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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평생 유리천장 깬 82세 할머니, 이번엔 우주 천장 깼다

by중앙일보

7월 20일은 인류의 우주 탐구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다. 1969년 7월 20일엔 미국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뎠다. 정확히 52년이 흐른 20일(현지시간) 오전엔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졌다. 세계 최고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 네 명이 로켓을 타고 상공 100㎞ 위로 우주비행에 나선 것이다. 베이조스의 동승자들도 이목을 끌었는데,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올해 82세인 할머니 월리 펑크에 주목했다. 펑크는 암스트롱의 달 착륙 전에 이미 우주비행사 선발 시험에서 1등을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인물이다. "여성은 우주에 갈 수 없다"는 게 당시 당국이 내세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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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반세기를 넘긴 기다림 끝에 역대 최고령 우주비행사라는 기록에 도전했다.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잇달아 깨온 그가 마침내 ‘우주 천장’ 돌파에 나선 것이다. NYT는 19일 펑크를 “인간이 우주비행을 시도한 두 시대 모두에 참여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성별의 장벽을 무너뜨린 영웅적인 본보기”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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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의 삶은 우주에 대한 갈망 그 자체였다. 7세 때 하늘을 날고 싶어 나무 모형 비행기를 만들며 놀던 소녀가 본격적으로 우주여행을 꿈꾼 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였다. 펑크는 17세 되던 해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척추뼈 두 개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선 다시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치료 중이던 그에게 상담사가 기분 전환을 위해 “항공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떤가”라고 추천한 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우주여행을 꿈꾸며 기적적으로 회복했고, 이어 스티븐스대에 진학해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뛰어난 비행 실력으로 대학에서 여성 동문 중 최연소 공로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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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61년 미국과 소련이 우주비행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 펑크는 우연히 잡지에서 한 여성이 우주비행 훈련을 받는 사진을 봤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첫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 ‘머큐리’에 대한 기사였다. 그는 기사 속 인물을 수소문해 편지를 보냈다. 자신도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위해서였고, 결국 혹독한 시험을 거쳐 지원자 중 1등을 차지했다. 펑크는 이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귀에 아주 차가운 물을 넣어 현기증을 유발하거나, 방사능에 노출된 물을 마시게 하고, 지구력을 시험하기 위해 무감각 탱크라는 곳에 가두기도 했다”며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주여행에 더 가까워졌단 생각에 견뎠다”고 회상했다.


펑크를 포함해 프로젝트에 통과한 여성은 13명이었다. 이들은 엄격한 신체검사와 남성 우주 비행사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NASA가 전투기 조종사이면서 공학 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우주 비행사 자격을 주겠다고 하면서 이들의 꿈은 좌절됐다. 당시 여성들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펑크는 이후에도 62년부터 66년까지 네 차례 더 지원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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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13(Mercury 13)’으로 불린 이들은 이후 대부분 항공 분야에 진출했다. 펑크는 미군에 지원했고, 최초의 여성 조종 교관이 됐다. 이어 미 연방항공국(FAA) 첫 여성 안전 검사관,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 최초 여성 항공안전 조사관 등으로 일하며 유리천장을 연이어 깼다. 1만9600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한 그가 양성해낸 파일럿 숫자는 3000명을 넘긴다고 한다.


펑크는 우주비행에 나서기 전, 남은 생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당신이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며 “앞으로도 나는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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