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겨우 고사리가 이런 장관을···30년 일군 여의도 크기 고사리밭

by중앙일보

다자우길④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
중앙일보

이른 아침 드론으로 촬영한 남해 고사리밭. 해안 구릉을 따라 거대한 고사리밭이 펼쳐진다. 손민호 기자

천혜의 자연이란 표현이 있다. 천혜(天惠)가 하늘의 은혜이니, 하늘이 베푼 은혜처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란 뜻이다. 척박한 자연을 무릅쓰고 인간이 빚은 절경도 있다. 대관령 고원의 배추밭, 남도 산자락의 차밭 같은 풍경이다. 인간의 절경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나, 인간이 만든 풍경 앞에선 자주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그림 같은 절경이 실은 고단한 삶의 풍경이란 걸 알고 있어서다. 기암괴석 즐비한 천혜의 자연 앞에선 감탄을 뱉었으나, 우리네가 빚은 산밭에 들어서는 눈물을 삼켰다.


여기에 땀과 눈물이 빚어낸 또 하나의 절경이 있다. 배추밭도 아니고 차밭도 아니다. 고사리밭이다. 고사리 따위가 만들어낸 풍경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으면, 경남 남해로 내려오시라. 그리고 해안 언덕을 따라 한없이 이어진 고사리밭을 걸어보시라. 해종일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의 세상에서 우리네 아버지가 흘렸던 땀을 기억하시라. 막 채취를 끝낸 국내 최대 고사리밭의 비경을 공개한다.

바다로 가는 길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4코스는 고사리밭을 구석구석 헤집어 '고사리밭길'이다. 고사리밭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남해 바다. 바다 너머로 삼천포가 내다보인다. 손민호 기자

다자우길(다시 걷자 우리 이 길)이 네 번째 걸은 길은 남해바래길이다. 경남 남해군이 2010년 조성한 트레일로,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길이 이어진다. 이름에서 ‘바래’는 남해 사투리다. 어머니가 갯가로 나가 파래·미역·조개 따위를 채취하는 일을 남해에서 ‘바래’라 했다. 남해바래길은 바다로 일 나가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길이다. 하여 남해바래길은 대부분 바다와 바투 붙어 있다.

중앙일보

남해바래길은 탐방안내센터를 별도로 운영한다. 길목마다 이정표도 잘 돼 있다. 손민호 기자

남해바래길은 기초단체가 운영하는 전국 트레일의 모범 사례다. 장충남 남해군수가 트레일 사업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남해군은 10년간 해파랑길을 운영·관리했던 ㈔한국의 길과 문화 윤문기 사무처장을 바래길팀장으로 영입했고, 지난해 설립한 관광문화재단이 바래길 사업을 전담하도록 했다. 기초단체 최초로 탐방안내센터도 개장했고, 전용 앱도 운영한다. 윤문기 바래길팀장은 “코스에서 30m 벗어나면 앱이 알림을 울려주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전용 앱. 앱을 작동하면 코스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더러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코스에서 30m 벗어나며 알람이 울린다. 손민호 기자

남해바래길은 지난해 11월 기존 코스를 수정하고 연장해 ‘남해바래길 2.0’을 개통했다. 새 이정표 작업이 덜 끝난 구간이 있어 정식 개통식은 올가을로 예정됐지만, 19개 코스(본선 16개, 지선 3개) 231㎞ 길이의 새 바래길은 조성을 마친 상태다. 가천다랭이마을, 금산 보리암, 미조항 등 남해의 이름난 관광지를 두루 거친다. 6월 말 현재 남해바래길 2.0 완주자는 115명이다. 개장한 지 8개월 만에 115명이 231㎞ 길을 다 걸었다는 뜻이다. 제주올레처럼 남해바래길도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콘텐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앙일보

6월 22일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서 남해바래길 완주자 완주증 수여식이 열렸다. 새 코스를 연 지 8개월 만에 115명이 231㎞나 되는 전 코스를 다 걸었다. 손민호 기자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해안을 잇는 남파랑길이 남해바래길과 여러 구간이 겹친다. 남파랑길 90개 코스 중에서 36∼46코스가 남해바래길과 같은 길이다. 남해 해안을 바깥에서 도는 바래길 11개 코스가 고스란히 남파랑길로 지정됐다. 남해바래길은 부산갈맷길과 함께 남파랑길의 대표 인기 구간이다.

