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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미쳤다 말밖에 안나온다"…원빈도 반한 이천 야산 속 '신세계'

by중앙일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前 미용사 이상일의 별난 은퇴기

이천 산속에 1000평 복합문화공간

자연 그대로 10년간 매만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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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모가면 산골짜기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 바위 위에 건물이 들어섰다. 헤어디자이너 이상일씨가 디자인하고 10년에 걸쳐 가꾼 공간이다. [사진 전재호 작가]

지난달 초 경기 이천시 모가면의 한 야산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이정표도 없는 시골길을 지나 도착한 손님들은 파티장소를 보고선 입이 딱 벌어졌다. 약 3305㎡(1000평) 규모로, 높다란 바위의 등고선을 따라 건물이 구불구불하게 앉혀져 있었다. 숲속에 있는 건물의 경우 울창한 나무에 가려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통상 건축하려면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새로 앉힌다. 아무리 주변에 새 나무를 심는다 해도 건물이 더 도드라져 보일텐데 생경한 풍경이다. 자연을 밀어내지 않고 어떻게 건축했을까. 이렇게 자연에 스미듯 앉혀진 건물이 22채에 달한다.


산속 신세계를 창조한 이는 전(前) 남자 미용사 이상일(66) 씨다. 이씨는 30년간 한국 미용업계의 지축을 흔들다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옆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를 끝으로 2012년 은퇴했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미용사 시절 장부를 들춰서 옛 고객과 지인에게 연락했다. “와서 밥 먹고 가라”는 이 씨의 초청에 나흘간 400명의 손님이 다녀갔고, 모두 놀랐다. 이 씨의 옛 고객이자 브랜드 전문가인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는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와. 광인(狂人)이 만든 공간이야”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씨가 10년간 매만진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L’art de la vie, 인생은 예술)의 개관식 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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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나무를 제외하고 나무를 베지 않고 건물을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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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에서 미용사로, 이제 화가로 인생3막을 살고 있는 이상일씨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의 모습. [사진 전재호 작가]

가위질로 숱한 유행을 창조하다 훌쩍 은퇴한 그가 손톱에 흙 때를 가득 낀 채 나타날 줄이야. 이천의 산골짜기 돌 틈에 자라난 버드나무 가지를 치며 가위질하고 있을 줄이야.


“손이 너무 예뻐서 손 모델도 하고, 기생오라비 같다고도 했는데 여기 와서 일하느라 손마디가 소도둑처럼 됐어. 저녁에 마디마다 파스 붙이고 해도 너무 행복해.” 은퇴하고 편히 쉴 법도 한데, 그는 왜 이런 공간을 손이 부르트도록 만들고선 행복하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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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의 손. [사진 전재호 작가]

치마 입은 남자 미용사

지난 30일 라드라비에서 만난 이 씨는 17년 전 지인의 소개로 이천의 야산을 샀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했다. 바쁘게 살았던 만큼 산속에 자그마한 집을 지어 놓고,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아내와 나눠 먹고, 그림 그리며 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상일은 생각하면 곧장 실행하고 거기에 또 몰입해 아이디어를 다시 얻으며 일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1981년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그가 이듬해 서울 명동에 ‘헤어뉴스’ 1호점을 차렸을 때 ‘나리 미장원’ ‘꽃님이 미장원’ 일색이던 한국 미용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주간지에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말고 있는 여자 사진과 함께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 말던 시절이 그립습니다’는 카피 하나만 달랑 써 내보냈다. 두 번 정도 광고가 나가자, 잡지사로 이게 대체 뭐냐는 전화가 폭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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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뉴스 명동 1호점을 냈을 당시 잡지사 광고 이미지. [사진 전재호 작가]

어릴 적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말아 파마효과를 냈던, 시골에서 상경한 여인들의 감성과 향수를 저격한 문구였다. 이어 업계 최초로 직원 유니폼을 만들었고, 디자이너 선생님 호칭도 만들었다. 87년도에는 썰렁하던 압구정동으로 가서 정원 있는 미용실을 만들었고, 이후 주택가였던 청담동 도산공원 앞으로 가서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를 론칭했다. 5층짜리 건물을 지어 카페·베이커리·미용실 등 라이프스타일 관련한 모든 것을 펼쳐 보였더니, 다른 미용실들이 하나둘씩 따라와서 결국 도산공원 앞이 미용실 골목으로 바뀌었다. 때론 치마를 입고, 때론 군복을 입는 키 184㎝의 남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올해의 트렌드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일찍 성공했고, 일찍 은퇴했다. 은퇴한 그가 산속에 컨테이너 하나 놓고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자연이 참 좋더란다. 나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었다. “고객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 이렇게 성장하고 물질을 모았는데 돌려드려야지,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 말고 가진 재능을 다 펼쳐 보이며 후배들의 롤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곧장 앞산에 올라가 산자락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산의 등고선을 따라 미술관·객실·레스토랑 등과 같은 건물을 스케치했고, 그림은 현실이 됐다.

