장르로 발전하기 좋은 IP(지적재산)이긴 하지만 드라마 특성에 맞는 각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웹툰은 독자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만 드라마는 시청각으로 전달되면서 상상의 폭이 제한되고 이야기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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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남용되어 장르적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2000년대 주류 장르로 떠올랐다가 한국 드라마는 ‘기승전멜로’라는 비판을 받으며 멜로가 모든 드라마에 양념으로 들어가게 된 것처럼 판타지도 고유의 특색을 가진 장르로 자리잡지 못하고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다 보면 그 효용 가치가 떨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모든 드라마가 멀티 장르로 가는 추세지만 각 장르가 가진 고유의 특성을 잃게 되면 성공하기 힘들다”며 “로맨스가 가장 쉬운 장르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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