고사리밭을 걷다

중앙일보

해무 내려앉은 이른 아침의 고사리밭.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농민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해무 내려앉은 이른 아침의 고사리밭.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농민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해무 내려앉은 이른 아침의 고사리밭.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농민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해무 내려앉은 이른 아침의 고사리밭.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농민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고사리밭길은 남해바래길 4코스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남해바래길 2.0을 완성할 때 새로 조성했다. 전체 길이는 16㎞. 크고 작은 산을 부지런히 넘어야 하는 코스다. 코스 안에 슈퍼나 식당도 없다. 산행 준비하듯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 전망대에서 내다본 고사리밭과 삼천포 바다. 남유럽의 어느 해안 마을처럼 이국적인 풍경이다. 손민호 기자

하나 길이 주는 풍광은 모든 수고를 까맣게 잊게 한다. 이 기적 같은 장관을 어떻게 묘사할까. 스위스 알프스의 평원에 빗댈까,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포도밭과 견줄까. 안반데기 배추밭의 기하학적 곡선, 보성 차밭의 상큼한 초록은 또 어떨까.


이른 아침 고사리밭. 푸른 고사리 사이로 비치는 붉은 흙과 능선 너머로 드러나는 파란 바다가 한껏 채도를 끌어 올린 채 반짝이고 있었다. 이토록 이국적인 풍경이라니. 하필이면 고사리밭이어서 감동은 더 컸다. 겨우 고사리 따위가 이런 풍경을 빚어내다니.


고사리가 자라는 땅은 남해 창선도 오른쪽 해안 구릉 지대다. 남해 읍내보다 바다 건너 삼천포가 더 가까운 지역이다. 남해도에서 죽방렴으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건너면 창선도의 행정구역 창선면이다. 창선면 고사리밭의 면적은 4.3㎢. 여의도 전체 면적이 4.5㎢이다. 여의도만 한 고사리밭이라니. 창선농협 김상찬 상무가 밝힌 창선면의 연 고사리 생산량은 150톤이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창선면이 담당한다.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구석구석 헤집는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구석구석 헤집는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구석구석 헤집는다.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구석구석 헤집는다. 손민호 기자

고사리밭은 1100여 농가가 농사를 짓는 사유지다. 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었다. 이 어마어마한 장관이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다. 남해군 관광문화재단이 지난해 고사리 농가를 찾아가 밭 사이 농로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조건이 따랐다. 고사리를 채취하는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출입이 제한된다. 관광문화재단이 지정한 인솔자와 함께 소수 인원만 고사리밭에 들어갈 수 있다. 7월부터 제한이 풀렸다. 한 번 채취가 끝난 고사리가 벌써 무릎까지 올라왔다. 다음 달이면 허리까지 올라온단다.

중앙일보

6월 말 고사리밭 풍경. 고사리 채취 막바지, 농부는 좀처럼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창선도 주민이 고사리 농사를 지은 건 30년 정도다. 태풍 피해를 입은 감나무 농가가 감나무 대신 고사리를 키운 게 시작이었단다. 고사리는 굳이 농약을 치지 않는다. 제가 알아서 쑥쑥 커서다. 그래도 농부는 고단하다. 앞서 창선도에서 해마다 고사리 150톤이 나온다고 적었다. 이때 기준은 밭에서 꺾은 고사리가 아니다. 밥상에 오르는 마른 고사리다. 생(生)고사리 11㎏을 꺾어야 건고사리 1㎏이 나온다. 흙에 기대 사는 게 늘 이렇다. 인간이 빚은 풍경이 천혜의 자연보다 더 눈에 밟히는 까닭이다.

길 정보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전체 지도. 오른쪽 위 창선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 길이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이다. 그래픽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중앙일보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 구간 지도. 그래픽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은 16㎞ 길이다. 남해군 관광문화재단은 6시간 정도 걸린다고 설명한다. 난이도가 별 5개 기준 별 4개로 높은 편이다. 남해바래길은 전용 앱이 있다. 앱을 작동하면, 코스 정보부터 안내 전화번호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위치 추적 기능이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남해바래길 전 코스를 완주하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과 남파랑길 37코스는 같은 길이다. 아무 이정표나 보고 걸어도 상관 없다. 동대만간이역을 지나 고사리밭으로 들어가면 종점 적량마을까지 식당은커녕 가게도 없다. 물을 넉넉히 챙겨야 한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055-863-8778.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