자연이 주인공이지

산 입구까지 길도 없는 소위 맹지 산이었다. 길부터 닦았다. 퇴화해 진창이 되어 있던 산 입구의 계곡을 포클레인으로 살살 긁었더니 사람들이 계곡에 놀러 와서 고기 구워 먹고 버린 철판이 용달차 한 대 분량으로 나왔다. 그렇게 쓰레기를 걷어내니 바위가 드러나고, 물길이 살아났다.


우선 산능선 꼭대기에 한옥 세 채를 지었다. 그리고 바위 등고선을 따라 내려가며 단층 건물을 구불구불하게 앉혔다. 진달래 나무 한 그루라도 있으면 나무를 피하기 위해 건물을 줄였다. 건물 모양이 구불구불하고, 계단과 길이 좁았다 넓어졌다 오락가락하는 이유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느라 계단 난간마저 현장에서 일일이 제작했으니 공사비는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씨는 고집스레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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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능성이에 앉힌 한옥 객실. 생들기름으로 나무를 수없이 닦아 고재처럼 착색했다. [사진 전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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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내부. [사진 전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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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지형을 따라 건물을 앉히느라, 난간조차도 현장 제작했다.[사진 전재호 작가]

“이 땅의 주인이 바위하고 나무하고 흙이잖아요. 당연히 주인이 돋보여야죠. 인간은 그 틈에 잠시 꼈다 떠나는 손님일 뿐이니까.”

숲속에 지은 객실의 경우 100t짜리 크레인을 불러다 멀찍이 세워놓고 철제 기둥을 크레인으로 옮겨 나무 사이에 꽂고 집을 티나지 않게 집어넣었다. 홍송 옆에는 붉은 벽돌, 참나무 옆에는 회벽돌로 집을 지었다. 객실마다 압구정ㆍ팔당ㆍ덕소 등 그와 아내가 살아온 동네 이름을 붙이고 실내도 그 시절 유행하던 스타일로 꾸몄다. 한옥의 경우 과거 충남 아산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참판 댁 별채를 빌려 6년간 살며 배운 것을 되살려 지었다. 그의 경험과 감성을 토대로 지은 ‘이상일표 감각의 제국’이 그렇게 완성됐다.


이 모든 공사를 이천의 인력만을 활용해 직영으로 했다. 자연스럽기 위한, 참으로 유별난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졌을 때, 미술관·객실·레스토랑 등 라드라비의 모든 공간은 끄떡없었다. 자연대로 지으니 탈이 안 나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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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파묻힌 양옥객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크레인을 동원해 지었다. [사진 전재호 작가]

지난달 정식으로 열었지만, 10년을 매만지는 사이 알음알음 다녀간 이도 적잖다. 원빈·이나영 부부도 한옥 세 채를 통으로 빌려 머물다 갔으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작고하기 한 해 전 부인 정희자 여사와 함께 방문했다. 김 전 회장은 한옥 툇마루에 앉아 이씨가 창조해 낸 공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선생 나 좀 봐요. 내가 세계적으로 좋은데도 다 다녀보고 사업도 많이 펼쳐봤지만, 사인하고 오픈하는 날 가서 테이프 커팅만 했지. 이렇게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 참 대단해. 나는 이런 과정을 모르고 산 것 같아요.”

인생은 예술이야

이 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작업실로 가서 잡초 뽑으며 땅을 일구러 가기 전까지 꼬박 6시간가량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림을 그린다. 젯소를 서른 여섯번 칠하고 사포질을 반복해 만질만질해진 거대한 캔버스 위에 가느다란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가며 마치 수행하듯 그린다. 그 무아지경 속에서 이 씨의 지난 경험은 상상의 구도를 더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몰입하면 할수록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정신이 살아나요. 나는 자유야.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해서 오후만 되면 그림 그릴 새벽 2시가 기다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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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 전재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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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그림. 장면들이 살아 움직인다.[사진 전재호 작가]

그의 그림은 마치 21세기 풍속화 같다. 호화롭게 치장했지만 공허한 강남의 여인들, 아내와 술 한잔하던 어느 날과 같은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화가 이상일이 수십년간 그려온 그림이 빼곡히 전시된 미술관에 들어서면 세밀한 장면들에 압도된다. 아름다움은 솔직한 것이고, 인생은 예술이라는 말대로 그는 오늘도 라드라비를 매만지며 산다. ‘나는 오늘도 창조했는가’를 되뇌며.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에요. 항상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삶이고,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해요. 한 시간이라도 자기 정신없이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는 오늘도 창조했는가. 이게 내 삶의 신조입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