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람 위한 심심(尋心)한 한옥…가회동 '심심헌'

[라이프]by 중앙일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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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나무와 열린 문 그리고 잔디밭은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안락감을 안겨준다. [사진 이종근]

심심헌

서울 가회동 중심가에 위치한 심심헌은 한국의 전통적인 멋에 경의를 표하는 한옥이다. 심심헌의 주인은 개인 소유의 북촌 한옥들을 관광객들이 섭렵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려는 마음으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주말에는 집을 대중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마음을 찾는’이라는 뜻의 심심(尋心)은 ‘심심하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으로, 심심한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방문해주기를 기대하는 집주인의 재치 있고 개방적인 마음을 드러내 주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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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툇마루에서 눈에 담기는 풍경은 이 집이 얼마나 완벽하게 고지대의 이점을 살려냈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도심의 드높은 빌딩들과 한옥 지붕들의 차분함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에라도 온 듯한 건축학적 쾌감을 맛보게 해준다. [사진 이종근]

심심헌은 기역(ㄱ)자 모양의 한옥이다. 안채에는 화려한 누마루가 남향으로 펼쳐져 있고, 대청마루에 들어서면 들개문 밖으로 종로 일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에는 소나무가 두 그루 심겨 있는데, 이는 심심헌의 이름에 담긴 ‘휴식’이라는 개념의 연장이다. 옛 선조들은 게으름을 멀리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가옥 단지 내에 소나무를 심지 않았지만, 심심헌에서 소나무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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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에 비치된 키 작은 전통 함 위에는 집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고풍스러운 전통 도자기들이 놓여 있다. 이 컬렉션은 고급스럽기보다는 평민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했을 법한 도자기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이종근]

집주인은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덕에 한국 전통문화의 진가를 알아보고 옛것을 보존하는 일에 열정을 갖게 된 인물이다. 이러한 집주인의 마음은 심심헌 곳곳에 있는 특징적인 장식물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심심헌의 누마루를 둘러싸고 있는 평난간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대청마루에는 천장 쪽으로 들어 올려 고정할 수 있는 열어 들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들개문은 여름에는 햇빛을,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옛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전통 문이다. 또한, 안방으로 향하는 창호문에는 한지가 발려 있어 은은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집안에 있는 몇 개의 우람한 대들보는 옛 한옥들을 철거한 곳에서 가져온 오래된 목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을 절로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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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창문’과 ‘문’은 모두 여닫고 들어오고 나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이 다실에 있는 작은 창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 한옥에서 창문을 문과 같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진 이종근]

심심헌은 신축한 한옥임에도 옛 궁궐들에 쓰이던 목재들을 사용해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의 옛스런 풍경에 꼭 들어맞는다. 담벼락 위에 얹은 기와는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따뜻하고 고요한 심심헌 내부 모습을 암시하는 동시에 독특한 감수성도 한 움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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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헌 곳곳에서는 옛 세대들이 어릴 적 한옥에 살던 기억의 요소들이 숨어 있다. 마루 앞에 가지런히 놓인 검정고무신 등의 친숙한 장식들이 심심험을 더 따뜻하고 정겹게 만든다. [사진 이종근]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2022.10.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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