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이번 정차역은 신한카드역입니다"…
이런 안내방송, 얼마면 돼?

by중앙일보

중앙일보

을지로3가역 출입구에 신한카드 이름을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정차역은 을지로3가, 신한카드역입니다.”


요즘 서울지하철 2호선이나 3호선 전동차를 타고 을지로3가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차내에서 이런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영어 등 외국어 안내방송도 같은 내용인데요. 원래 역명인 ‘을지로3가’에 ‘신한카드’라는 이름이 함께 붙어 있는 겁니다.


인근 을지로입구역(2호선)과 을지로4가역(2ㆍ5호선)도 안내방송에 각각 ‘IBK기업은행’과 ‘BC카드’가 본래 역명과 함께 등장합니다. 주위를 보면 안내방송뿐 아니라 역 출입구와 폴사인, 승강장 역명판, 그리고 각종 노선도 등에도 이름이 같이 쓰여 있습니다.

역명에 다른 이름도 넣는 '역명병기'

이를 철도업계에선 ‘역명병기(驛名竝記)’ 또는 ‘역명부기(驛名附記)’라고 부릅니다. 본래 역 이름에 다른 명칭을 부가적으로 함께 적는다는 의미인데요. 역명병기는 1988년 철도청(현 코레일)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앙일보

을지로3가역의 역명병기 모습. [자료 서울교통공사]

역 주변 공공기관이나 대학, 명소 등 유명시설의 명칭을 함께 넣어주는 것으로 19개 역에서 시행했다고 하는데요. 무료로 넣어주는 데다 홍보 효과가 크다 보니 경쟁이 너무 심해진 탓에 2003년에 폐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2005년부터 광역철도역을 중심으로 돈을 받고 이름을 함께 넣어주는 ‘유상 역명병기’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젠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대전 등의 도시철도 운영기관도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철도청 시절에 무료로 첫 시작

지하철 1~8호선 전체와 9호선 일부를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유상 역명병기사업을 시작한 건 2016년이었는데요. 이후 제도를 운용하지 않다가 지난해 7월부터 재정확보를 위해 재개했다고 합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사용료를 받고 역명병기를 하는 곳은 을지로3가 등 모두 33개 역(중복포함)입니다. 2호선이 10개 역으로 가장 많고, 7호선도 7개나 됩니다. 역병병기를 할 기관은 공개입찰을 통해서 결정하며 계약 기간은 3년입니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1월 기준으로 계약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을지로3가역에 등장하는 신한카드입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해 2025년 3월까지 역명병기를 하게 되는데요. 금액이 무려 8억 7000만원에 달합니다.

신한카드 이름 넣는데 9억 육박

2위는 역삼역의 센터필드(7억 500만원)이고 3위는 을지로4가역의 BC카드(7억원), 4위 을지로입구역의 IBK기업은행(4억 3000만원), 5위 사당역의 대항병원(4억 300만원) 순입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역명병기를 하게 되면 해당 역 주변의 여러 회사나 기관, 시설 가운데 대표성을 갖게 되고 홍보효과도 커지기 때문에 관심도가 높은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중앙일보

역삼역의 역명병기.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역명병기는 금액만 많이 써낸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제법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데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역명병기 입찰에 참여하려면 기업이나 기관이 해당 역으로부터 500m 이내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 구간내에 적절한 곳이 없으면 1㎞로 확대하는데요.

유상 역명병기 조건 까다로워

최고가 입찰방식이지만 여러 기관이 입찰해서 응찰금액이 동일하면 ‘공익기관〉 학교〉 병원〉 기업체〉 다중이용시설’ 등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최종낙찰자는 공사의 역명병기 심의위원회를 거쳐서 확정됩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미풍양속을 저해하거나 지역주민의 반대 등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기관은 제외한다는 건데요. 여러 이유로 구설에 오른 곳은 앞선 조건을 모두 충족해도 역명병기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코레일과 대구, 대전, 부산, 인천의 교통공사도 거의 유사한 기준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유상 역명부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코레일의 경우 2019년 기준으로 최고 계약금액이 3년 기준으로 환산할 때 1억 2000만원(부천ㆍ부천대학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미풍양속 해친 기관은 제외

국철 1호선인 경부선과 경인선, 일산선, 과천선과 안산선, 경원선, 분당선 등 주로 광역철도와 일부 일반철도역 60여곳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유동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 시내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인데요. 최근에는 사용료를 조금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코레일이 운용하는 유상 역명병기 사업. [출처 위키백과]

그렇다면 현재 역명병기를 하는 곳은 모두 사용료를 받는 걸까요. 서울교통공사에서 역명병기를 하는 역은 모두 98개 역(중복포함)입니다. 이 가운데 돈을 받는 경우는 33곳뿐입니다.

서울시내 65곳은 무료 병기

나머지 65곳은 무상이라는 의미인데요. 예를 들어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는 ‘관악구청’ , 2호선 삼성역에는 ‘무역센터’, 5호선 충정로역에는 ‘경기대입구’ 등의 명칭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이들 역은 지하철 개통 초기나 오래전부터 이름을 무료로 함께 넣었던 곳으로 그 역사가 오래됐고,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의 설명입니다.

중앙일보

낙성대역은 2019년 '강감찬'이란 이름을 무료로 병기했다. [출처 위키백과]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과 숙대입구역은 1985년부터 ‘돈암’과 ‘갈월’이라는 명칭을 함께 써왔다고 합니다. 무상 역명병기는 2015년부터 원칙적으로 폐지됐으며, 예외적으로 서울시의 지명관리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서 허용됩니다.

무료라도 이름 넣는 비용은 부담

2019년 낙성대역에 ‘강감찬’이 병기되고, 동대문역사공원역에 ‘DDP’가 나란히 쓰인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무상이라고 해서 전부 다 공짜인 건 아닙니다.


연간 사용료는 안 받지만 사인폴과 역 출입구, 승강장 역명판, 노선도, 안내방송 등에 이름을 병기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해당 기관이나 시설이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