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버렸던 땅의 반전…유엔 최우수 관광마을 뽑혔다, 왜

[여행]by 중앙일보
중앙일보

고창 운곡습지는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을 볼 수 있는 생태관광 명소다. 사진 속 장소는 1980년대 초까지 쌀농사를 짓던 농지였는데 농민이 이주한 뒤 40년 동안 방치됐다. 그 사이 버드나무가 밀림처럼 자랐고 800종이 넘는 동식물이 터잡고 살게 됐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는 지난해 12월 전세계 32개국의 44개 마을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해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마을 두 곳이 포함됐다. 전남 신안 퍼플섬과 전북 고창 고인돌·운곡습지 마을. 퍼플섬은 이미 명소가 됐지만, 고창의 습지 마을은 의외였다. 습지만 따졌을 때 순천만이나 우포늪이 더 우수한 관광자원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습지가 가장 아름답다는 봄이 오길 기다렸다. 이달 4일, 신록 눈부신 운곡습지를 걷고 왔다. 요즘 뜨는 신흥 명소와는 사뭇 달랐다. 바쁘게 인증사진을 찍기보다 느긋이 걷기 좋은 숲이었고, 자연의 회복력을 실감하는 놀라운 세상이었다.

인간 떠나고 40년, 원시 자연이 회복되다

중앙일보

고창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고인돌이 많은 도시다. 운곡습지 가는 길, 고인돌 유적지에서 수많은 고인돌을 볼 수 있다.

고창은 예부터 고인돌이 유명했다. 지역 로고도 고인돌이다.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447기의 고인돌이 고창에 있다. 2000년 전남 화순, 인천 강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고창읍과 아산면 일대에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선사인의 집단 무덤인데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과 용암이 굳은 유문암으로 만들었다. 8000만 년 전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고인돌 만들기 좋은 돌이 많았던 게다. 주변에 습지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응회암과 유문암은 물이 잘 빠지지 않아 곳곳에 습지가 생겼다. 하여 이 일대에서 벼농사를 많이 지었다.


중앙일보

고창 용계마을. 1982년 운곡저수지를 만들면서 산자락에 살던 주민 일부가 이 마을로 이주했다.

변화가 찾아온 건 비교적 최근이다. 1982년 영광 한빛원전의 냉각수 용도로 운곡댐을 만들면서 9개 마을 156가구가 이주했다. 마을은 저수지에 잠겼고 벼농사 짓던 땅은 방치됐다. 약 30년이 흘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버려진 땅이 스스로 원시 습지 상태로 되살아났다. 온갖 식물이 자라 숲을 이뤘고 황새·수달·담비 등 멸종위기종 동물이 발견됐다. 동식물 830종이 습지에서 사는 걸로 확인됐다.


운곡습지의 가치를 알아본 고창군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각별한 관리를 시작해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고 이후 국가 지정 생태관광지, 국가지질공원으로 차례로 지정됐다. 순천만이나 우포늪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 운곡습지는 국내서 보기 드문 산지형 저층습지다. 해발 100~200m 사이에 습지가 분포해 있어 가볍게 트레킹을 즐기며 둘러보기 좋다.

주민 주도로 논둑 복원하며 '선한 개입'

중앙일보

운곡습지 안에 있는 생태연못.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신영순 사무국장과 함께 '생태탐방 1코스'를 걸었다. 고인돌박물관으로 들어서서 호암산 자락에 지천으로 깔린 고인돌을 지나 깊은 숲에 들어섰다. 처음엔 여느 산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걷다 보니 사람 한 명만 지날 수 있는 좁다란 데크로드가 나왔다. 이어 왼쪽에 물이 찰랑거리는 습지가 보였다. 가장 놀라운 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히 자란 나무였다. 물을 좋아하는 선버들이 주종을 이뤘고 사초·물별이끼 등 온갖 습지식물이 살고 있었다. 맑은 물에는 갓 부화한 올챙이가 한여름 해수욕장 피서객처럼 득시글했다. 원시 밀림 같은 이곳에서 1980년대 초까지 농사를 지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중앙일보

복원된 습지에는 다양한 습지 식물이 산다. 사진은 물별이끼.

약 30년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습지를 관광자원으로 주목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17년부터 마을 주민이 야자 매트를 활용해 습지 곳곳에 둑을 만들었다. 신영순 사무국장은 "습지가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순환하도록 하는 차원에서 '선한 개입'을 하고 있다"며 "데크로드도 크기를 최소화하고 아래쪽으로 햇볕이 잘 들도록 바닥에 틈을 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운곡습지 주변 마을은 주민들은 환경 정화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토요일마다 고인돌 박물관 앞에서는 지역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파는 장을 연다. 사진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2015년 생태관광협의회를 만든 뒤 마을 주민은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환경을 정화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팔고 토요일마다 장터도 연다. 이런 활동을 세계관광기구가 인정한 결과가 UNWTO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이다. 위기에 처한 농촌을 관광으로 극복한 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는 게 '최우수 관광마을'의 선정 취지였다.


■ 여행정보


운곡습지는 입장료가 없다. 트레킹 코스는 모두 4개다. 논둑 복원지를 볼 수 있는 1코스는 고인돌박물관이나 반대편 운곡습지 자연생태공원에서 출발하면 된다. 편도 3.6㎞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생태관광(무료), 등산 스틱을 이용해 걷는 '노르딕 워킹(1만5000원)'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6월에는 '반딧불이 풀벌레 야행(2만원)'을 진행한다. 2020년 개장한 유스호스텔(5만원부터)도 있다.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홈페이지 참조.


중앙일보

운곡습지 지도. 사진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고창=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2022.05.3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