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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대출규제로 퇴직연금 인출 급증…무너지는 노후 보루

by중앙일보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94)

우리나라 퇴직연금제에서 가장 취약한 한 부분은 광범위한 중도인출 허용조건이다. 부분인출도 가능해졌지만 대부분 전액인출인데, 적립금의 규모가 필요자금 규모에 비해 적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확정기여형(DC) 또는 개인형퇴직연금(IRP)에 가입한 가입자는 다음의 사유가 발생하면 적립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다(아래 박스 참조).

■ 중도인출 조건

①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②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 이 경우 가입자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하는 동안 1회로 한정


③ 가입자가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의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의료비를 해당 가입자가 본인 연간 임금총액의 1천분의 125를 초과하여 부담하는 경우


√ 가입자 본인


√ 가입자의 배우자


√ 가입자 또는 그 배우자의 부양가족


〈이하 생략〉

[출처 고용노동부]

이중 현재 가장 긴박하게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금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와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일 것이다. 가입자의 적립금 규모에 비해 주택 관련 필요자금의 규모가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전액인출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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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적립액 제고를 위해 중도인출은 가급적 자제해야 퇴직연금이 노후재원으로 충당될 수 있다. [사진 pxhere]

그런데 지금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해 주택 자금 수요 충족 방법이 갑자기 사라지니 퇴직연금 가입자는 중도인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따라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인 데 이어 전세대출까지 옥죄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금융기관, 심지어 산림조합까지 대출을 막고 나서며 주택 구입자를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붙이고 있다. 전셋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세입자도 최근 몇 년 동안 전셋값이 급등한 것도 심각한데, 대출 한도 제한으로 보증금을 마련할 방법을 찾기 힘들어졌다. 특히 이런 규제는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피해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이 노후보루책인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DC형과 IRP의 중도인출 조건은 주택 구입이나 전세자금과 관련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표1〉에서와 같이 2021년도 퇴직연금 중도인출 관련 통계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2020년도 통계를 보면 2016년에 비해 금액적으로 210% 급증했고, 인원으로 보면 약 18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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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표2〉의 ‘2020년 기준 중도인출 현황’을 요건별로 보면 주택과 관련된 것이 62.3%, 생활고가 36.3%로 나타났다. 중도인출한 가입자 10명 중 6명은 주택구입이나 전셋집 마련을 위한 자금 수요 때문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값 급등으로 부동산이 곧 노후대비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퇴직연금까지 끌어와 주택 구매에 쓴 것으로 보인다. 주택자금 마련에 퇴직연금이 동원돼 가입자의 노후 준비에 차질을 빚게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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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도인출이 근래 1~2개월 사이 정부가 주택 관련 대출을 강압적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야 말할 것도 없이 늘어났을 것이다. 중도인출은 전액도 가능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노후 보루 역할을 상실해 버린 셈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도인출은 한번 실행되면 현실적으로 적립금액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퇴직연금 적립액 제고를 위해 중도인출은 가급적 자제해야 퇴직연금이 노후재원으로 충당될 수 있다. 나아가 담보대출은 상환의무가 존재하지만, 퇴직연금 중도인출은 상환의무가 없어 문제가 커진다. 대출규제가 퇴직연금제의 노후재원 마련 기능을 급속히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인출 제도는 살리되 중도인출 상환의무제를 부분적으로라도 채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CGGC(Consulting Group Good Company)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