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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95만원중 포장값만 60만원…'예쁜 쓰레기' 쏟는 샤넬의 궤변

by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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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어드벤트 캘린더는 포장값만 60만원쯤으로 '예쁜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출시되자마자 동이 났다. [사진 샤넬코리아]

지난달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er)’를 선보이며 명품 브랜드 과포장 실태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어드벤트 캘린더란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까지 하루에 선물 한 개를 열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놀이용 달력이다. 샤넬은 처음으로 이 달력을 선보이면서 빈약한 구성품과 과도한 가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달력 안에 든 선물 27개 중 정상 제품은 립스틱·핸드크림·향수(35mL) 정도. 18개에선 샤넬 스티커와 샤넬 노끈 팔찌 등이 나와 소비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달력의 가격은 95만5000원. 업계에선 본품 가격을 제하면 포장값만 60만원이라는 계산을 내놓았다. 일종의 ‘예쁜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이 달력은 샤넬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시되자마자 동이 났다. 샤넬 측은 “판매된 어드벤트 캘린더의 수량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겹겹 포장, ‘예쁜 쓰레기’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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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의 대표적인 상품인 '레이디백' 가방의 10배 크기의 유산지와 각종 천들로 포장되어 판매되고 있다. 김연주 기자

그동안 명품 브랜드는 포장을 푸는 경험을 명품 체험의 일부로 보고 과포장 전략을 고집해왔다. 가방 하나를 사면 더스트백(먼지 방지용 천 가방)과 상자에 넣는 것은 물론 유산지로 감고 리본, 코르사주(꽃장식)로 꾸민 뒤 대형 쇼핑백에 담아준다. 샤넬의 어드벤트 캘린더 소동은 이런 과포장의 문화의 연장 선상에 있다.


명품 브랜드는 최근 앞다퉈 탄소배출량 감소 목표치를 공개하며 친환경 기업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과 거리가 먼 마케팅을 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친환경의 탈을 쓴 그린워싱(green washing)에 불과하다는 지적 나온다. 그린워싱이란 ‘위장환경주의’로,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 기업이 재활용 등의 일부 과정만을 부각해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는 마케팅 전략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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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점수. 출처: 굿온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굿온유’에 따르면 ‘명품 3대장'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뿐 아니라 프라다·디올·셀린·까르띠에·미우미우·발렌티노·티파니 등은 5점 만점에 1~2점 정도에 해당하는 ‘충분하지 않다(not good enough)’는 평가를 받았다. 톰브라운·메종키츠네·막스마라와 A.P.C 등은 0~1점으로 최악의 등급에 속했다.


샤넬은 2020년에 ‘샤넬 미션 1.5°C’를 발표하기도 했다.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 50%로 줄이고, 2025년까지 100% 재생 가능 전력으로 사업을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세부 계획이 무엇인지는 불투명하고, 추상적이다.


고은주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교수는 “샤넬은 녹색채권(그린본드·기후변화 대응이나 친환경 사업에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행되는 채권)을 발행했으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퍼포먼스(활동)가 발표되지 않아 평가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버버리의 경우 녹색채권에 대한 적극적인 실행 보고서를 통해 진행 상황을 공유하지만, 100% 불이행시 돌아오는 불이익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덧붙였다.

가방 때문에 도살되는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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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왼쪽)와 루이비통의 파이톤(비단뱀) 뱀피 가방. 페타(PETA)는 두 브랜드가 잔인한 방식으로 파충류를 도살하는 인도네시아의 한 공장으로부터 가죽을 제공받는다고 밝혔다. [사진 각사]

사용 소재의 적합도도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달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루이비통과 구찌에 가죽을 공급하는 인도네시아의 한 가죽 공장의 영상을 공개했다. 도살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도마뱀을 망치로 반복해 때렸고, 발버둥 치자 머리와 다리를 잘랐다. 페타는 “인간의 허영심을 위해 파충류는 학대받고, 잔인하게 도살된다”며 “어떠한 가방, 벨트, 지갑도 그렇게 많은 고통을 수반할 가치는 없다”고 밝혔다. 구찌의 모기업 케링 그룹은 해당 가죽 공장과의 연관성을 즉각 부인하면서도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케링은 “이 시설과 공급망이 연결돼 있다는 게 입증되면 즉시 사업관계를 종료할 것”이라며 “우리는 동물 복지를 지속해서 향상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0년 된 나무와 빙산으로 꾸민 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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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2018년 자연친화적인 패션쇼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100년 된 나무를 자르고 이끼를 심어 환경단체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연합뉴스

명품 브랜드 ‘꾸밈 비용’도 문제다. 명품은 중저가 브랜드와 차별성을 위해 다방면에서 우월함을 보여줘야 한다. 제품의 완성도는 기본이고, 패션쇼,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 등 공간 디자인 면에서도 소비자 안목을 만족시킬 만한 창의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부대 비용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다.


샤넬은 2018년 100년 된 나무를 잘라 패션쇼 무대에 전시해 환경단체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무대는 숲 속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끼로 뒤덮인 높이 10m의 참나무 12그루를 심고, 바닥엔 수 t에 달하는 낙엽을 깔았다. 관람객 벤치도 진짜 나무를 베어 만들었다. 앞서 샤넬은 겨울 분위기를 내기 위해 265t 빙산을 스웨덴에서 공수해 무대를 꾸민 적도 있다. 천재적인 연출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20분짜리 무대를 위해 환경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프랑스 환경단체 프랑스자연환경(FNE)은 “샤넬은 환경 보호를 외면한 채 초록(친환경)의 이미지만 부각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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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품업계는 팝업 스토어를 통해 화려한 쇼핑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프라다의 더현대 여의도 1층 팝업 스토어. 연합뉴스

명품업계 팝업 스토어도 불필요한 자원 낭비 사례로 꼽힌다. 2~4주 이후 사라지는 공간이지만 브랜드간 경쟁으로, 매번 더 화려한 인테리어를 앞세운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이제 팝업은 거의 모든 브랜드가 하는 마케팅 이벤트가 된 만큼, 명품 브랜드는 차별화를 위해 팝업에 갈수록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인테리어에 수억원을 쓰는 건 기본이고, 포토존·예술품까지 설치하지만, 팝업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철거한다”고 말했다.

싸게 파느니, 태워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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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랜드 버버리는 2018년 남은 의류 소각처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의 비밀스러운 재고 소각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다른 명품 브랜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명품의 희소성을 위해 비밀리 유지되는 재고 소각 관행은 오랜 문제로 지적됐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버버리가 팔다 남은 의류의 소각 처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 등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소각 여부에 대해 입을 다물 뿐이다. 재고를 할인해서 팔 거나 기부할 경우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태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활동가는 “영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재고 상품 소각으로 인한 추가 탄소배출과 대기오염원 방출을 고려하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배가 된다”며 “재고 의류가 소각될 시 대기 중에 미세플라스틱과 함께 의류와 직물 처리에 사용된 수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이 방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선·배정원·김연주 기자 az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