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도 조던도 아닌데 완판...넷플릭스 씹어먹은 그, 또 일냈다

[비즈]by 중앙일보

넷플릭스 '넥스트인패션' 우승자 김민주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에 200명 몰렸다

"내가 알리고 싶은 건, 패션의 다양성"

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패션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브랜드 ‘민주킴’을 이끄는 한국 패션 디자이너 김민주와 협업해 만든 옷을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은 점점 길어져 건물 뒤편까지 이어졌고, 오전 11시 매장문이 열린 뒤 1시간 40분만에 협업 컬렉션 제품은 단 한 개도 남김없이 다 팔려나갔다. 브랜드 측에 따르면 이 시간에만 200명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온라인도 상황은 마찬가지. 같은 날 오전 9시 브랜드 공식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제품에 ‘솔드아웃(품절)’ 표시가 떴다. 제품 판매를 시작한 지 2시간도 채 안 돼 한국에 있는 모든 제품이 팔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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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앤아더스토리즈' 매장 앞에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길게 늘어섰다. [사진 독자 제공]

샤넬도, 조던도 아닌데?

사실 최근 몇 2~3년 사이 백화점 앞에선 이런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샤넬·롤렉스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릴 때마다 그 전날이면 매장 앞엔 전날부터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는 ‘오픈런’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사람들을 줄 세운 앤아더스토리즈는 10만 원대 전·후반으로 대부분의 상품을 살 수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란 점이다.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한 가지. ‘민주킴'이라는 DNA가 더해져 이들의 옷을 특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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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킴 x 앤아더스토리즈 협업 컬렉션. 민주킴의 두 번째 컬렉션이었던 '문 가든'의 프린트와 디자인 요소를 반영했다. [사진 앤아더스토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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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제작한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 오디션 '넥스트인패션'에서 우승을 거머쥔 순간. [사진 넷플릭스]

이번 민주킴과 앤아더스토리즈의 협업은 패스트패션의 대표적인 '명품화 전략' 중 하나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대중이 쉽게 입을 수 있는 패션을 선보이는 SPA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기존과는 다른, 색다르고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가장 잘하는 게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 H&M은 2004년부터 칼 라거펠트, 메종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등 이름을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해왔다.


앤아더스토리즈는 H&M의 자매 브랜드로, H&M의 성공 사례를 이어받아 한 해에도 크고 작은 협업 컬렉션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번 민주킴과의 '코랩(co-lab)' 컬렉션은 올해 진행하는 협업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매장과 온라인몰에 상품을 출시했다.


특히 이번 코랩은 앤아더스토리즈가 한국 디자이너와 진행한 두 번째 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코랩 파트너는 전 세계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주목할만한 사람을 고르는데, 지난해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레지나표’(표지영)에 이어 민주킴을 선택했다. 앤아더스토리즈는 “가격을 떠나 오래 간직하고, 오래 사랑할 수 있는 게 명품이다. 그런 것은 어떤 것이든 명품이 될 수 있다”는 그를 통해 브랜드에 '명품'을 입혔다.

패션계에선 스타, 하지만 대중과는 멀었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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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킴 x 앤아더스토리즈 컬렉션을 입고 있는 모델들. 컨셉부터 모델까지 모두 김민주 디자이너의 의도가 담겨있다. [사진 앤아더스토리즈]

2년 전 김 디자이너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게 넷플릭스에 나간 가장 큰 이유라면서. 그는 2020년 넷플릭스가 만든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 ‘넥스트인패션’의 우승자다. 대니얼 플래처, 엔젤 텐 등 런던·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디자이너들과 겨뤄 당당히 우승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넷플릭스 노출전에도 그는 패션업계에서 이미 이름이 잘 알려진 디자이너였다. 전에 보지못한 독창적인 옷은 2015년 브랜드를 론칭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아티스트'로 칭송했는데, 한 편의 동화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옷을 을지로 빈티지 카페 '커피한약방', 통의동 '보안여관' 같은 기상천외한 장소에서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면 그럴만했다.


또 기존 구조를 해체한 전위적인 디자인 접근법과 순수 미술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그래픽·패턴을 선보여 '천재'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이력만 봐도 그랬다. 세계 3대 패션학교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H&M 디자인 어워드'에선 대상을, 'LVMH 영패션디자이너 부문'에선 준결선에 올랐다. 2020년엔 '네타포르테 뱅가드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글로벌 패션 플랫폼의 막대한 지원도 받았다.

트렌드 대신 다양성 알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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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 드레스에 새겨진 화사한 프린트가 돋보인다. [사진 앤아더스토리즈]

하지만 한국 소비자에게 민주킴은 여전히 생소한 브랜드였다.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에게 자기 세계가 확고한 민주킴의 옷은 어려웠다. 해외에서 이름이 높아질수록 간극은 커졌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넷플릭스 넥스트인패션이 그 첫 번째 도전이었고, 올해는 앤아더스토리즈와의 협업으로 한 걸음 더 대중에 다가갔다.


“아쉬웠어요. 유명해지고 싶다기보다, 패션의 다양성에 대해 전하고 싶었거든요.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개성과 취향에 맞게 패션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요.”


지난해 여름 그는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앤아더스토리즈의 연락을 받고, 결정에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고 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강점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협업 제안받았을 때, 넷플릭스 이후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떠올랐어요. 게다가 앤아더스토리즈는 여성에 대해서 다양하게 바라보는 관점, 밝은 여성상, 에너제틱하고 격식 없는 이미지가 민주킴의 색깔과 잘 어울려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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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업엔 자신의 두 번째 컬렉션 '문 가든(Moon Garden)'에서 프린트와 디자인 컨셉을 가져와 반영했다. '언젠가 우주에 나간다면, 지구를 그리워하며 정원을 가꿀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컬렉션이다. 봄날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식물을 모티프로 삼은 드레스와 셔츠·바지 셋업 등 의류와 헤어핀·양말 등 액세서리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하는 컬렉션을 만들었다.


“의견 차이도 좀 있었어요. 저는 드레스에 힘을 주고 싶었는데, 앤아더스토리즈 쪽에선 조금 부정적이었어요. 소비자가 쉽게 입을 수 있는 라인을 구성하고 싶어했거든요. 마지막까지 '이거 진짜 괜찮아?'라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결국 모든 결정을 제게 맡겼어요. 옷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 컨셉, 모델 선정까지요. 잘 팔릴 것에 신경 쓰기보다,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조사·섭외 등 함께 발로 뛰며 지원해줬어요. '이게 글로벌 브랜드의 힘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24일 앤아더스토리즈의 매장을 아침부터 직접 지키며, 그의 옷을 사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사했다. “무대 뒤에 숨어있는 디자이너가 아닌, 거리에 나서 민주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여기서도 실천한 것. 이에 화답하듯 그가 옷을 선보이는 자리엔 늘 사람이 몰린다. 지난해 5월 삼청동에 연 팝업 쇼룸엔 300명 이상이 몰려 광화문까지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때도 그는 현장에 매일 나와 방문객을 맞았다.


“몇 시간씩 할애해 제 옷을 보려고 오신 분들을 직접 만나 고맙다고, 잘 지내냐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민주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저는 옷을 통해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고, 밝아지고,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거든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2022.03.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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