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악몽’ 뒤 투입됐던 그 장군…전직 투스타는 ‘군튜버’ 됐다

[라이프]by 중앙일보

“학창시절때 학교폭력을 당했는데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지난해 말 군대 이야기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에 긴 댓글이 달렸다. 2005년도 입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이 16년 전 아픔을 힘겹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는 “입대 후 강압적이고 거친 문화에 어릴 적 상처가 떠올라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군 생활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어느 날 갑자기 연대장이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벌벌 떨면서 들어갔는데 편하게 말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개인적인 일까지 털어놓으면서 도와주셨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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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전 육군사관학교장은 최근 16년전 자신이 상담했던 이병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사진 본인 제공

그는 “당시 연대장 덕분에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고 무사히 전역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못 한 게 후회됐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고 댓글을 남긴다”고 글을 맺었다.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답글을 달면서 이병과 연대장은 16년 만에 뜻밖의 재회를 했다고 한다. 과거 이병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전직 연대장은 이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답하고 있다. ‘군튜버(군대+유튜버)’로 인생 2막을 연 고성균(63) 전 육군사관학교장 얘기다.

‘옆집 아저씨’ 같았던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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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전 육군사관학교장이 현역시절 생도들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 본인제공

고씨는 처음부터 군인이 꿈은 아니었다고 했다. 경영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대학을 포기하고 일거리를 찾아 나선 그를 친구들이 돌려세웠다. 그들은 “너는 꼭 잘돼야 한다”며 돈을 모아 고씨를 재수학원에 보냈다. 서둘러 입시공부를 끝내 ‘죽마고우’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던 고씨는 육사 진학을 택했고 남들보다 빨리 군복을 입었다. 누구도 더는 신세를 지고 싶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엉겁결에 입었지만 “군복은 의외로 꼭 맞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솔선수범하는 지휘관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1986년 중대장 시절이 대표적이다. 지뢰밭에서 사고가 터지자 그는 서슴없이 비무장지대로 들어갔다. 허리춤까지 물이 차는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 전우의 시신을 어깨에 지고 돌아왔다. 2005년엔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던 관심병사들의 마음을 돌이켜 군 생활을 마칠 수 있게 도왔다. 부대원들은 그런 그를 친근하다는 뜻으로 ‘옆집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훈육관·생도 대장 거친 최초의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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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전 육군사관학교장은 퇴임 후 숙대에서 2년간 전쟁사 등 교양과목을 가르쳤다. 사진 본인 제공

2013년 한 사건이 군을 뒤흔들었다. 육사 축제 기간에 4학년 남자 생도가 2학년 여자 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파장은 컸다. 교장이 옷을 벗었고, 생도 대장이 보직해임 됐다.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육군참모총장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20년 만에 '쓰리스타(중장)'가 아닌 '투스타(소장)'를 교장으로 임명했다. 계급은 낮지만, 육사에서 훈육관·생도 대장을 거친 고씨가 적임자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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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전 육군사관학교장이 생도들에게 시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사진 본인 제공

고씨는 교장이 되자마자 ‘3금(금연·금주·금혼) 제도’에 칼을 들이댔다. 60여년간 이어온 교육방침이지만 유명무실해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영외에 한해 음주와 성관계를 허용하는 당근을 꺼내 들면서 생도를 다잡을 채찍도 꺼냈다. 학과점수에 배점이 몰린 성적평가 방식을 바꿔 체력, 리더십, 군사훈련의 비중을 높였다.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새 보직(소령 계급)을 만들기도 했다. 고씨는 “정말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추진한 건데 늦게나마 3금 제도가 풀리면서 노력의 결실을 본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군튜버’로 연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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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균 전 육군사관학교장은 유튜브에 위병근무자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5년 전 군복을 벗은 그는 최근 ‘유튜버’란 새 옷을 걸쳤다. 유튜브 채널 ‘고성균의 장군 멍군’에서 시청자와 소통한다. 계급장 떼고 군 이야기를 하자는 취지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위병소에 얽힌 이야기, 뇌물 받았다고 오해받은 이야기 등 편하게 털어놓는 모습에 호평 일색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고씨는 “‘우리의 주적은 간부’란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경험담을 토대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유튜버에 도전했다”며 “앞으로 전 세대로 시청자층을 넓히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후발주자인 만큼 여러 ‘군튜버’를 만나 노하우를 듣고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고씨는 친정인 군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면피용’ 단기 처방을 내놓기에 급급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D.P에 군대 내 가혹 행위 장면이 나오면서 논란이 생기니까 군은 ‘병영 현실과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보다는 군 내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야 누구나 가고 싶은 군대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군복을 벗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군 후배들은 더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선배의 애정 어린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2022.02.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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