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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추기자의 속엣팅

"난 지옥 벗어났지만…" 공인중개사 합격 서경석의 새 도전

by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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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후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전민규 기자

“한땐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지금은 적당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느끼는 만족감은 똑같아요.”

개그맨 서경석(50)은 1993년 데뷔 직후 벼락스타가 됐다. 그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과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99년 MBC 코미디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데뷔 후 군 복무 기간 26개월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방송을 쉰 적이 없다는 그는 스스로 “의외로 많은 걸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고 제2의 인생에 나선 그를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평일엔 라디오, 주말엔 로또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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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이 수십년 간 한 번도 쉬지 않았던 건 방송과 축구다. 그는 "그라운드를 뛰면서 얻는 엔도르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서경석은 일주일에 6일 생방송 일정을 소화한다. 평일엔 매일 아침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를 진행한 지 7년이 넘었고, 토요일 저녁엔 4년 전부터 복권 추첨 방송을 진행한다. 지난 2018년 유튜브 채널 ‘그래서경석’을 개설해 15만 구독자까지 모은 그는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후로 ‘공인중개서’ 채널과 또 다른 기업 정보 관련 채널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타공인 ‘오지라퍼’이다. 공인중개사 시험도 광고모델 일을 하면서 만난 공인중개사 지망생들이 “그 시험에 왜 그렇게 열광하고 좌절하는지 알고 싶어서” 도전했다. 그는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상식으로 공부해두면 부동산 일 처리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며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고 후회했다”고 말했다. “너무나 많은 시간과 고민을 필요로 하는 시험이었다”면서다. 그는 “저는 이미 그 지옥 같은 세계를 벗어났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들을 위한 ‘공인중개서’ 콘텐트를 꾸준히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 부잣집 아들이었던 서경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중학교 땐 대전역에서 신문팔이도 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라는 생각에 일을 그만뒀다. 그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힘든 사람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뭔가 해보려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그의 피난처는 축구였다. 코로나19 전까지 10년 연속 홍명보 자선 축구대회에 출전했고, 지금도 매주 축구를 한다는 그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면서 얻는 엔도르핀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1등 아니어도 돼…괜찮은 사람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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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은 "내 본분은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방송을 하든 웃음 없이 가진 않겠다"면서 "모든 콘텐트에 웃음이 녹아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평소 말이 없던 아버지의 “대학 보낼 형편이 안 된다”는 한 마디에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수석입학까지 했지만, “평생 군인으로 살 자신이 없어서” 중퇴했다. 과외를 하면서 학원비를 벌어 이듬해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선 사람 좋아하는 특유의 ‘오지랖’ 때문에 사실 공부엔 소홀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하숙집 TV 자막에 ‘제4기 MBC 코미디언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방송국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재미 삼아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버렸다. 부모님은 외무고시 준비하는 줄로만 알았던 아들을 TV에서 보고 크게 화냈다고 한다.


데뷔 직후 전성기를 누렸지만 군 제대 후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새롭게 도전한 일일 드라마는 4개월 만에 조기 종영했고, 프로그램 섭외도 줄었다. 그러다 2014년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매 촬영에 혼신을 다했다는 그는 “나에겐 너무 소중한 기회였다”고 했다. 그 후로 만난 프로그램이 ‘여성시대’와 ‘행복드림 로또 6/45’다. 그는 “성실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는 삶”이라며 “아쉬움은 있지만 암울하진 않다”고 말했다. “일주일이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데 암울할 수가 없지 않으냐”면서다.


“1등이 되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예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저는 (데뷔 당시) 23살부터 똑같은 마음이에요. 방송인이든, 공인중개사든, 유튜버든, 옆집 아저씨든,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에필로그] 이윤석과 서경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콤비입니다. 이윤석은 “데뷔 직후 성공한 건 경석이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콤비 생활이 끝나고 방황하던 자신을 끝까지 챙겨준 데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죠. 그에 대해 서경석은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역시나 “(내 성공도) 윤석이 덕분이었다”는 겁니다. “이윤석은 틈만 나면 누워있고, 서경석은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둘은 참 다르지만, 진심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 후배 장례식장서 록밴드 '락골당' 기획…'국민약골' 이윤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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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은 한 후배의 장례식장에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프로젝트 밴드 ‘락골당’을 기획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