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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평양 살아요"…영국식 영어하는 北 11살 유튜버 송아의 정체

by중앙일보

중앙일보

송아가 지난 4월 유튜브에 처음 올린 자기소개 영상.

“일주일 전에 체온이 39도였어요. 다음 날은 상황이 더 심각했고, 엄마도 앓아누웠어요. 약은 떨어졌고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어요. 도대체 누가 올 수 있겠어요? 군의관이었죠. 엄마와 저는 너무 좋아서 얼싸안고 아기처럼 엉엉 울었어요. 우린 군의관들과 형제 같은 사이가 됐죠.”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북한 11살 소녀가 유튜브에 등장했다. 평양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송아(Song-A)라고 밝힌 이 소녀는 지난 4월 첫 영상을 올린 후 지난 9일 두 번째 영상에서 코로나19 자가격리 경험담을 이렇게 밝혔다. 영상에선 의료인 완장을 찬 남성 두 명이 송아의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모습과 집 안에 들어와 약을 건네고 송아 이마를 짚어보는 모습이 공개됐다.

송아는 또 격리하는 동안 친구와 이웃이 딸기와 만두를 각각 문 앞에 가져다줬고, 동네 야채 가게 직원이 2~3일마다 한 번씩 신선한 야채를 가져왔다며 “바로 이처럼 모든 것이 예전처럼 잘 관리되고 있고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바로 나처럼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고 팬데믹이 끝날 날이 곧 올 것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며 “힘내라”라고 말했다.

한복 중년 여성 대신 MZ 세대 1인 방송

북한 당국의 체제 선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TV에서 한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선전했다면 이제는 외국어를 구사하는 젊은 세대를 앞세운 소셜미디어(SNS) 1인 방송 형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23일(현지시간)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11살 소녀가 구독자들에게 ‘도전’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해외 지지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송아는 지난 4월 처음 올린 자기소개 영상에서 “내가 사는 평양에 와보면 어디에나 놀이공원이 있어 깜짝 놀랄 것”이라며 “내가 영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책은 J.K. 롤링이 쓴 해리포터”라면서 “여러분도 해리포터를 좋아할 텐데 나중에 누가 더 해리포터에 대해 더 많이 아는지 내기해보자”라고도 했다.


NK뉴스에 따르면, 이런 선전은 북한 선전 사이트 ‘서광’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아는 실제 지난해 ‘서광’이 제작한 평양 학교 소개 영상에 출연했었다. NK뉴스는 “송아의 두 번째 게시물은 (지난달 12일) 북한의 전역 봉쇄 조치 이후 (지난달 29일) 평양 부분 해제가 된 후 2주 가까이 지나서야 게시됐다”며 “상급 당국이 동영상을 편집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선 개인의 인터넷 접속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이런 개인 계정은 출연자가 스스로 관리할 가능성이 없다”면서다.

“개인 계정인 척 당국이 관리”

트위터에선 지난 2월 젊은 아시아 남성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한 계정 ‘에릭 엔도슨’이 신설됐다. 이 계정은 ‘서광’이 웨이보에 올린 똑같은 사진을 별다른 워터마크 없이 게시했다. NK뉴스는 “트위터 계정 소유자가 동일한 원본 사진을 쓸 수 있다는 의미”라며 “개인 계정으로 둔갑하고 사실은 ‘서광’이 이 계정을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활동을 시작한 계정 ‘파라마_코리아팬’은 상단에 송아의 동영상을 고정하고 ‘서광’의 웨이보 계정과 유사한 게시물을 올렸다.


지난 5월 웨이보에서 “중국과 북한의 교류에 관심이 많다”며 활동을 시작한 ‘양일심’은 이미 팔로워 수가 5500명에 달한다. 동영상 누적 조회 수도 80만을 넘어섰다. 귀여운 표정으로 찍은 셀카는 여느 젊은 여성과 같지만, 북한 인공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중국어로 김정은에 관한 노래를 부른다. 코로나19로 식물을 키우며 자가격리하는 모습도 공유했지만, 이 영상은 송아와 달리 봉쇄 기간에 공개됐다. NK뉴스는 “양일심에게 특별 권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서광’이나 다른 국영 미디어 회사 직원일 수 있다”고 했다.


양일심은 북한 코로나 봉쇄 조치가 전면 해제된 이후인 지난 15일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찍은 셀카에 이렇게 썼다. “여름이 왔습니다. 우리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