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지키는 소나무숲, 하루 80명에게만 허락된 금단의 길

[여행]by 중앙일보


다자우길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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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에 가면 나라가 지키는 숲이 있다.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라는 긴 이름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이 숲의 면적은 자그마치 37.05㎢. 축구장 5189개 넓이에 해당한다. 이 광활한 숲을 나라가 직접 지키는 건, 숲의 약 60%를 차지하는 금강소나무 때문이다. 울진 금강소나무숲은 “여느 금강소나무 군락지와 비교를 불허하는 국내 최대 금강소나무 군락지(조병철 남부지방산림청장)”다.


이 금단의 숲을 구석구석 헤집는 트레일이 있다. 이름하여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단언하는데, 국내에서 생태관광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길이다.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이 힘을 합쳐 숲을 지키고 길을 가꾸는 모습이 솔숲 못지않게 아름답다. 여기 솔숲길은, 솔숲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걸을 수 없다.



금강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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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금강소나무를 지키는 건, 그만큼 금강소나무가 귀해서다. 금강소나무는 예부터 목재 자원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왕실의 관곽과 건축재로 금강소나무가 사용됐다. 금강소나무는 여느 소나무보다 나이테가 세 배 더 촘촘해 뒤틀림이 적고 강도가 높다. 송진이 적은 편이어서 쉽게 썩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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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산의 출입을 막는 걸 봉산(封山)이라 한다. 조선 시대 봉산에 들어갔다가 발각되면 곤장 100대를 맞는 중형에 처했다. 울진 금강소나무숲은 1680년(숙종 6년)부터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봉산이 울진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강원도 인제군·영월군·원주시, 경북 문경시의 금강소나무숲 어귀에도 표석을 세워 출입을 막았다. 여러 금강소나무숲 중에서 울진의 숲이 가장 잘 보전이 된 것은, 울진이 그만큼 오지여서였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금강소나무가 잘려나갔는데, 울진의 소나무는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울진 금강소나무숲에서도 깊고 높은 산의 소나무가 크고 오래됐다. 산 아래 소나무는 진즉에 배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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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울진 금강소나무숲에는 얼마나 많은 금강소나무가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음과 같은 현황은 알 수 있다. 수령 200년 이상 금강소나무 약 8만5000그루, 문화재 복원용으로 지정한 금강소나무 4137그루, 수령 500년 이상 보호수 세 그루. 미국 국립공원이 야생동물 수를 일일이 파악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금강소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어림짐작도 못 한다.



금강소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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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첫 번째 숲길이다. 2008년 조성 계획에 착수했고, 2011년 약 40㎞ 길이의 3개 코스를 개장했다. 현재는 모두 7개 코스 79.18㎞ 길이의 트레일이 조성됐다. 이 광대한 숲을 꽁꽁 막아놓을 순 없는 노릇이어서 보호구역과 사유지를 오가는 탐방로를 만들었다. 다만 예약이 필수이며 숲해설가와 동행해서만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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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가 5.3㎞ 길이의 가족 탐방길이다. 금강소나무생태관리센터에서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원점 회귀 코스다. 길이가 가장 짧은 데다 볼거리가 많아 인기가 높다. 이 코스에 산림청이 지정한 보호수 세 그루 중 두 그루가 있다. 소나무숲 어귀에 우뚝 솟은 소나무가 제일 오래됐다는 ‘500년 소나무’다. 1982년 조사 당시 수령이 530년이었으니 지금은 560년 소나무가 맞겠다. 숲에 들어서면 또 다른 보호수 ‘못난이 소나무’가 나온다. 이름과 달리 나무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울진국유림관리소 천동수 주무관이 “못생겼다는 건, 목재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지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못난 솔이 조상 산소를 지킨다고 했던가. 볼수록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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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려 곧게 뻗은 소나무의 이름이 ‘미인송’이다. 어른 두 명이 양팔을 벌려야 겨우 손이 닿을 만큼 크다. 수령 500년은 안 됐지만, 200년은 훌쩍 넘은 노거수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소나무숲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말 그대로 소나무 왕국에 들어선 듯하다. 우람하고 거대한 소나무들에 포위당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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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소나무들 아래로 막 싹을 틔운 아기 소나무가 보였다. 검지손가락만 할까.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이 어린 생명을 들여다봤다. 최근에 조우한 가장 기특한, 아니 거룩한 장면이었다.



보부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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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길은 제일 먼저 조성된 금강소나무숲길이다. 2011년 1코스로 개장했는데, 길에 밴 사연은 훨씬 길다. 조선 시대 보부상이 넘어다녔던 십이령길의 한 구간이어서다. 십이령길은 보부상이 동해안의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과 경북 내륙지역의 춘양장, 안동장 사이를 행상할 때 넘나들었던 열두 고갯길이다. 열두 고개 중에서 세 번째 고개인 바릿재부터 샛재, 너삼밭재, 저진터재까지 네 고개를 보부상길이 넘는다. 13.5㎞ 길이로, 울진금강소나무숲길 7개 코스 중에서 가장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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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밴 이야기는 구구절절하다. 길이 시작하는 두천리 주막촌부터 바리바리 짐을 싣고 올랐다는 바릿재, 새도 쉬어간다는 샛재, 보부상들이 돈을 모아 차린 성황사까지, 길을 앞장선 장수봉(68) 숲해설가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긴 세월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렸던 고갯길이라 금강소나무는 덜 보인다. 대신 길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옛길은 하나같이 파여 있다. 여기 보부상길도 구덩이처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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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이 국내 생태관광의 본보기인 이유는, 국내 최대 산림유산을 체험하는 유일한 방법이어서만은 아니다. 산림청이 주민과 함께 길을 운영하고 관리한다. 7개 코스 모두 마을 주민이 만드는 점심이 제공된다. 마을 형편에 맞게 도시락이나 산채비빔밥을 만든다. 탐방객을 위한 숙소도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탐방객을 안내하는 숲해설가도 지역 출신이 맡는다. 우리나라에 트레일이 538개나 된다지만,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처럼 지역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트레일은 없다.


울진국유림관리소 현황판에는 주변 마을의 연도별 수입이 적혀 있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연 2억 원이 넘었던 마을 수입이 작년에는 65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도 사정이 여의치 않단다. 꼬박 네 시간을 걸은 뒤 찬물내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날 당번은 두천1리 주민 윤정자(63)씨였다. 곤드레·엄나무순·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넣은 비빔밥이 꿀처럼 달았다.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탐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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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예약 탐방제로만 운영된다. 숲나들e(www.foresttrip.go.kr)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숲나들e콜센터 1588-3250, 숲길 안내센터 054-781-7118. 울진 금강소나무숲길는 한 개 코스에 하루 최대 80명만 걸을 수 있다. 숲해설가가 동행한다. 오전 9시 각 코스 시작점에서 탐방이 시작된다. 점심으로 마을 주민이 지역 특산물로 만드는 도시락이나 산채비빔밥이 제공된다. 1인 7000원. 예약할 때나 탐방 전에 점심식사 여부를 알려야 한다. 현금만 받는다. 금강소나무숲길 1, 2, 3, 3-1코스 종점인 소광 2리에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금강송펜션이 있다.


울진=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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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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